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 성인] 존 하워드 그리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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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성인] 존 하워드 그리핀
  • 김신윤주
  • 승인 2016.06.20 14:08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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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월 16일 출생, <블랙 라이크 미>의 저자

“나는 이제 저 강 너머의 세상으로 떠나간다. 그쪽 또한 이쪽 세상과 전혀 다르지 않고, 우리가 더 이상 그런 잘못된 이유로 사람을 악마화 하는 것은 정당화 될 수 없음을 알기 바란다.” 

존 하워드 그리핀

1959년, 존 하워드 그리핀(John Howard Griffin, 1920-1980)은 뉴올리언즈로 여행을 떠났다. 염색과 일광욕, 약의 도움까지 받아서 검게 물들인 피부에 머리를 박박 밀은 그는 “증오와 공포, 그리고 희망없음 이라는 나라의 국경선을 건너갔다. 거기, ‘미국 흑인’이라는 나라로.” 두 달 동안 그는 깊숙한 남부지방을 따라 여행했다. 이때에 그가 관찰하고 경험한 것들을 한 잡지에 연재했고, 이후 큰 찬사를 받은 <블랙 라이크 미>(Black like me, 나처럼 검은)라는 책으로 발간되었다. 인종의 경계선을 건너간 그리핀의 노력은 철저한 공감을 위해 바친 가장 극적인 몸짓이었다. 그러나 그리핀에게는 전 생애 동안 몰두한 또 다른 탐험이기도 했으니, 바로 인간이 된다는 것이 무엇인지를 알기 위한 투쟁이었다. 

1920년 6월 16일에 텍사스에서 태어난 그리핀은 제2차 세계 대전이 터질 때까지 프랑스에서 약학과 음악을 공부했다. 독일의 프랑스 점령 후 그리핀은 나라 밖으로 유대인을 몰래 내보내는 활동을 하다가 나중에는 본인도 게슈타포의 체포망을 피해 구사일생으로 탈출했다. 그후 전쟁 기간 대부분을 남태평양에서 군 복무를 하며 보냈다. 전쟁이 거의 끝나갈 무렵, 주변에서 터진 폭발 사고로 시력에 손상을 입은 그는 불행히도 결국 소경이 되었다.

그에게 닥친 실명과 심각한 질병의 경험은 삶을 좀 더 본질적 차원에서 선택하도록 했다. 절망에 굴복하거나 혹은 좀 더 높은 삶의 목적을 믿어보거나. “비극은 어떤 상황에 있지 않고, 그 상황에 대한 그 사람의 통찰 안에 있다.” 장애에도 불구하고, 그는 음악을 공부하고, 결혼을 하고, 목장을 운영하면서 가족들을 부양하고 두 권의 소설을 썼다. 두 번째 소설이 출판된 해에 그는 로마 가톨릭 교회에서 세례를 받았다. 

그리고 1957년, 어떤 기적이 일어났다. 시신경을 차단했던 혈액순환이 열리면서 갑작스레 그의 시력이 복원된 것이다. 그는 자신의 아내와 두 명의 어린아이들을 처음으로 보았다. 그 후 몇 년 동안 신학을 공부하며, 그가 잡지에서 묘사한 대로 신의 문서를 읽는 즐거움을 만끽했다.

“영혼의 자양분, 영혼의 회귀, 단어들 너머의 깊은 의미 속으로 빠져들기, 영원을 향한 갈증과 탐색. 오늘 아침에는 지치고 낡은 이 뇌가 정확히 '검은 신'의 문서를 읽고 싶다는 생각을 잉태했다. 그리고 거기에서 내가 시력을 되찾은 완전한 이유와 정당성을 보았다.” 

시력이 되돌아오면서, 그리핀은 표면적인 모습이란 것이 얼마나 우리가 진실을 인식하지 못하도록 가로 막는 방해물인지 깨달았다. 그 중에서도 특히, 우리의 동류 친구들을 ‘본질적으로 다른 존재’로 치부하는 환상을 깊이 생각했다. 이 환상이 가장 잘 드러나는 경우가 미국의 인종차별일 것이다.

하지만 그리핀은 여전히 흑인친구들에게서 이런 말을 듣곤 했다. “네가 이 인종차별이 어떤 것인지를 알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바로 내 피부를 가지고서 아침에  잠에서 깨는 것뿐이야.” 그는 이 말을 가슴에 담았다. 그 결과가 바로 <블랙 라이크 미>에 기록된 여행이 되었다.

이 책은 비록 모든 독자들이 그 깊은 영적 작업까지는 알지 못할지라도 엄청난 관심을 받았고 지금도 변함이 없다. 그리핀은 일련의 사회적 조건을 넘어서서 그 기저에 자리 잡은 영적 질병에 관심을 두었다.

그의 책은 진실로, 핍박 받는 자들과 박해하는 자들 모두를 위하여 쓴 ‘비인간화가 끼치는 영향에 대한 심오한 성찰’이었다. 그는 말하고 있다. “피부색 외에는 아무 것도 바꾸지 않았다. 그러나 그것이 모든 것이었다” 갑자기 문은 닫히고 미소는 불쾌한 찌푸림이나 또는 더 심한 것이 되어버렸다.

그는 미국의 흑인에게 지닌 백인들의 증오에 찬 얼굴을 발견했다. 그것은 엄청나게 충격적인 경험이었다.

“미래의 역사가들은 이 질병의 한 중앙에 있었고 또한 앞으로 다시는 볼 수 없는 존재로 우리 시대를 신비화할 것이다. 우리는 지금의 이 사회적 구조가 인간의 삶을 얼마나 왜곡하고 축소시키는지 절대로 느낄 수 없을 것이다. 왜냐하면 그것은 검은 피부로 감싸인 몸으로 태어난 사람들의 삶에서만 벌어지고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어떻게 이런 구조에 협조했느냐는 부분은 우리 자신의 삶 또한 아주 미묘하고 끔찍한 방법으로 일그러뜨리고 왜소하게 만들었다.” 

그의 이야기가 출판된 이후, 그리핀은 보다 개인적인 형태로 적대감의 대상이 되었다. 살던 도시의 중심 거리마다 교수형에 처해진 그의 모형 인형들이 내걸렸다. 삶은 수없이 협박을 받고 위험에 처했다. 그러나 그는 민권 시민운동의 성장에 온 몸을 던진 뒤로 10년이 넘게 지치지 않고 열심히 일했다.

'필요성'이 그를 행동주의자로 만들었다. 그것은 그의 본성과는 꽤나 거리가 먼 역할이었다. “한 가지 바람이 있다면, 만일 누군가가 정의에 대한 갈망으로 행동을 하고 그 결과로 고통을 겪는다면, 그 때 그와 갈망을 함께 나눈 다른 이들은 멸시와 박해라는 공포에서 벗어나는 것입니다.” 그는 같은 뜻을 가진 이들과 함께 참아냈다. “그 거칠고도 끔찍한 생각. 그들은 세상 위로 휘달리는 증오의 크기에 맞서서 그들이 간직한 사랑의 가치로 싸워야했다.” 오랫동안 그리핀은 갖가지 질병을 앓으며 고통에 시달렸다.  심각한 피부 변색의 경험도 이유 중의 하나였다.

1980, 9월 8일, 그는 숨을 거두었다. 그의 아내의 말을 인용하자면, 모든 것으로부터 죽었다. 그의 삶의 궁극적 의미는 무엇일까? 언젠가 그는 이렇게 썼다.

“세상은 늘 아브라함 같은 선지자적 소수에 의해서 지켜졌다... 거대한 환란의 시대에는 언제나 인간성 결핍과 파괴 같은 근본적 비극을 통렬히 인식하는 사람들이 있다.” 
 

[원서] <모든 성인-우리시대를 위한 성인, 예언자, 증인들>(All Saints), Robert Ellsberg, crossroad, 1997 

[역자] Shine Shin-Kim, 김신윤주 수산나.
아티스트, 작가. 2013 년 뉴욕에서 대중참여예술인 원하트 프로젝트 시작, 뉴욕과 한국을 오가며, 한반도의 평화, 물신주의와 신자유주의, 인권, 사회 정의 차원에서의 위안부 문제 등을 다루며 진행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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