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로시 데이 "나는 왜 가톨릭을 선택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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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로시 데이 "나는 왜 가톨릭을 선택했을까?"
  • 로버트 콜스
  • 승인 2021.04.19 19: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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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버트 콜스 [Dorothy Day, a Radical Devotion] -13

<긴 외로움>에는 토마스 머튼의 <칠층산>처럼 개종 문학에서 만나게 되는 승전가들이 있다. 이런 이야기들은 문제가 많고 상처받은 한 사람이 많은 방식들로 삶을 살아보다가, 세속적인 신앙에 빠져 있다가 (맑스, 프로이드, 소비주의 혹은 방랑) 마침내 교회의 품안에 들어와서 다른 사람들, 그 바깥에 있는 다른 사람들이 어떻게 아직도 바깥에 그냥 머물고, 세상의 빛을 볼 수 없는지 갑자기 이해할 수 없게 된다.

그러나 <긴 외로움>에서 도로시 데이의 종교적 감수성은 중요한 기회마다 자신의 자아도취가 지닌 죄스러운 측면을 이야기하는 자기 성찰적인 회의주의와 늘 함께 있다. 그는 이미 개종할 때에 그가 온 몸으로 포옹하기로 선택하고 열정적인 결혼을 한 바로 그 교회에 대하여 절망적인 관찰을 할 수 있었다. “나는 그리스도께서 가시화된 모습인 교회를 사랑했다.” 그는 가톨릭으로서 “가난하고 정결하며 순명하기로” 한 자신의 개인적인 서원에 대해 묘사한 후 즉시 교회를 관찰한다. 그리고나서 그는 거의 2천년동안의 교회역사에 대하여 날카로운 의견을 덧붙인다:

“(나는) 교회 그 자체 때문에 교회를 사랑한 것이 아니었다. 교회는 오히려 자주 나에게 스캔들이 되었다. 로마노 과르디니는 그리스도께서 못박힌 십자가가 바로 교회라고 말했다; 우리는 그리스도를 그분의 십자가로부터 분리시킬 수가 없으며 항상 교회에 대한 영원한 불만족의 상태에서 살아가야 한다.”

그의 개종을 자신들의 목적을 위해서 사용하고 싶은 사람들이 있었다. 그들은 그의 개종을 마치 타고난 그리스도인의 경우라고 생각하는 것 같았다.

“내가 개종한지 얼마 안되어 한 신부가 개종이야기를 쓰라고 부탁하면서 교회의 사회적 가르침이 나로 하여금 어떻게 가톨릭을 포용하게 만들었는지도 적어보라고 하였다. 그러나 나는 그때 교회의 사회적 가르침에 대하여 아무것도 몰랐다. 나는 회칙에 대해 들어본 적도 없었다."

”이야기를 나눌 때 그는 자신의 개종이 전혀 정치적인 의미가 없다고 계속 말하고 있었다. 그러나 그는 오늘날 사람들이 그렇게도 생각할 수 있다고 이해했다. 개종 전의 생활과 지난 수십 년 동안의 다양한 사회 경제문제를 다루어온 교회생활을 보면 그렇게도 생각할 수 있다는 것이었다. 또한 동시에 그는 자신의 개종이 “지나치게 심리적인”것으로 간주되지 않기를 바랬다. 물론 자신의 개종이 딸의 출생과 남편의 세계관과 관련된 측면이 있다고 인정하기도 했지만.

 

그때 교회에 들어올 때에 느꼈던 “가장 밑바닥 이유들”이 무엇인가를 물었을 때 그는 다음과 같이 대답했다.

“난 어떻게 대답해야 할지 모르겠습니다. 내가 한때 가톨릭이 아니었다는 사실을 때때로 잊어버립니다. 교회는 오랫동안 나에게 너무나 중요했기 때문에 교회 없는 삶을 상상하기가 어렵습니다.

그래도 30년 동안 난 교회 없이 살아왔습니다. 개종했을 때 어떤 친구들은 내가 살아가는 것을 중단했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들은 내가 미쳤다고 생각했어요. 친구들은 그들이 알 수 없는 어떤 사람한테 내가 끌려가고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리고 그들은 포스터를 비난할 수 없었기 때문에 악마를 데려갈 사람을 사방에서 찾고 있었습니다.

한 번은 ­앉아서 저녁을 함께 먹고 있었는데 그 순간을 잊을 수가 없어요­ 포스터가 종교에 대해서 약간 얘기를 하면서 나에게 질문을 던졌습니다. 그는 직접 이렇게 말했어요: “당신을 가톨릭으로 떠밀고 있는 사람이 도대체 누구요?” 나는 너무나 깜짝 놀라서 대답을 어떻게 해야 할지 난감했어요. 나는 거기에 앉아 있었는데, 이번에는 내가 침묵했습니다.

그는 나를 물끄러미 바라보았고, 내 침묵이 그를 극단적으로 의심하게 만든다는 것도 알았습니다. 그는 다른 사람이 없다는 것을 알고 있었지요. 그러나 그때 나는 또다른 사람이 있다는 걸 깨달았어요. 왜냐하면 하느님이 사람이 되셨고 우리를 찾아오셔서 우리 하나 하나를 그분께로 부르셨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난 그에게 말했지요, ‘그 사람은 예수예요. 나를 가톨릭으로 이끌고 계시는 사람은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그들의 교회는 바로 그분의 교회이니까요. 그분이 교회를 선택했어요.’

난 전에 그가 그렇게 하얗게 질리는 것을 본 적이 없어요. 그리고 그가 일어나서 집을 나가버리고 한 동안 돌아오지 않을꺼라고 짐작했습니다. 화가 났을 때 그는 그렇게 하곤 했어요 ­ 하얘지고 침묵하곤 그저 사라져 버리는 거지요. 그는 해변가에서 자거나 그곳에서 살기도 했어요. 그는 보통 때보다 훨씬 더 자연세계의 일부가 되어 지내곤 했습니다.

그러나 이번에는 전혀 움직이지 않았어요. 그곳에 앉아서 그냥 나를 노려보았습니다. 난 그에게 종교에 대해서 더 얘기를 나눌 수 있겠느냐고 물었습니다. 지금 그가 그런 질문을 했으니까 말입니다. 그리고 나에게 질문을 해줘서 고맙다고도 했어요. 그는 한 마디도 안했고 고개를 끄덕이거나 옆으로 흔들지도 않았습니다. 때때로 기분이 우울하거나 하고싶지 않을 때 그는 그런 표시를 하곤 했어요. 내 생각에 그는 말할 수가 없었던 것 같아요. 그는 단지 나를 바라보기만 했고 난 예민해 졌습니다. 나는 그가 곤란한 지경에 있었고 아마도 ‘까무러칠’지도 모른다고 생각했습니다.

마침내 포스터는 나를 응시하는 것을 그만두고 손을 내려다보았습니다. 그리고 나서 두 손을 꽉 잡았습니다. 마치 아이들이 때때로 학교에서 선생에게 자기가 착한 아이라는 것을 보이기 위하여 애쓸 때 하는 것처럼 말입니다. 포스터는 두 손을 꽉 잡고 책상 위에 올려놓고서 다음 무엇을 해야 할지 지시사항을 기다리고 있는 것 같았지요. 몇 초 동안 꼼짝 않고 그렇게 앉아있었어요.

난 다시 불안해지기 시작했어요. 난 그에게서 성난 에너지를 느낄 수 있었어요. 그때 그가 손을 계속 잡은 채 위로 올려서 식탁을 세게 내리쳤어요. 접시들이 덜거덕거렸고 난 그가 다음에 어떻게 할까 궁금했어요. 끔찍한 생각이 내 머리를 스쳤지요. 지금 일어나서 자제할 수가 없어 그 손으로 나를 때리기 시작할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물론 그는 그렇게 하지 않았어요. 후에 난 그때 그런 생각이 내 마음을 스쳤다는 사실에 마음이 아펐습니다.

머리 속에서 그런 생각을 한 것이 그에게 불공평한 태도였다고 느꼈습니다. 그러나 그는 계속 화가나 있었고, 손으로 식탁을 내려친 후에 일어나서 내가 어떤 저주에 걸렸거나 무슨 나쁜 일이 나에게, 내 마음속에 일어나고 있다고 말했습니다. 난 그를 더 말하게 하고 싶었어요. 방금 말한 것에 대해 더 얘기를 나누자고 했지만 그는 듣지 않았습니다. 그는 얘기를 나눌 수가 없었던 것이지요. 그는 손을 펴고 나서 식탁을 한 바퀴 돌더니 나가버렸습니다.”

그는 말을 멈추고 더 이상 계속하고 싶지 않은 것 같았다. 왜 나는 정신과 의사로서도 궁금하고, 그를 깊히 존경하는 나를 포함한 많은 사람들이 궁금해한다는 말을 하지 못했을까? 즉 종교에 대한 관심 부족과 심지어 적의감을 가진 것 이외에 포스터에게는 그가 도망하고 싶었던 어떤 것이 있었는가 하는 질문이었다.

내 친구 하나가 다음과 같이 말했듯이, ‘비참하게 느끼며 해변가에 나가 살았던 그 남자는 도로시 데이가 후에 너무나 참을성 있게 돌본 사람들만큼 자신 안에 하느님을 많이 갖고 있는 사람임이 틀림없었다.’ <긴 외로움>에서 그 자신도 이 사실을 인정하고 있다. “그런 갈등이 내 안에 있었다. 한 여인이 한 남자 없이 자신의 온전함을 느끼지 못한다.... 내 가슴에 얼굴을 묻고 내 어깨 위에 팔을 걸친 그 얼굴에 대한 갈망 없이 온전한 여자가 되지 못한다는 것을 내가 깨달은 것은 오래된 일이었다. ....” 그렇다면 왜 그는 그의 개종에 있어, 새로운 가톨릭의 삶에 있어 그리고 곧 이어 새로운 가톨릭 행동가의 삶에 있어 독신생활이 필요하다고 결정했는가? 그런 질문이 내 머리를 빠르게 스쳐 지나갔으나 그가 다음과 같이 표현하는 것을 보고 내 질문을 그냥 다 삼켜 버리고 말았다.

그는 뜨거운 차 한잔을 가까이 놓고서 차가와 지기를 기다리고 있었다. 그는 조급하게 무엇인가 하려는 마음으로 차를 마셔봤다. 아직도 차는 뜨거웠다. 그는 놀라서 급히 내려놓았다. 그러나 그는 즉시 찻잔을 들어 단번에 다 마셔버렸다. 혀와 목구멍, 식도까지 분명히 꽤 뜨거웠을 텐데 빨리 쭉 들이켰다. 나는 가만히 앉아서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나는 그가 손을 꽉 잡은 것을 보았다. 나는 내 손을 그렇게 붙잡고 싶은 충동을 느꼈지만 애써 꾹 참았다.

갑자기 그는 다시 이야기를 하기 시작했다.

“나는 그때 나에게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모릅니다. 나는 포스터의 질문이나 뉴욕시의 모든 친구들이 ­ 나의 급진파 친구들, 내가 너무나 사랑했던 모든 친구들 ­ 하는 질문에 대해 어떻게 대답해야 할지 몰랐습니다. 그것은 그들이 나에 대해서, 그리고 나의 종교적 관심사가 거론될 때마다 했던 질문들입니다.

나는 많은 사람들이 내가 의사를 보러가기를 원했다고 생각합니다. 한 사람은 내가 맨해튼에서 가장 좋은 정신과 의사를 찾아야 한다고 계속 말했습니다. 나는 종교를 어떤 미친짓으로 생각하는 그를 하느님이 용서하기를 바란다고 말했습니다. 그랬더니 그는 나에게 매우 화를 냈습니다. 그는 내가 큰 문제에 빠져있고 그것도 최악의 문제라고 말했지요. 왜냐하면 내가 문제를 몰랐고, 내 안에 정말 얼마나 많은 문제를 갖고 있는지 몰랐기 때문에 그렇다는 것이었습니다.

나는 웃고 나서 그가 자신에게 유리하게 생각하는 좋은 사고 방식을 갖고 있다고 말했어요. 몽땅 자기 방식대로 생각하면서 내가 무엇을 말해도 그는 실제로 내 안에서 일어나고 있는 일을 내가 전혀 알지 못한다고 계속 말했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도 이 말을 듣고 웃었으나, 어떤 다른 친구들은 웃으려고도 하지 않았으며 내가 내 문제와 교회에 가는 것에 대해 가볍게 다루려고 해도 웃지 않았습니다.

나는 한 친구에게 내가 많은 파티에 나가고 지나치게 술을 많이 마셔도 절대로 상관하지 않았는데, 지금은 가톨릭이 되어 영성체 때 약간의 포도주를 마시는 것을 오히려 기뻐해야 하지 않느냐고 말했습니다. 솔직하게 말하자면 나는 그런 대화를 좋아하지 않았으나, 마치 내가 큰 문제나 있는 것처럼 지금 나를 쳐다보고 있는 사람들과 벌이는 매우 거친 대화들을 중단시키는 가장 좋은 방법이라고 생각했습니다”

다시 멈춤.

“나는 내 친구들이 나를 그런 식으로 분석하는 것에 대해 관심이 없었어요. 포스터가 떠난 그날 나는 계속해서 희망이 없다고 생각하고 있었습니다. 나는 예수 그리스도를 믿었습니다. 그분이 실제이시며 하느님의 아들이고 이곳에 오셨으며 역사에 들어오셨고 아직도 이곳에 계시며, 그분의 교회를 통하여, 교회의 성사를 통하여 언제나 우리와 함께 계신다는 사실을 믿었습니다.

그러나 포스터와 다른 사람들은 나에게 무슨 나쁜 일이 일어났거나 아마도 나의 심리적인 문제들이 극히 심각하기 때문에 정신이 나갔다고 생각했습니다. 나는 정말로 내가 잘못되었다고 생각하느냐고 자신에게 물었습니다. 그러나 나는 그렇게 확신할 수 없었어요. 나는 내가 잘못으로부터 구해졌다고 느꼈지, 무언가 나쁜 일이 내게 일어났다고 생각할 수가 없었어요.”

자서전에서 그는 개종한 후에도 자기를 의심하는 순간들이 있었다고 인정한다.

나는 세례, 고해 그리고 성체성사에 참여하는 것에서 어떤 특별한 즐거움을 느끼지 못했다. 나는 성사에 적극적으로 참여하기 위한 노력들을 시도하였다... 신앙을 고백하고 어떤 종류의 위안도 없이 노력했다. 그러나 내 마음 한 구석에서 계속 말하는 소리가 들렸다, “넌 무엇을 하고 있니? 그렇게 너 자신을 확신할 수 있어? 이건 어떤 허식인가? 네가 하려는 행위는 도대체 무엇인가? 너는 감정을 일으키고, 신앙을 유도하며 아편을, 민중의 아편을 받아들이려고 하는 것이지?“ 난 무릎을 꿇으면 위선자처럼 느껴졌고 누구라도 나를 보고 있다는 생각에 벌벌 떨었다.

그는 위의 글을 썼을 때 느꼈던 것보다 자신에 대해 더 비판적이라는 사실을 20년이 지난 다음 우리들이 대화를 하는 도중에 알아차렸다. 그는 <긴 외로움>에 대한 다른 사람들의 평가를 반복해서 떠올렸다:

“난 그 책에 관한 편지들을 수년간 받아왔어요. 그리고 대부분은 우정과 칭찬의 말들이었지만 다 그런 것은 아니었습니다. 비판적인 편지들은 아직도 나에게 똑같이 말합니다 ­ 오클라호마에서 온 색깔 있게 말하는 한 사람이 표현한 것처럼 (나는 그가 오클라호마시 출신이라고 생각합니다), 내가 돼지에게나 줄 쓰레기 같은 것을 샀다고 했습니다. 그는 나를 프로테스탄트로 끌어들이고 싶어했습니다. 그것을 위해 노력하겠다고 말했어요. 그는 그가 끌어들이는 매 영혼마다 커미션을 얻는다고 말했어요. 그는 농담이 아니었습니다. 그리고 사과하지도 않고 전혀 당황해 하지도 않았습니다.

그러나 보통의 편지나 사람들이 보통 말하는 것은 ­ 이랬습니다: 당신은 너무나 많은 용기를 갖고 있어요. 나도 그런 용기를 가졌으면 좋겠어요. 그러면 내 자신에게 말합니다, 용기라고? 나는 용감하지 않았어요. 나는 혼란스러웠습니다. 나는 고집스러웠습니다. 아마도 자포자기에서 나온 고집이었을 것입니다. 나는 교회로 이끌리고 있는 자신을 느꼈습니다. 그러나 왜 그럴까를 ­내 친구들이 묻고 있었던 똑같은 질문에 대해서­ 생각하며 두려웠습니다. 허지만 나는 친구들만큼 그 질문을 의식하고 있지 않았습니다.

당신이 방금 읽어주었던 그 대목을 내가 썼을 때 나는 아마도 시늉만 하고 있었던중이었을 것입니다. 이 구절은 내 어머니가 우리들에게 쓰곤 했던 말입니다: ‘시늉만 하지 말라는 말은 당신이 말해야 하고 해야 하는 것을 입으로만 해치우지 않도록 크고 분명하게 말하고 당신이 모을 수 있는 모든 에너지를 갖고 철저하게 하라는 의미입니다.

나는 그때 나에게 일어나고 있던 일을 이해하기 위하여, 내 온 삶이 변화되고 있을 때 그것을 이해하기 위하여 더 많은 노력을 했었기를 바라는 것이지요. 그렇게 했으면 나 자신에 대해 더 많이 알았을 것입니다. 그랬으면 사람들이 끊임없이 묻고 있었던 질문에 대해, 다시 말하자면 무엇이 나를 가톨릭으로 변하게 했는가라는 질문에 대해 대답을 해 주었을 것입니다.

나는 그때 나 자신이 가톨릭으로 개종한 사람이라고 생각하지 않았습니다. 그냥 수십년 동안 그 사실을 알지도 못하면서 하느님을 찾아왔던 사람이라고, 이제 겨우 그분을 발견하기 시작했을 뿐이고 아직도 가야할 길이 먼 사람이라고 생각했을 뿐이었습니다. 그래서 긴 외로움이지요. ‘가톨릭 개종자라는 표현은 나에게 너무나 지나치게 종말적이고 결정적이며 확증적인 말이었고 지금도 그렇습니다. 그때 나를 휘감고 있었던 비와 바람과 안개는 아직껏 그렇게 소용돌이치고 있으며 내가 인정하는 것보다 더 뿌옇습니다. 그래서 나는 아직도 분명하지가 못합니다. 누가 그럴 수 있겠습니까?”

 

[원출처] <Dorothy Day, a Radical Devotion>, Robert Coles, 1987
[번역문 출처] <도로시 데이, 뿌리로부터 온전히 살다>(<참사람되어>2002, 7월호)

로버트 콜스(Robert Coles)

하버드 의과대학의 정신의학과 및 사회윤리학과 명예교수. 청소년 문제 상담 전문가로 활동해 왔으며, 50여 권이 넘는 책을 집필한 작가. 1973년 미국의 다양한 계층과 인종의 아이들을 직접 취재하고 분석한 <위기의 아이들>로 퓰리처상을 수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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