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로시 데이 "나는 교회가 죄를 조금이라도 적게 저지르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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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로시 데이 "나는 교회가 죄를 조금이라도 적게 저지르기 바랍니다"
  • 로버트 콜스
  • 승인 2021.05.18 11:26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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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도로시 데이의 자서전 <긴 외로움>을 들고서 내가 보고 싶었던 구절을 찾았다. 그것은 1932년 수도 워싱턴에서 오랜 급진파 친구들이 굶주림에 대한 항의 행진을 조직하고 있었을 때 그가 자신을 어떤 구경꾼으로 생각했다는 대목이었다.

햇살이 반짝이는 어느날 누더기를 걸친 부랑자들이 깃발을 펄럭이면서 막대기에 슬로건을 붙이고 나무들이 옆에 나란히 서있는 워싱턴의 거리를 3천명이 떼지어 승리에 차서 행진하였다. 나는 가장자리에 서서 이 수많은 남녀들이 내 마음속에 쌓아주는 용기 속에서 기쁨과 자부심을 갖고 그들을 지켜보았다. 또한 이제 나는 가톨릭인으로서 근본적으로 다른 철학을 갖고 그들과 함께 거기 있을 수밖에 없었기 때문에 어떤 회한을 느꼈다. 나는 양심을 일깨우기 위하여 쓸 수 있고 항의할 수 있지만, 동지들이 노동자들에게 나아갈 때에 항상 썼던 기술인 실제적인 애덕의 행위를 위하여 수많은 남녀들이 이렇게 모여 있는데, 가톨릭의 지도력은 어디에 있는가?라고 질문할 수밖에 없었다.

도로시 데이의 부러움은 실제에 근거한 것이었고, 교회가 꽤 변화된 후에도 그 부러움은 오랫동안 그에게 남아 있었다. 교회의 모든 것이 변화된 것이 아니라는 것을 그는 알고 있었고 그 변화가 그에게는 충분치 않았다. “그건 계속되는 갈등이었습니다,” 라고 그는 말했다.

“예수님은 우리에게 ‘평화가 아니라 칼’을 주러 오셨습니다. 그분은 당신께서 싸우셨던 사람들과 우리가 싸우기를, 그분이 함께 계시기로 선택하신 사람들을 위하여 우리가 싸우기를 바라셨습니다. 그분은 거부된 사람들, 경멸 당하는 사람들과 함께 사셨기에, 우리의 삶이 더 화려해지고 더 중요해질수록, 우리는 그분께로부터, 그분이 사셨던 삶으로부터 멀어지는 것입니다.”

그는 그 단호한 질책과 함께 멈추었고, 나는 그곳에 앉아서 분위기에 압도되었고 안절부절하고 있었다. 그리고 나서 그는 <긴 외로움>에서 다른 구절을 읽도록 나에게 청했다. 그는 책을 들어 「일과 여행」중에서 다음 부분을 지적하며 나에게 책을 넘겼다. “몇해가 지났고, 이 노동자들이 요구했던 대부분의 법들은 이제 제정되었다. 나는 추위와 굶주림을 이기고 ‘여우도 굴이 있고 공중의 새들도 보금자리가 있지만 사람의 아들은 머리 누일곳 조차 없다’고 말씀하신 사람의 아들처럼 굶주림의 행진을 했던 사람들에게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자신들이 많은 것을 빚지고 있다고 깨달았을까 의문을 가졌다.

그는 급진적인 친구들과 너무나 심각하게 싸웠기 때문에 늘 자신을 괴롭혔던 문제를 제기하고 있었다. 그것은 교회가 진통제 역할을 하고 있다는 문제였다. 그는 다음과 같이 설명하였다:

“자 여기 노숙자가 있다고 합시다. 오늘 교회가 그를 데려와 먹히고 입히고 침대를 제공할 것입니까? 나는 이 질문을 내 삶의 마지막 날에 나 자신에게 하기를 바랍니다. 나는 하느님께 내가 절대로 그 질문을 잊지 않도록 해달라고 기도를 계속했던 적이 있습니다. 나는 이 기도에 대해 한 사제에게 말했고, 그 사제는 나에게 화를 냈습니다.

그는 내가 나 자신을 가톨릭 교회의 도덕적인 후견인으로 설정하고 있다고 말했습니다. 나는 아무말도 할 수 없었습니다. 나는 그가 내 안에 있는 큰 자만심의 풍선에 빵꾸를 냈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조금 후에 나는 화가 났습니다. 왜냐하면 나는 그가 어떻게 살고 있는지 알고 있었기 때문이었습니다. 다른 사람들을 심판하는 것은 내가 아닙니다. ­ 적어도 그 신부는 아니었습니다. ­ 그러나 그는 나 같은 평범한 죄인에게 그런 강타를, 참으로 도덕적 후견인이라는 엄청난 강타를 주어서는 안되었습니다. 나는 무엇을 해야 할지, 주님께서 나에게 주신 제한된 시간과 에너지를 갖고, 또한 여기에서 우리가 다른 사람들을 위해 쓸 수 있는 제한된 자원들을 갖고 살아가면서 매일매일 무엇을 해야 할지 충분히 헤매고 어려움을 겪고 있는데 말입니다.

아, 그의 말도 일리가 있었고 그래서 나는 상처를 받았습니다. 난 그 사실을 즉시 알았던 것 같아요. 예수께서는 당신이 가르치시는 것을 실천하셨습니다. 나머지 우리들은 언제나 실천하는 것보다 가르치는 것을 더 길게 하려는 유혹을 받습니다. 나는 그 신부가 나에게 큰 위험을, 내가 내 목소리에 정신이 나가고 내 말을 들으며 스스로 나의 지지자가 되는 큰 위험을 경고했다고 생각합니다. 만일 교회가 위선자가 아닌 사람들 그리고 자신들이 하느님의 선택된 사람들이라고 확신하지 않는 사람들로 이루어졌다면, 그 교회는 죄인들의 교회가 아니고, 따라서 교회라고 할 수가 없을 것입니다.

당신은 여기서 내가 발목이 잡힌 것을 볼 수 있을 겁니다. 즉, 나는 교회가 죄를 조금이라도 적게 저지르기를 바랍니다. 그러나 나는 우리 모두가 죄인들임을 알고 있고, 주위의 다른 많은 죄인들을 고발함으로써 내가 가장 최악의 죄인이 될 수 있는 기회를 붙잡고 있다는 사실을 또한 압니다.

나는 때때로 이 모든 것들­, 즉 지적인 체조를­ 다 겪습니다. 내가 지쳐 소진될 때까지 그래서 잠자고 싶어하거나 너무나 혼란스러워서 그저 할 수 있는 것이라곤 나가 걸으며 내 마음이  흩어질 때까지 그렇게 걷습니다. 바다는 특히 도움이 됩니다. 바다의 모습과 그 소리는 나에게 커다란 안도와 확신을 주고, 아무리 소용돌이치고 큰 소리가 나고 파도가 부딪쳐도, 바람에 휩쓸려도 이상하게 나를 평화롭게 해줍니다.

이렇게 바다가 성나도 불쌍한 모래들은 모든 공격을 다 감당하고 절대로 소리를 내지 않습니다. 바다를 볼 때에 나는 우리들이 가끔씩 우리의 지적인 몰두 작업을 중단해야 하며 만일 그렇지 않으면 우리자신을 그 작업으로 죽을 때까지 괴롭힐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예수님은 큰 참고서를 지니고 다니지 않으셨으며, 대학 졸업생도 아니셨습니다. 그분은 가난한 어부들에게, 병들고 가난한 이들 그리고 악령에 사로잡힌 사람들, 감옥에 갇힌 이들에게 말씀하셨습니다. 그분은 마음으로부터 우러나와 그들에게 말씀하셨고, 이야기들과 비유로써 말씀하셨습니다. 그들 안에 있는 모든 도덕적 에너지에 대해 말씀하셨지요.

바다를 나가서 보는 것, 혹은 나무 위의 새를 바라보는 것이 나를 조용하게 하지 못하면 성서의 이야기가 나를 도울 것입니다. 나는 공원에 나가 의자에 앉아서 성서를 읽거나 모래 위에 앉아서 읽습니다. 그리고 어쨋든 난 그 신부와, 나의 교회와 더 이상 싸우지 않습니다. 모든 실수, 잘못에도 불구하고 내가 사랑하는 교회입니다. 그리고 하느님은 내가 계속해서 교회에 대해 말하는 것을 그대로 보아주십니다.”

이런 긴장은 절대로 그를 떠나지 않았다. 이런 느낌들은 특히 1930년대 초반 대공황 시기에 강했다. 그는 사람들의 이런 모든 고통 앞에서 자신의 꽤 안락한 삶의 방식을 그대로 놔둘 수 있는 사람이 아니었다. 그는 일찍이 정치적 행동가로서 자신이 했던 노력들을 계속한다는 희망으로 가톨릭이 되었다. 그러나 그는 너무나 혼자임을 느꼈다 ­ 가톨릭 행동가 친구가 없이 홀로 실천하는 가톨릭인이 그였다. 워싱턴시를 떠나기 전에, 가난한 이들의 행진을 정리하며 그는 자신의 고민을 하느님께 가져가려고 매우 애썼다:

시위가 끝났을 때 그리고 나의 이야기를 쓰는 것을 끝내고 나서 성모 무염시태 축일날 가톨릭대학교 근처에 있는 미국 대성당에 갔습니다. 그곳에서 나는 눈물과 고통으로 특별한 기도를 봉헌했습니다. 그것은 나의 동료 노동자들, 가난한 이들을 위하여 내가 가진 탈렌트를 쓸 수 있는 어떤 길이 열려야 한다는 청원의 기도였습니다.

성당에 무릎을 꿇고 있을 때 나는 가톨릭으로 개종한 지 3년이 되었지만 행동하는 가톨릭인들과 내가 가진 유일한 접촉이 단지 한 가톨릭 잡지에 기고하고 있었던 글을 통해서 였다는 사실을 깨달았습니다. 그러한 접촉들은 짧고, 일시적인 것이었습니다. 나는 아직도 단 한 명의 가톨릭 평신도를 개인적으로 알지 못했습니다.

 

[원출처] <Dorothy Day, a Radical Devotion>, Robert Coles, 1987
[번역문 출처] <도로시 데이, 뿌리로부터 온전히 살다>(<참사람되어>2002, 7월호)

로버트 콜스(Robert Coles)

하버드 의과대학의 정신의학과 및 사회윤리학과 명예교수. 청소년 문제 상담 전문가로 활동해 왔으며, 50여 권이 넘는 책을 집필한 작가. 1973년 미국의 다양한 계층과 인종의 아이들을 직접 취재하고 분석한 <위기의 아이들>로 퓰리처상을 수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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