레오나르드 보프와 해방신학
상태바
레오나르드 보프와 해방신학
  • 한상봉 편집장
  • 승인 2023.02.26 13:49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교회의 권력과 은총 1-1강

 

레오나르도 보프는 1968년 열린 제2차 라틴아메리카 주교회의인 메데인 회의에서 시작되어 1978년 푸에블라 주교회에서 공인된 해방신학의 대표적 신학자 가운데 한 명이다. 고통받는 민중의 편에서 그들 자신 안에서 새롭게 탄생하는 ‘민중의 교회’를 갈망했던 보프는 1984년 <교회의 권력과 은총>을 저술하고 난 뒤에, 이 책 때문에 교황청의 소환을 받았다.

당시 신앙교리성 장관인 라칭거 추기경은 장시간 심문을 하고나서 보프에게 신학적 견해에 대한 침묵명령을 내렸다. 당시 교황청 신앙교리성은 해방신학의 계급적 당파성과 마르크스주의적 요소에 대한 비판을 담은 <해방신학의 일부 측면에 관한 훈령>을 발표한 직후였다.

물론 1986년 4월 6일 해방신학에 대해 비교적 긍정적 견해를 담은 <그리스도인의 자유와 해방에 관한 훈령>이 나오면서, 보프 신부에 대한 침묵명령은 해제되었다. 그러나 그것으로 해방신학에 대한 교황청의 단죄가 끝난 것은 아니었다. 결국 보프 신부는 교회의 간섭에 밀려 1992년 6월 28일 사제직을 떠나게 되었다. 그 당시 보프는 사제직을 버리면서 “그것은 자유를 지키기 위함이요 끝내는 몹시 어렵게 된 나의 일을 계속하기 위함”이라고 했다. 보프는 이렇게 말을 이어간다.

“해방신학을 통해서 우리는 그리스도 신앙의 해방력을 되찾고 예수에 대한 ‘위험한 기억’을 오늘에 되살리고자 했습니다. 그럼으로써 그리스도교를 권력자들의 이익에 묶어 두고 있는 쇠사슬을 깨뜨리고 싶었던 것입니다.”

그러나 여전히 권위적인 중앙집권적 교회를 꿈꾸었던 세력이 득세하고 있는 상황에서, 보프의 생각은 그에게 가혹한 ‘십자가’를 안겨주었다. <교회의 권력과 은총> 서문에서 보프가 “아담의 후손들에게 지워진 피로와 고통을 지닌 채 따를 수밖에 없는 형극의 길, 바로 지금 우리가 걸어야 할 그 길을 우리보다 앞서 많은 사람들이 자신의 삶을 바치며 걸어갔다”고 쓴 것을 보면, 이미 예감하였던 고통이었고, 그 안에서만 보프는 복음적 확신을 지킬 수 있었을 것이다.

 

한상봉 이시도로
<도로시데이 영성센터> 코디네이터
<가톨릭일꾼> 편집장

 

유튜브 강의: 한상봉TV-가톨릭일꾼
https://www.youtube.com/@tv-110

종이신문 <가톨릭일꾼>(무료) 정기구독 신청하기 
http://www.catholicworker.kr/com/kd.html

도로시데이영성센터-가톨릭일꾼 후원하기
https://v3.ngocms.co.kr/system/member_signup/join_option_select_03.html?id=hva8204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