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 성인들] ‘무지의 구름’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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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성인들] ‘무지의 구름’ 저자
  • 김신윤주
  • 승인 2016.07.05 15: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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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국 신비가 (14세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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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비로운 하느님의 눈은 당신이 지금 무엇이거나 예전부터 무엇을 해왔는 지가 아니라, 장차 무엇이 되려는 지를 보십니다.”

영국 신비가 <무지의 구름>(The Cloud of Unknowing)의 저자에 대해서는 아무 것도 알려진 바가 없다. 이 고전적인 텍스트는 유명한 시인 초서가 활동하던  14세기 후반에 이스트 미들랜드 지역의 방언으로 쓰여졌다. 그것 외에, 성직자인지 종교인인지, 은둔자인지 혹은 논쟁거리 속에 있는 카르투시오 수도원 수도사인지, 이 저자의 정체에 대해서는 조금도 밝혀지지 않았다. 심지어 저자의 성별조차 결정적으로 확인된 것이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무지의 구름> 저자는 역사상 가장 위대한 영적 지도자의 한 명으로 꼽힌다.

<무지의 구름>이 모든 사람들을 위한 책이라고는 할 수 없다. 그것은 관상적 삶이라는 아주 한정되고 비범한 삶으로 초대된 사람들만을 위해 의도적으로 쓰여졌다. 이러한 저자의  특별한 의지를 잘 반영하는 구절은, "당신이 이 책의 혜택을 받을 것이라 판단되는 사람이 아니라면, 부디 아무에게나 이 책을 권하지 말아주십시오." 라고 독자에게 부탁하는 부분이다.

저자는 "이런 사람들은 차라리 이 책을 보지 않았으면 합니다."라며, 아첨꾼이나 수다쟁이, 자기 자신이나 다른 사람들을 헐뜯는 세속적인 험담꾼들, 소문을 내는 사람들, 트집을 잡거나 객쩍은 이야기를 하는 사람들, 그리고 단순히 ‘호기심’으로 접근하는 사람들’을  독자에서 제외시킨다.  이런 사람들에게 이 책은 어떤 경우이든 아무 것도 아닌 것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아무 것도 아닌 것’이 정확하게 저자가 말하려는 중심 주제이다. <무지의 구름>은 부정의 길을 통한 영성 전통의 대표작으로 알려져있다. 이는, 우리는 ‘무엇이 하느님인가 보다는 무엇이 하느님이 아닌가’를 좀 더 믿을만 하게 논할 수 있다고 강조하는 영성이다.  

<무지의 구름>에 의하면, 감춰져 있으며 도무지 표현할 길이 없는 하느님의 존재는 ‘무지의 구름의 한 종류’로 인간의 이해력으로부터 보호되어있다. 작가는 "당신이 무슨 일을 하든지 상관없이, 이 구름은 언제나 당신과 하느님 사이에서 당신이 지성의 빛에 의지해 이성적으로 그 분을 보려하는 것을 방해합니다."라고 말한다. 

그러나 지성적 접근을 피한다고 하는 것이 하느님을 이해할 수 없다는 뜻은 아니다. 오히려 하느님은 하나의 개념이 아니라는 것을 의미한다.  우리가 생각으로 알 수 없는 무언가는 사랑으로만이 깨달을 수 있는 것이다.

이 관상기도의 수련을 통하여 우리는 예리한 사랑의 화살들을 하느님을 향해 쏘아올려 ‘무지의 구름’을 꿰뚫고, 마침내는 하느님과 일치되는 은총에 도달하게 된다.

이 기도는 우리가 신성에 대한 모든 이미지와 개념들을 포기하고 세속적인 피조물들에 대한 집착을 극복하기를 요구한다. 저자는 그 방법으로 ‘망각의 구름’ 안에 머물면서 우리 스스로를 보호하라고 안내한다. ‘하느님’ 또는 ‘사랑’과 같은 짧은 단어를 통해 마음을 비울 수가 있으며, 하느님을 향한 우리의 의지를 다잡을 수가 있는 것이다. 이 힘든 작업은 오로지 하느님과 일치되기 위한 예비 단계일 뿐이며, 다행히도 나머지는 모두 하느님이 하신다.

이것이 곤혹스럽거나 기묘하게 들리는 사람은, 이 책은 모든 사람들을 위한 것이 아니라는 바로 그 경고를 받는 대상인 것이다. <무지의 구름>의 가르침은 교회의 교리를 집중적으로 따르려거나 자선 행위로 신앙을 대신하려는 사람을 위한 것이 아니다. 불가사의한 선문답처럼, <무지의 구름>은 혼란스러운 역설을 즐긴다. 

"'그러면 나는 어디에 있어야 합니까? 당신의 말대로 하면 내가 있어야 할 곳이 아무데도 없지 않습니까?'라고 당신은 말할 것입니다. 당신의 말이 옳습니다. 왜냐하면 내가 원하는 것은 바로 당신이 아무 데도 거하지 않는 것입니다. 육적으로는 어느 곳에도 존재하지 않는 것이 영적으로는 모든 곳에 존재합니다." 

<무지의 구름>의 저자를 ‘어느 누구도 아닌 이’ 이라고 칭한 것은 그 얼마나 적절한가?! 그, 혹은 그녀일 저자의 정체는 그렇게 거룩한 지혜의 구름 속에 깊이 잠겨있다.


[원서] <모든 성인-우리시대를 위한 성인, 예언자, 증인들>(All Saints), Robert Ellsberg, crossroad, 1997 

[역자] Shine Shin-Kim, 김신윤주 수산나.
아티스트, 작가. 2013 년 뉴욕에서 대중참여예술인 원하트 프로젝트 시작, 뉴욕과 한국을 오가며, 한반도의 평화, 물신주의와 신자유주의, 인권, 사회 정의 차원에서의 위안부 문제 등을 다루며 진행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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