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로시 데이, 정치적 행동과 애덕활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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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로시 데이, 정치적 행동과 애덕활동
  • 로버트 콜스
  • 승인 2021.06.21 11: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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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버트 콜스의 [DOROTHY DAY, A RADICAL DEVOTION]

<긴 외로움>의 끝무렵으로 가면서 도로시 데이는 1930년대 초기에 뉴욕의 길거리에서 활동하고 있었던 옛 공산주의자 친구들과 공동체의 새로운 친구들, 동료들을 흥미 있게 비교하고 있다:

대공황 시기에 공산주의자들과 우리 가톨릭일꾼공동체 식구들은 거리의 시위에서 자주 충돌했었다. 그들의 포스터는  “장개석 물러나라!” 였고 우리들은 철거에 반대하여 시위하고 있었다. 우리의 또 다른 피켓구호가 "임금이 아니라 일을 달라!" 였을 때, 공산주의자들이 요구하는 것은 더 많은 구호, 실업수당과 주정부로부터 얻을 수 있는 모든 혜택이었다.

그는 늘 단순한 이야기, 기억나는 체험의 순간들을 썼는데, 이런 이야기들은 많은 생각들을 불러 일으켰다. 가톨릭일꾼운동은 노동하는 남성 여성을 강조하고, 일을 한 사람의 경제적 사회적 상황을 풀어가는 열쇠로서 뿐만 아니라 도덕적 영적인 안전장치로서 강조한다.

가톨릭일꾼운동은 시작부터 또 다른 종류의 일을 강조했는데, 그것은 매일의 애덕 실천이었다. 애덕은 가톨릭일꾼운동에서 볼 때 한 사람이 다른 이들에게 다가갈 수 있는 수단이며 그럼으로써 보상을 받는 길이다. 위의 설명을 볼 때 가톨릭일꾼운동에서는 또한 반 통제적인 측면이 나타난다. 운동은 항상 남자와 여자와 아이들로 이루어지는 특정한 공동체에, 그리고 그들의 필요와 관심사에 촛점을 맞추었고 국가나 국제사회의 정치보다 이웃간의 확대된 가족의 가능성을 강조하였다. 다른 사람들이 워싱톤이나 런던, 파리나 모스크바 혹은 도쿄에서 로비를 하게 하라고 하며, 그러는 동안 가톨릭일꾼들은 가까이 사는 사람들의 필요에 주의를 기울일 것이라고 그는 말한다.

 

책과 신문 칼럼에서 도로시 데이는 가톨릭일꾼이 갖고 있는 과제의 사회적 정치적 이념을 대략 그리고 있는데, 그것을 <긴 외로움>에서도 볼 수 있다:

우리들의 프로그램은 장기적인 프로그램으로, 노동자들이 생산수단을 소유하고 조립작업을 폐지하며, 공장의 분산화, 수공예의 복구와 재산의 소유권 확보를 추구한다. 이것은 물론 우리경제의 농업농촌 측면을 강조하고 도시보다 땅에 대한 비중이 더 커져 가는 변화를 의미한다.

그는 “밑바닥으로부터 일하는 것”의 중요성을 말하고 있다. 이것은 모든 가톨릭일꾼공동체의 노력에 있어 기본적인 취지가 되었다. 집중적으로 한결같이 시도하는 지역주의는 점차 국가차원으로 변화되기 위한 단계가 아니라 지역주의 자체가 최종적인 목표이다. 이 지역주의는 영적이고 정치적인 작업을 포함하고 있다: “애덕의 영적인 작업들은 무지한 사람들을 개화시키고, 죄인들을 선도하며, 고통받는 이들을 위로하고 잘못들을 인내하는 것이며, 우리는 언제나 이런 일들과 피켓시위, 자료 분배를 함께 해왔다.”

그는 이 지역주의를 “그리스도의 기술”이라고 생각했다. 그는 항상 예수를 될 수 있는 대로 진지하게 받아들였다. 도로시 데이는 늘 예수가 비천한 목수였으며 30대 초반에 황제와 왕과 중요한 관리들과 어울리지 않았고 똑같은 비천한 사람들과 어울렸으며 그래서 소수의 어부들, 농민들, 소수의 불편한 사람들과 가난하고 곤궁에 처한 사람들에게 그들이 커다란 희망을 가질 이유가 있다고 설득했던 것을 기억하였다.

그러한 지역주의가 늘상 가톨릭일꾼운동의 자원봉사자가 될 사람들에게 감명을 주지는 못했으며, 이미 운동에 가담하여 투쟁하고 있는 일꾼들에게도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많은 젊은이들이 개혁을 성취하는데 있어 정부의 역할을 강조하는 자유주의적 혹은 사회주의적 관점을 가톨릭일꾼의 체험에 접목하려고 했다. “많은 사람들이 가톨릭일꾼공동체를 떠났다”고 하면서 그는, “왜냐하면 그들은 가난한 이들을 먹이는 일에서 아무런 의미와 가치를 찾을 수 없었고 그들 자신에 대한 수치를 느꼈다”고 그 이유를 말하고 있다.

그가 말하는 수치, 부끄러움은 현실의 비참이 계속 이어지고 있다는 분노의 수치감이었다. 이러한 감정들은 사람들이 사회의 이기심을 보다 대립적인 태도로써, 정치적 행동을 통하여 대면하도록 만든다. 그리고 남아있는 그와 다른 사람들은 그런 감정을 공유하였다. 그러나 그들은 전반적인 목적들, 지역에서의 노력들을 쓸데없다는 느낌이나 도덕적인 당혹감에도 불구하고 지켜나갔다.

교회가 선교사들을 통하여 가장 외진 마을이나 도시로 뻗어나간 것처럼 우리도 그렇게 나아갔다. 때때로 우리는 교회를 통해 때로는 신문독자들, 노동조합의 조직가들 혹은 조직될 필요가 있는 사람들을 통하여 그런 접촉을 해 나갔다.

우리는 실업자들, 병든 이들, 고용될 수 없는 사람들과 함께 살았다. 조직되고 조합에 가입되어 있으며 동료들로부터 지지를 받고 있는 노동자와, 조직 없이 우리 집의 급식에 오는 노동자들 사이의 대조되는 모습은 불쌍했다. 이런 사람들은 지상의 재물뿐만 아니라 영적인 재화, 그들의 인간 존엄성에 대한 감각마저도 빼앗기고 있는 것이다.

시의 무료 숙박시설에서, 무료 의원에서, 우리들의 환대의 집에서 줄을 서야 하는 그들이야말로 참으로 삶의 벼랑끝에 있는 절망적인 사람들이다. 자원봉사자로 오는 많은 젊은이들이 이런 상황을 견디지 못하고 계속 떠나갔다 .우리에게 방이 부족하고 돈이 없다는 사실, 이 수치스러움을 계속 겪어야 한다는 사실이 우리의 가슴을 메어지게 한다.

그런데 젊은 봉사자들 중에는 다른 이유로 떠나는 사람들도 있었다. 때때로 어떤 젊은이들은 운동의 철학적인 핵심을 문제로 삼았다. 그들은 전혀 다른 접근 방식을 시도해 보고 싶었다. 도로시 데이는 그들을 이해할 수 있었다. 왜냐하면 그도 항상 전통적인 정치행동가로서 온 힘을 다해 권력의 중심으로 밀고 들어갈 준비가 되어있었던 자신의 한 모습과, 직접 관계를 맺고 돌보는 사람들에게 눈길을 단호히 고정시키려고 노력하는 또다른 자신의 모습 사이에서 늘 중재를 해야했기 때문이었다.

내가 가르쳤던 한 학생이 쓴 글이 있다. 그는 매사추세츠 주의 캠브리치에서 뉴욕 맨해튼의 아래 쪽 동부지역으로 여행을 했고 다시 보스턴으로 돌아갔던 경험을 적고 있는데, 이상과 기대를 붙잡으려고 하고, 실망감과 함께 살아보려고 애쓰며 싸우는 자신의 내부 모습들을 보여준다.

“나는 지금 생각해보면 어리석고 유약한 태도로 마치 천국에 가는 것처럼 성 요셉의 집에 갔습니다. 나는 도로시 데이의 책들을 읽었지만 실제로 그가 의미하는 것에 거의 관심을 두지 않았어요. 나는 그의 관대한 글을 통해서 발산되는 선함의 향기에 매혹되었지요. 나는 가서 그가 하고 있는 일의 10%만 해도 굉장한 발전일 것이라고 혼자 생각했습니다.

나는 중상층의 떠오르는 태양 속으로 온갖 계획을 갖고 곧장 이륙할 수도 있었지만, 요셉의 집에 갔고 가톨릭일꾼 사람들을 알게 된 덕분에 나 자신만 아니라 다른 사람들에 대해 약간 관심을 갖게 되었습니다. 그들은 나에게 입을 다물고 다른 사람들을 섬기는 것을 가르쳐 주었어요. 그들은 내가 가난한 사람들, 평상시에 부랑자, 건달, 나쁜 사람들이라고 생각했던 사람들에 대해서도 존경하는 법을 가르쳤습니다.

그건 어려운 일이었지요. 오랫동안 나는 술취한 사람들과 중병에 걸린 남자들, 여자들, 마음과 몸이 병든 사람들에게 시간을 쓰지 않고 내 계획을 위해 떠날 준비가 되어 있었습니다. 그러나 나는 요셉의 집에 눌러 지냈으며, 가톨릭일꾼들이 보살피는 사람들에 대해 알기 시작했지요.

가톨릭일꾼들과 일하는 것을 쉬운 일이라고 생각하지 마세요. 그들은 이상하게 보이는 사람들입니다. 그들은 그들세계의 바깥에서 무슨일이 일어나고 있는지 별로 아는 것이 없는 것 같아요. 그래요, 그들은 신문을 읽지만 기도하고 스프와 커피를 준비하고 배급하며 치우고 다음날의 음식을 준비하는 그들의 작고 작은 세계에 온통 매달립니다. 그들은 대통령이나 상원의원이 말한 것에 대해 나처럼 안절부절 하거나 화를 내지도 않습니다.

나는 결코 그들 공동체의 일원이 되지 못했어요. 나는 도왔지만 계속 반대 생각을 하고 있었어요. 나는 계속 생각했어요. 이건 좋은 실험이지만, 변화되어야 할 것을 진짜로 변화시키지는 않는다고요. 나는 그들과 이야기하려고 애썼어요. 그들이 방향을 바꿀 수 있다면 50명을 아니 50명의 50배 사람들을 먹일 수 있다고 말해 보았어요. 그리고 아직도 저주받을 똑같은 굴레에 묶여있는 사람들이 저 밖에 수백 만명이 있다고 말했어요.

성 요셉의 집에서 스프 한 그릇을 얻어먹는 남자도 여전히 풀리지 않는 문제들을 갖고 있어요. 바우어리 지역에 있는 건달들이 아닌 다른 모든 가난한 사람들 그리고 도로시 데이나, 가톨릭일꾼 신문, 혹은 그 훌륭한 사람, 피터 모린에 대해 전혀 들어본 적이 없는 많은 사람들은 또 어떻습니까? 사회보장과 실업수당이 없었더라면 굶어죽었을 사람들 그리고 의료보장이 없었으면 더 큰일을 겪었을 모든 사람들은 또 어쩔 것입니까? 복지 혜택을 얻었지만 만일 그것이 없다면 완전히 바닥에 떨어졌을 사람들은 또 어떻습니까?

“훌륭한 가톨릭일꾼사람들과 함께 앉아서 하느님의 도움을 청하는 기도를 듣고, 서로 이야기를 나누면서 국가가 답은 아니며, 국가는 ‘잘못된 도구’ 라고 주장하고 소공장들과 농장들 그리고 작은 종교적 공동체들만이 유일하게 작용할 것이라고 하는 말을 듣고 있는 것은 꽤 불편합니다. 그들이 말하는 ‘작용한다’는 것은 무슨 뜻인가요? 누가 그 말을 정의합니까? 그들은 정부가 사람들에게 무관심하고, 애덕은 사람에서 사람에게로 가야한다고 생각합니다.

말은 대단하게 들립니다. 그러나 그들은 수백만 명의 사람들에게 실제로 일어나고 있는 일과 멀리 떨어져 있습니다. 그들은 알고 있어요 ­ 내가 말하고 있는 것을 그들이 모른다고 말하는것이 아닙니다. 나는 다만 가톨릭일꾼운동이 비현실적이고, 이 국가가 겪고 있는 문제들의 99%에 아무런 변화도 주지 못한다는 사실을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것은 집중적으로 그리스도적인 삶을 살고 싶은 몇몇 사람들의 운동일 뿐입니다. 나는 그들에게 감탄하지만, 그들이 가진 많은 생각에 대해서는 감탄 할 수 가 없어요.

어떤 사람은 대기업과 싸워야 합니다. 그리고 어떤 사람은 정부에게 가난한 이들을 돕도록 압력을 가해야하고, 어떤 사람은 노동자들에게 일자리를 만들기 위하여 노력해야 합니다. 워싱톤, 미국의 경제적 정치적 권력으로부터 등을 돌리고 공생주의에 대해 계속 이야기만 하는 것은 우스꽝스러운 일입니다. 나는 절대 반대입니다.

나도 이 나라 전역에 그리고 세계의 모든 나라에서 사랑으로 가득찬 공동체를 보고 싶어요. 그러나 그러는 동안 IBM과 GM과 GE, 보잉사등 대기업과 로비스트들, 수많은 살찐 고양이 같은 로비스트들, 장성들과 제독들과 방위 계약, 비용들, 수십억 달러가 그들의 손에 들어가고 있습니다. 우리가 이 나라의 가난한 사람들에게, 세계의 가난한 이들에게 관심을 둔다면, 이 모든 것에 관심을 두는 것이 더 낫겠다고 생각하지 않습니까?

당신들은 가톨릭일꾼 사람들이 하늘 높이 의기를 잃지 않고 있으며 다만 지금 벌어지고 있는 진짜로 중요한 전투들에 관여하지 않고 있을 뿐이라고 주장할 수 있을 겁니다. 그러나 이 전투들은 가난한 이들이 더 나은 몫을 얻을 것인가 아니면 많은 몫을 얻지 못하고 때때로 부스러기나 얻을 것인가를 결정하게 될 겁니다. 난 이런 식으로 말하고 싶지 않지만 누군가는 잔혹한 현실과 직면해야 하고 무슨 일이 실제로 일어나고 있는가를 말해야 합니다. 성서와 당신들이 너무나 좋아하는 소설가들의 말만 계속 반복해서 말하는 것으로만은 부족합니다.”

여기에서 그가 말한 “당신들”이란 그리스도교 사목활동에 있어 인간학을 가르치고 있는 우리들을 지칭하는 것이며, 그는 이 사목활동을 관찰해 왔었다. 실리적인 정치에 대한 그의 솔직한 지지는 그가 이야기를 나눈 가톨릭일꾼운동 사람들을 놀라게 하거나 화나게 하지 않았다. 도로시 데이도 내가 그의 타자된 글들을 보여주었을 때 자신을 변호하려고 하지 않았다. 그는 이 모든 반대와 유보적인 태도들을 그 전에도 들었다. 그는 국가정부가 구체적인 행동을 취하도록 압력을 가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것도 알았다. 뿐만 아니라 미국에서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가에 대해서, 심지어 외국에 대한 정보도 충분히 듣고 있었다. 그는 신문을 꼼꼼하게 읽고 라디오에 귀를 기울였다. 그의 친구들은 대부분 정보를 잘 얻고 있었다 젊었을 때의 사회주의와 공산주의를 포기했어도 그는 경제적 정치적 분석으로 자본주의의 병폐를 절대로 잊지 못했다. 참으로 그는 급진적이고 철저한 근본주의의 가장 좋은 부분인 가난한 이들에 대한 관심, 자본주의 세계에 대한 날카롭고 예민한 분석을 그리스도교적인 관점과 연결시키려고 애를 써왔다.

어떤 의미에서 그의 의무감은 위의 글을 쓴 젊은 학생의 의무감과 비슷했다. 즉 세계를 보다 나은 곳으로 변화시키려는 희망을 갖고 가능한대로 또한 알고있는 대로 구체적이고 적극적이며 신중하게 처신하는 의무감을 둘 다 갖고 있었다. 그가 한때 다음과 같이 표현했듯이. “만일 내가 이곳에 정신없이 몰두해 있다면, 내 자신이 좀더 기분 좋게 느끼기 위해서 혹은 나의 작은 꿈을 추구하기 위하여 이곳에 빠져있다면, 나는 다시한번 자만심이라는 최악의 죄를 짓고 있다는 죄책감을 느끼게 될 것이다.” 그는 이 간결하고 명확한 관찰을 계속했다: “우리 모두는 할 수 있는 한 효율적이 되어야 한다. 우리주님께서 지적하신 대로 또한 우리 교종들이 노동회칙에서 지적하는 방향대로 교회가 변할 수 있도록 가능한 모든 것을 해야한다.”

비록 어떤 특정한 이웃 안에서 살고 일했지만 그는 폭넓게 여행을 했고 본 것을 계속해서 발표하였다. 그는 자서전에서 폴 세인트 마리와의 우정에 대해 말하고 있다. 그는 연장과 염색 제조업체인 “첫 번째 지역 포드 자동차 회사의 회장” 이었다. 그는 도로시 데이를 데리고 자동차 공장 주변을 돌았다. 그는 “조립작업장이 무엇인지 보여주었다... 나는 공장문 옆에서 인쇄물들을 나누어주려고 했던 사람들이 형편없이 매맞은 것을 보았다. 그리고 나는 추운 겨울날 그들이 일자리를 찾으며 포드 공장문 옆에서 서성거리고 있을 때 실업자들이 그들에게 소방호스를 들이대는 것을 보았다.”라고 도로시 데이는 전해준다. 1930년대에 노동조합을 결성하려는 노동자들의 투쟁이 그의 마음을 많이 차지하고 있었다.

나는 인쇄물들을 허기진 듯이 집었다; 나는 말마디를 빠짐없이 읽었다. 나는 그 사람들과 함께 그곳에 있고 싶었다. 나는 그들이 헨리 포드와 그의 개인군대와 싸워서 노동 승리를 차지하기를 바랬다. 피터는 할 수만 있었다면 포드자동차를 해산시켰을 것이다. 자동차회사 노동자들과 그들의 노동조합 결성투쟁이 주제로 떠오를 때마다 피터는 조합을 만드는 것이 잘못이라고 말했다. 노동자 등은 모두 공장을 그만두고 땅을 확보하여 자신들의 식량을 키워야한다고 말했다. 난 동의했다 ­ 그러나 나는 노동자들이 그렇게 하지 않을 것이고 단식을 하리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나는 헨리 포드가 온갖 곳에서 불러모은 갱단 보다 그들이 더 오래 견디기를 기도했다.

피터는 항상 상상 속에서 아름다운 세계를 세우는 것에 대해 생각하고 있었다. 그는 꿈꾸는 사람이었다. 나도 꿈꾸는 사람이었다. 그러나 나는 많은 피켓시위에 참가했기 때문에 그 꿈을 잊어버렸다. 그리고 나는 국제노동자연맹에 합류했고 주님께서 움직이셔서 공장 문을 닫기 전에 포드공장 노동조합이 창설되는 것을 보고 싶었다! 주님은 아직 그들의 문을 닫지 않으셨으나,  20여 년이 하느님께 무슨 상관이겠는가? 때때로 사람들은 나를  “이상주의자”라고 부르지만, 나는 아니라고 대답하고서 다만 많은 다른 사람들보다 내가 시간에 대해 갖고있는 감각이 좀 다를 뿐이라고 말했다.

[원출처] <Dorothy Day, a Radical Devotion>, Robert Coles, 1987
[번역문 출처] <도로시 데이, 뿌리로부터 온전히 살다>(<참사람되어>2002, 7월호)

 

로버트 콜스(Robert Coles)

하버드 의과대학의 정신의학과 및 사회윤리학과 명예교수. 청소년 문제 상담 전문가로 활동해 왔으며, 50여 권이 넘는 책을 집필한 작가. 1973년 미국의 다양한 계층과 인종의 아이들을 직접 취재하고 분석한 <위기의 아이들>로 퓰리처상을 수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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