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몬 베유, 이끌어주는 손도 없이 빛도 없이 죽다
상태바
시몬 베유, 이끌어주는 손도 없이 빛도 없이 죽다
  • 한상봉 편집장
  • 승인 2020.12.03 19:46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고통으로 불꽃을 피운 성자, 시몬 베유-4(종결)

불행의 극점에서 만나는 하느님

1942년 미국으로 떠나던 시몬 베유는 알제리의 오랑에서 티봉에게 전한 작별의 편지에서 “인간이란 존재는 약하고 심각한 위험에 처해 있기 때문에 떨지 않고서는 삶을 사랑할 수가 없습니다. 우리 이외의 모든 사람들이 겪을지 모르는 불행에서 그들을 구할 수 없다는 데 이처럼 비애를 느껴본 적이 지금까지 한 번도 없었습니다.”라고 했다. 페랭 신부는 베유가 마르세유를 떠난 뒤에 그녀가 보낸 편지를 연달아 받았는데, 이 편지들이 나중에 <신을 기다리며>로 출판되었다. <신을 향한 사랑과 불행>에서 베유는 불행을 이렇게 정의한다.

“종종 불행의 공격을 받아 반쯤 죽은 곤충처럼 땅 위에서 괴로워하는 것밖에 아무 것도 할 수 없는 사람들에게는 자기 몸에서 일어난 일을 표현할 적당한 말이 없다. ... (불행이란) 이를테면 사형수가 곧 자기 목을 절단할 단두대를 몇 시간 동안 꼼짝없이 바라보지 않으면 안 되는 상태와 같이 지독한 상태이다.”

마치 예수가 겟세마니에서 “할 수 있다면, 이 잔을 피하게 해 달라.”고 절규하던 것과 같은 불행이다. 이 상태에선 더 이상 하느님도 숨어 버려 보이지 않는다. 그리스도교의 위대함은 이런 고통마저 초자연적으로 이용해 주기를 구하는 데 있다. 그래서 베유는 “그리스도는 불행이 있는 곳은 어느 곳에나 완전히 현존하는 게 확실하다.”고 말할 수 있었다.

베유는 불행이 하느님이 만든 교묘한 장치라 했다. “쇠망치로 맞은 충격이 날카로운 못 끝으로 전해오듯 맹목적이고 거칠며 냉혹한 무한한 힘이 조그만 못 끝을 통해 영혼의 중심에 구멍을 꿇는다. 그러나 영혼이 올바른 방향으로 나아가는 한 이 한 점은 끝내 부서지지 않는다”고 했다. 그 방향을 결정하는 것이 ‘사랑’이다. 아무리 못을 박아 넣어도 외줄기 영혼을 하느님께 향하는 자는 세계의 중심에 못박힌 자와 같다. 이렇게 하느님께 못 박힌 자는 ‘하느님을 향한 암묵적인 사랑’에 머무는 사람이다. “내 형제 중에 가장 보잘 것 없는 사람 하나에게 해준 것이 바로 나에게 해 준 것”이라는 복음을 실현하는 일이다.

뉴욕에서 런던으로, 그리고 죽음

1942년 6월말 뉴욕에 도착한 시몬 베유는 전란에 휩싸인 조국을 도망쳐 나온 느낌이었고, 다시 전쟁 속으로 돌아가야 한다는 강박에 시달렸다. 고등사범학교 시절 친구였던 모리스 슈망이 런던에서 프랑스 국내의 레지스탕스를 맡고 있다는 소식을 듣고, 런던에 있는 자유프랑스 정부에서 일하기를 희망했다. 그는 늘 “사는 일에 실패하는 것보다 죽는 일에 실패할까 두려워” 하였다. 이것은 단순한 애국심이 아니었다. 아름답고 중요한 것, 약하고 소멸되기 쉬운 것 앞에서 느끼는 슬픔 때문이었다.

베유는 “창조란 자기를 포기한 것이다. 그리고 신은 그리스도란 형태를 취하여 자기를 부정하며 죽음에 넘겨줌으로써 ‘사랑’을 보여주었다”고 믿었고, 이런 하느님과 자신이 일치하기를 갈망했다. 베유는 1942년 11월 10일 부모님과 이별하면서 이렇게 말했다. “만약 내가 생명을 여러 개 가지고 있다면 어머니나 아버지께 바치겠습니다. 하지만 내게는 하나밖에 없습니다. 이것은 다른 사람들을 위해 바쳐야 합니다.”

그해 말에 런던에 도착한 베유는 프랑스에 잠입해 활동할 수 있도록 주선해 달라고 요청했지만, 자유프랑스 정부는 해방 이후 프랑스의 장래에 대한 계획을 세워달라고 부탁했다. 그래서 작성한 것이 <뿌리를 가진 것>이라는 글이다. 베유는 이 글을 통해 고통 받는 프랑스로 상징되는 불행에 자신을 일치시키려고 했다. 그리고 “프랑스 사람들이 허기로 고통 받고 있다. 나 역시 배고픔으로 고통받지 않으면 안 된다.”며 식사를 중단했다.

1943년 4월 하순에 런던 하숙집에서 기절한 채 발견된 베유는 미들섹스 병원으로 옮겨졌고, 8월 24일에 애슈퍼드 세나토리움에서 사제의 전송도 받지 못한 채 숨을 거두었다. 베유는 평생 “자기를 뿌리 뽑지 않으면 안 된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이름 없는 자가 될 것, 인간이라는 물질이 될 것, 몸에 붙은 장식을 떼고 알몸이 되는 일을 인내할 것, 자기를 낮출 것, 죽음을 받아들일 것. 성인이란 살아 있어도 사실은 죽은 것과 마찬가지인 사람”이라고 말했다.

“신을 향해 부르짖는다. 아버지여,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이 일을 내가 이룰 수 있도록 해주십시오. ... 저의 사랑이 당신의 사랑처럼, 육체의 양식과 정신의 양식이 모두 부족한 불행한 자들에게 음식으로 줄 수 있도록. 그리고 나는 마비환자, 맹인, 백치, 병든 노환자로 전락해 버리도록. 영원히 나는 찢겨지고 찢겨지게 해주십시오. 나는 없어지는 일밖에 남지 않도록 해주십시오.”

그녀의 바람처럼, 시몬 베유는 모든 것을 버리고 고독 속에서 죽어갔다. “마음속에 타오르는 빛밖에, 이끌어주는 손도 없이 빛도 없이.”(<성령의 노래>, 십자가의 성 요한) 그녀가 죽었을 때 나이는 34세였다.

 

*이 글의 축약본은 <가톨릭평론> 2020년 11-12월호에 실렸습니다.  

한상봉 이시도로
가톨릭일꾼 편집장
도로시데이영성센터 코디네이터

 

 

 

도로시데이영성센터-가톨릭일꾼 후원하기
https://v3.ngocms.co.kr/system/member_signup/join_option_select_03.html?id=hva82041

종이신문 <가톨릭일꾼>(무료) 정기구독 신청하기 
http://www.catholicworker.kr/com/kd.html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