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워싱턴] 해리스 나그네의 집 "가난한 자들이 베푸는 ’친절‘ 보다도 더 좋은 친절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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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워싱턴] 해리스 나그네의 집 "가난한 자들이 베푸는 ’친절‘ 보다도 더 좋은 친절은 없다"
  • 참사람되어
  • 승인 2019.08.04 14: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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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대의 집 이야기

한 낡은 집이 폐허의 한 귀퉁이에 서 있다. 마루는 불안정하게 기울어 있고 천장은 활처럼 굽고, 햇빛이 비추는 창가에 먼지가 두툼히 쌓여 있다. 늘어진 현관 처마밑에 쌓인 물건들은 소방대원이 보면 기겁을 할 일이다.

벽에 뚫어진 구멍 가장자리의 두터운 두께는 한때 그것이 육중한 회벽이었음을 꼴사납게 알려주고 있다. 그리고 이 집에 사는 사람이나 방문자나 항상 소금에 절인 양배추의 시큼한 향기를 맡는다. 이곳이 스코트/해리스 가톨릭일꾼 나그네의 집이다.

우연히... 결국... 시작된 일꾼의 집: 
모두가 인간이 되고 싶어 한다

이 집의 이야기는 1978년 크리스마스 직후부터 시작된다. 마이클 커완은 죠지 워싱턴 대학에서 사회학 석사학위 과정중이었으며 대학 구내의 작은 아파트에서 살고 있었다. 그는 이렇게 말한다.

“어느 추운날 밤에 길을 걷다가 주 정부청사 옆의 통풍기 위에서 살고 있는 집 없는 남자를 지나치게 되었어요. 보기가 민망해서 성급히 지나가려는데 그 사람이 나를 부르는 소리가 들렸어요. 귀찮았지만 다가갔더니 스프 한 그릇 사게 1달러를 달라고 하더군요. 그 사람 말을 믿지 않았지만 내겐 돈도 없었어요. 하지만 그 사람의 실망하는 모습이 내 마음에 걸려서 아파트에 돌아가서 스프를 한 대접 갔다 주겠다고 했지요. 그 사람은 아니지만 다른 사람이 그 자리에 있더군요. 난 이번에는 아뭇소리 않고 돌아와서 스프와 빵과 차를 더 많이 가져 갔지요. 나는 그걸 가져다 주고 그냥 걸어 왔어요. 그렇게 해서 이 모든 일이 시작 되었지요.”

마이크는 은빛 흰 머리가 힐끔 보이는 검은 머리를 한 키 크고 잘생긴 남자다. 골덴 바지와 헐렁한 셔츠를 입은 그의 용모는 경륜있는 은행가가 더 잘 어울릴 것 같다. 그는 연방 검사들이 좋아하는 강인한 표정이 섞인 젊은 정치가의 자태를 갖고 있었다.

“6개월 정도 지난후 한 남자가 내 아파트에 와서 세수와 면도를 하자고 해서 안 된다고 했죠. 난 꽤 당황했죠. 더럽고 헝클어진 모습에 지독한 냄새가 났으니까요. 난 친구들도 있었는데다가 내 아파트에는 '값진' 물건, 스테레오, 책 등이 있었거든요. 하지만 그가 끈질기게 굴어서 다음날엔 그러자고 했지요. 단, 샤워하고 면도만 하면 당장 아파트를 떠나야 된다고 했지요. 그 사람은 한 달을 머물고 아파트에서 한 발짝도 안 나가는 거예요. 일단 아파트를 나가면 다시 못 들어올까봐 겁이 났었던거죠.

공부하다 돌아와 보면 저녁이 지어져 있고, 아파트를 말끔히 청소해 놓고 ‘바그너’를 듣고 있더라구요. 그 사람은 너무 훌륭해 보였어요! 거리에선 그렇게 혐오스럽고,더럽고, 누추하고, 냄새나고, 너무 추하고, 무섭게까지 보였던 그 사람과 함께 사는 동안 내 눈이 처음 뜨였던 것입니다. 즉 여자나 남자나 어디서든, 어떤 환경에서든지 모두 다 같이 사랑과 존경과, 남에게 필요한 인간이 되고싶은 욕구를 갖고 있는 인간이라는 사실을 깨달은 것이죠.

나는 이 사람속에서 드디어 그 사실을 깨달은 것이었죠. 도로시 데이가 오랜 동안 얘기 해 온것이 무엇인가에 대한 나의 첫번째 깨달음이었지요. 즉 우리는 진실로 우리 형제 자매들의 보호자이며 아무리 실천하기 어려운 사랑일지라도 사랑을 해야 한다는 사실이지요. 왜냐하면 결국에는 사랑이 가장 문제가 되기 때문이지요.”

 

나그네의 집

가톨릭일꾼운동의 철학에 대해 꽤 오랫동안 알고 있었으며, 버지니아의 가톨릭일꾼 농장에서 자라고, 도로시 데이를 잘 알고 있었으며, 그의 부모가 도로시 데이와 친근 했었던 사람이 성인이 된 다음에야 회심과 계시를 체험할 수 있었다는 것은 놀라운 일이었다.

“글렌의 얘기가 해피엔딩으로 끝났다고는 생각지 않는데 글쎄 그것도 알 수 없어요. 30일이 지나고 그에게 아파트 열쇠를 주었는데 나가서 술을 마셨어요. 폭우속에서 골목길에 누워있는 그를 질질 끌어서 아파트로 데려 왔어요. 한참 동안 아파트에서 지내다 하루는 떠났는데 다시 돌아오지 않았지요. 그가 떠날 쯤에는 내 아파트에 집없는 남자가 열다섯명이 살고 있었어요.

글렌은 내 마음을 열어 주었고, 나는 그 사람들을 모두 믿고 사랑했어요. 대학 당국이 집없는 사람들의 이 공동체를 발견했을 때 경악을 하고서 모두를 내보내라고 내게 명령했어요. 나는 괜찮지만 다른 사람들은 안 된다는 것이죠. 내가 거절을 하니까 강제로 다른 살곳을 찾으라고 했지요. 그렇게 해서 우리들의 첫번째 '나그네의 집'을 만들게 되었지요.”

마이클은 도로시 데이가 수 년 전에 겪었던 것을 경험하고 있었던 것이다.

도로시 데이는 이렇게 썼었다 :

“아무도 우리에게 이 일을 하라고 요구하지 않았다. 시장이 찾아와서 우리에게 무료급식을 하거나, 시에서 운영하는 무료합숙소를 도와 임종자의 집을 열어달라고 부탁한 것도 아니었다. 더구나 주교나 추기경이 가톨릭교회의 가난한 사람들을 위한 자선구제 사업을도와달라고 한것도 아니었다. 아무도 우리에게 어떤 단체나 시설을 세우라고 부탁하지 않았다. 다만 우리의 의무로서, 왜냐하면 우리는 우리 형제의 보호자니까. 왜냐하면 개인적인 책임감을 느꼈으므로, 우리는 우리에게 찾아온 사람 모두에서 그리스도를 보려고 노력하기 시작했다.

배가 고파 찾아온 사람에겐 언제나 아이스 박스속에 먹을 것이 있었고, 잠자리가 필요 할때 우리 잠자리가 너무 꼭 찼으면 언제든지 ‘바우어리’가에 잠자리를 빌릴 돈을 마련해 두었다. 옷이 필요하면, 어디든 호소해 볼 친구들이 있었다. 물론 우리가 먼저 우리 옷장에서 남은 옷을 먼저 주고 난 다음이다. 누구 다른 사람의 옷일지라도 괜찮았다.”(묵상 중에서)

집이 터져나갈 듯해도 아무도 돌려 보내지지 않는다

00가에 낡은 집이 한 채 있다. 3층짜리 붉은 벽돌 집으로 워싱턴시의 거리에서 찾아 들어온 40명의 남자와 몇명의 여자가 “우리 집”이라고 부르는 곳이다. 알마는 처음 이 집과 함께 들어왔다. 마이크가 이 집을 샀을 때 그녀는 거기 살고 있었다. 알마를 내보낸다는 것을 마이크는 견딜 수가 없었다.

집이 터져나갈 듯해도 아무도 돌려 보내지지 않는다. 저녁 10시 이후에는 잠자는 사람을 깨우지 않기 위해서 발걸음을 조심해야 한다. 긴 현관 복도에는 희미한 전구가 켜져 있는데 슬리핑 빽이 빼곡히 줄지어 있다. 오직 층계만이 비어 있다. 잠시 머무는 객들은 1층마루를 점령하고, 더 오래 머무는 객들은 이층의 공간이나 침대에 있을 때도 있고, 또 한쪽 구석은 창고로 쓰여지고 있다.

장기 체류자중에는 결혼한 한 쌍, 피터와 쥬디가 방 하나를 차지하고 있다. 그들 중에는 자칭 “흑인 헤밍웨이” 라고 하는 두번의 감옥생활로 인생의 옆길로 빠져나간 희곡작가이며 시인인 율리시즈도 있다. 그중에는 로리와 그의 아들 랄프 부자도 있는데 랄프는 자유로이 돌아 다니는 모든 종류의 삶에 대해 아주 흥미가 많다. 로리는 엄격한 수도승처럼 자기 거처에 대해 이렇게 말한다. “우리는 공동체와 기도의 삶을 추구하고 있습니다.”

모든 이들에게 이곳은 지붕이 있으며, 날씨에 상관하지 않아도 되며, 폭력과 기아로 부터 쉽게 안전할 수 있는 곳이며 그들이 여지껏 있어본 그 어느 곳보다도 집다운 곳이다.

 

상처받은 이들에서 사랑하는 이들로

<가톨릭일꾼> 신문에 1959년도 2월호에서 도로시는 이렇게 썼다:

‘가톨릭 일꾼의 집’ 에서는 항상 애덕활동, 즉 주린자에게 음식을 주며, 헐벗은 자에게 옷을 입히고, 정처없는 이들에게 피난처를 제공하는 일에 워낙 비중을 두어 왔기 때문에 많은 지식인들에게는 이 일이 제일 우선적인 사업으로 생각되고 있다. 초기에는 우리가 배를 가라 앉힐 “썩은 나무들”을 받아들인다고 비판을 받았다. “버리게 된것”이란 말이 가장 자주 사용되었었다. 마치 예수님이 길 잃은 자들과 함께 살며 그들을 구원하고 그들에게 길을 보여 주러 오신 것이 아니란듯이 말이다. 그러나 예수님의 사랑이 가장 따뜻하게 보내진 쪽은 가난한 사람들, 버려진 사람들, 방탕한 이들이었다. 예수님은 99명의 의인들을 내버려두고 한사람의 길 잃은 사람을 찾아가셨다.

도로시 데이의 이런 생각은 “나그네의 집”을 찾아온 장애자들, 알콜 중독자, 마약 중독자, 노인들, 피난민들, 백인들, 흑인들 가운데에서 발전하였다. 그리하여 이렇게 말할 수 있겠다. 이곳에 사랑을 찾아온 상처받은 사람들이 공동체가 되어 살면서 다시 이웃에게 사랑을 베푸는 사람들로 변해가고 있었다고.

마이클의 강인한 에너지와, 선량한 웃음과 참을성에도 불구하고 그가 할 수 있는 일은 한계가 있으므로, 묵으러 온 손님들이 조그마한 일들을 맡기 시작하고 차차 점점 큰책임을 맡게 된다. 깡통 음식을 나르는 일, 전화 받는 일, 접시 닦는 일, 다른 사람들을 돌봐주는 일 등으로, 서로를 점점 존중하게 되는 것이다.

이 집에는 두 가지 규칙이 있다. 첫째 규칙은 아무도 집안으로 술을 들여 오지 않는 것이고, 둘째 규칙은 마이클이 경찰을 부르지 않는다는 것이다. 두가지 규칙 다 지켜지지 않은 적이있지만 그리 자주 그런 것은 아니지만, 집안 식구들이 자신들을 스스로 순찰함에 따라 그 회수가 점점 줄고 있다. 어떤 규칙이든 깨어지면 모든 공동체에 위협이 된다는 사실을 모두들 잘 알고 있다.

내 노동이 믿을만 하고 신임받고 있다는 자긍심

워싱턴 시내에 무료 저녁 급식을 하는 곳이 아무데도 없으므로, 스코트/해리스 집에서는 그 허기를 채워주려고 노력한다. 스위니는 땋은 회색머리 위에 “나는 내가 하는 모든 일을 아주 잘 한다” 라고 써붙인 요리 모자를 쓰고 매일 저녁 100명 분의 식사를 요리한다. 그 사람은 4군데나 부러진 다리로 절뚝거리며(자동차에 치였다고 생각한다) 일을 해야 하지만 일을 그치지 않는다. 율리시즈는 스위니가 무리한다고 이마를 찌프린다. 율리시즈는 스위니 뒤를 쫓아 다니며 접시를 닦고 청소하고 치우고 법석을 떤다.

지난 시절에 레이는 비행장에서 교통정리원으로 일했었다. 그러나 파업으로 인해 해고되고 나서 전전긍긍하다가 결국 지하철 통풍기 옆에서 살게 되었고, 이 집에 들어온 이후 점차적으로 책임을 많이 맡고 있다. 마이클은 말한다 “레이에게 얼마나 감사한지 모릅니다. 많은 일을 쉽게 풀어주고 있어요.” 레이는 아주 편한 미소와 태도를 지니고 있으며 많은 난제들을 쉽게 헤쳐 나간다.

레이는 요즈음 쉬어야 한다. 아직도 많이 허약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또다른 사람이 그의 일을 기꺼이 떠 맡으려고 하고, 그의 짐을 덜어주려고 노력한다. 또한 사회에서는 이들을 묵살해버리고 얼굴이 없는 위협적인 존재로 볼지 몰라도, 이곳에서는 자신들이 신임을 받고 있으며 그들의 노동이 가치가 있다는 것을 알고 있다. 이웃을 도우려는 의지와 미소가 식사시간에 넘친다. 그렇다고는 해도 좀더 깨끗하고 조용하고, 자신이 개인적인 삶을 살 수 있는 곳이 제공된다면 이곳에 남아 있을 사람은 하나도 없을 것이다.

가난한자들이 베푸는 ’친절‘ 보다도 더 좋은 친절은 없다

도로시는 1984년 5월에 이렇게 말했다 :

그것은 놀라운 일이다. ... 사람들이 가버리지 않는다...”이집 사람들은 나쁘지만, 밖의 사람들은 더 나쁘다“라고 누군가 말했다. 또 ”이곳에서 행복하진 않지만 다른곳에서는 더욱 불행하다“ 라고도 말했다. 그러므로 우리는 사실상... 서로를 필요로 하는 공동체이며... ’상처받은 자‘들의 공동체이다. 나 자신은 가끔 우리 공동체는 쫓겨난 사람들의 강제 수용소라고 생각해 왔다. 그런데 이들 모두는 공동체를 원하지만, 동시에 자신의 식량을 직접 재배할 수 있는 자신만의 통나무 집을 원하고 있는 것이다.

가난한자들이 베푸는 ’친절‘ 보다도 더 좋은 친절은 없다. 그들 자신은 결핍이 무엇인지 너무나 잘 안다. 그들은 다른 사람의 필요를 알아본다. 그리하여 이 00가의 집은 도움의 손길을 펼치는 것이다.

매일 저녁, 식사를 하러 온 사람들이 떠나고 나면, 간단한 저녁식사를 지하철 통풍기 근처로 가져간다.

마이클은 플라스틱 우유 상자 속에 핫도그를 가득 채운다(케챂을 미리 쳐 둘까? 혹은 그 사람들이 치게 할까? - 생각도 해보면서). 소금에 절인 양배추를 가득 넣은 큰 통, 물병과 스프를 넣은 작은 병들도 가져간다. 추위를 막기위해 모자나 파카, 블루진, 두터운 방한 바지, 장화를 신은 남자들이 버지니아 거리를 비껴나 바로 나타나는 커다란 통풍기에 서 있기 시작한다.

아무도 말이 많지 않다. 밀기도 없다. 묘하지만 남쪽 사람들의 예의 차리는 정중함이 감돈다. 하지만 이들은 배가 고프다. 억지로 자제력을 발휘하고 있는 긴장감이 있다. 뚱뚱한 토니, 월프만, 블루, 르로이, 다렐, 조용한 윌리, 잭, 그리고 이 회중 가운데 유일한 여자 엘라, 허만, 맥 모두 이 공동체의 피크닉에 참가한 사람들이다. 이것은 모든 미국인들이 선망하는 옥외 식사의 익살스러운 모습이다. 왜냐하면 기온이 영하 20도 이하로 내려가려고 기를 쓰고 있으니까! 너무 취해서 자기 자리에서 일어날 수 없는 친구를 위해 스프 한 그릇은 밀어놨다.

비록 집의 운영이 기부금에 의해 유지되고 다음 끼니의 자원을 어디서부터 마련해야 할지 모를 때라도 마이크는 거리에서 사는 사람들에게 급식하는 것이 아주 중요하다고 주장한다. 이 급식 봉사는 집에 있는 공동체에게 좋은 귀감이 된다; 즉 나는 우리 형제 자매의 보호자이고, 또 나에게는 나누어줄 것이 좀 있다는 점을 상기 시키기 때문이다. 이점은 도로시 데이가 50년전에 언급한 것과 같다 :

”사도들은 근심에 싸여 엠마우스로 가는 길에 식탁에 앉아 함께 먹기 전까지는 주님을 알아보지 못했다.‘그들은 빵을 쪼개시는 모습을 보고 주님을 알아 보았다’ 그리고 오늘 우리는 우리의 굶주린 친구들과 얼마나 많은 빵을 쪼개고 있는가? - 지난달에는 13,500명이었다. 우리가 하는 이 일을 도와주시고, 빵을 쪼개서 서로를 알아 볼 수 있게 하소서! 서로를 알아보고 주님의 가장 작은 이들을 알아보면서 우리는 주님을 알아보기 때문입니다. “(<조금씩, 조금씩>에서)

 

 

타인의 요구 거절 못하는 마이클 

마이클 커완은 아주 별난 사람이다. 그는 웃음과 슬픔, 건강함과 상심, 능률과 비능률이 뒤섞여 묘한 조화를 이루고 있는 사람이다. 50달러를 가지고 온갖 종류의 싸구려 음식만 파는 가게에 가서 마지막 동전까지 지독하게 쥐어 짜내어 3일분 음식을 사면서도, 사치스럽게 생각되는 케챂도 산다. ”사람들이 그걸 좋아하기 때문“이다. 그는 차 정비사에게 감언이설로 아첨하여 공짜로 차 수선을 하기는 해도, 다음 번에는 은행구좌를 부도내지 않겠다고 어떤식으로든 은행의 신임을 얻을 확신이 없다. 기부금을 받을 때는 어린아이처럼 절제없이 감사를 표현한다.

사회에서 훈련된 감정 억제가 일체 뿌리 뽑힌 그는 다른 사람의 뻔한 필요에 대해 마치 발가벗은 사람처럼 무방비 상태다. 타인의 요구에 대해 거절 못하는 그의 고질적인 무능력을 보여주는 간단한 증거가 있다 : 현재 그가 걸치고 있는 것이 그가 가진 옷의 전부이다. 흰 스웨터와 밤색 골덴바지, 그리고 색이 다 바랜 남방 셔츠이다. 이 추운 1월에! ”크리스마스 전에 코트가 한 벌 있었지만 거리에서 자고 있는 여인을 봤어요. 신발도 없이 여름 옷을 걸치고 있더라고요. 내가 가까이 가니까 그 여자가 소리를 질러서 코트를 던져 주고 그냥 뛰어왔지요.“

그는 이 모든일이 어떻게 그에게 일어 났는지 놀라워 하고 있다. 머리를 흔들고 눈가에 주름이 가득차며 그는 웃는다. ”얼마나 하찮은 데서 부터, 전혀 의도하지 않은 일에서부터 시작되었는지 모르겠어요. 미리 생각해본 적도, 계획 한 적도 없고 단지 내 집으로 사람을 받아들인다는 것 외에 아무 것도 아니었죠. 내 개인적으로 할 수 있는 작은 일을 하는 것 뿐이었어요. 절대로 한번도 ’나그네의 집‘을 시작하려는 의도가 없었어요.” ’관계‘ 한다는 말은 마이클에게 적절하지 않다. ’빠져 들었다‘는 말도 어울리지 않는다. 아마 “자신을 소진시키고 있다”라는 말이 가장 그에게 가깝게 들린다.

악취가 날때, 변기가 넘칠때, 전기 요금 미불로 정전이 될때, 그것들은 집안사람들에게 뿐 아니라 마이클의 것이다 : 모든 성공도 또한 마이클의 것이다. 누군가 직업을 얻었을때, 제도에 대한 가난한 이들의 모든 승리와, 집안의 웃음 조차도 모두 마이클의 몫이다.

마이클은 지배하지 않고 강제로 하지 않으면서 편안하고, 부드럽고, 솔직한 태도로 그 집안에서 존재한다. ”의타심을 길러 주고 싶지는 않아요. 사람들은 나를 부모처럼 바라보지만 난 그들을 자식처럼 보지 않으려고 노력 하죠... 차라리 가족으로 보려고 하죠.“ 마이클은 이제 아무것도 기대하지 않게 되었고 아무것도 요구 하지도 않는다. ”물 컵을 잊고서 식사하려 앉았을 때 누군가 그걸 보고 갖다주면, 그 사랑의 표시에 힘입어 하루 종일을 살아 가죠.“

가끔 어깨가 쳐질 때가 있을 뿐

그에게 요구되는 일은 아주 많다 : 악몽을 꾸어 한 밤중에 잠자는 분위기를 깨면서 소름끼치도록 아우성을 정규적으로 질러대는 베트남 참전 군인을 다루는 일, 친절하게 비난하지 않으면서, 경악할 정도로 이가 많이 꿴 사람을 타이르는 일, 안에서 자살할까봐 목욕탕문을 부수고 들어가는 일 등....

1983년 9월호 <가톨릭일꾼> 신문에서 도로시 데이는 이렇게 썼다.

“우리의 가난은 황량하고 지긋지긋한 가난이 아니었다. 왜냐하면 함께 살아감으로써 생기는 ‘안전감’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바로 그 함께 사는 것이 가끔은 아주 힘든 일이었다. 잠자리는 북적대고 많은 사람이 들락거리고, 마루에서 잠을 자며, 목욕시설은 없고 찬물 뿐이었다. 이러한 것들이 어려운 일이었다. 가난은 또 몸에 이가 꼬이는 걸 의미한다. 몇달 전 커피를 타려고 줄서 기다리던 사람이 기절 하였는데 그를 붙잡고 입가에 커피를 넣어주면 벌레가 몸에 끼는 것을 보곤 하였다. 가난은 비누와, 빨래비누와, 소독약이 없다는 것을 의미한다.”

무엇이 마이클을 밀고 가는 것일까? 쉽게 변호사가 될 수도 있고, 정부 관리로 일하면서도 가난한 사람들에게 봉사할 수도 있으며, 적어도 매일 저녁 깨끗한 잠자리와, 좋은 식사와, 친구들과, 하루 저녁 나가 즐길 수도 있을 것은 너무나도 명백히 보이는데?

오랜 침묵이 있었다 : 마이클은 생각한다. 그것은 자주 던져지는 수수께기 질문이다. 마이클은 무엇 때문인가?

“나는 <긴 외로움>(도로시 데이 자서전)을 읽었어요. 난 그것이 걸어야 될 길이라고 알고 있었지요. 나는 성서학자는 아니지만 도로시 데이가 옳다는 걸 알고 있었지요. 우리는 복음이 실천되는 것을 봄으로서 복음을 살아나게 합니다.”

충실히 복음을 산다는 것은 선택을 요구한다. 작고 큰 자신에 대한 죽음, 어떤 것은 쉽고, 어떤 죽음은 아주 고통스럽다. 그리고 마이클은 자신의 몫 이상을 죽었다. 그는 성직과 이 사람들 중 하나를 선택하도록 강요받았고, 이 부름의 압력을 받아 자신의 서약이 빗나가는 것을 보았다 : 또한 매일의 필요와 가난이 서서히 확실하게 그로부터 세속의 소유물들을 하나 하나 뺏어 갔다. 그의 침대였을 침대머리와 침대 받침목이 그의 침실겸 사무실로 벽에 걸쳐져 있고, 돌돌말은 침구가 마루에 단정히 놓여 있는 것이 이를 극명하게 말해 주고 있다.

“그렇지요. 때로는 회의와 절망의 순간이 있을 때도 있지만 우린 계속 용서해야 합니다. 난 그들을 사랑합니다. 그들은 나를 사랑하고요. 희망만이 마지막 덕이죠. 이 사람들은 이것이 세상의 끝이 아니라는 것과 누군가가 아직도 그들을 사랑하고 그들을 믿고 있다는 것을 알 필요가 있습니다.” 마이클은 믿는다. 다만 가끔 어깨가 쳐질 때가 있을 뿐이다.

 

기적이 일어나는 법

이 집은 재난을 겪고 있다. 그리고 이 집은 이 집 사람들이 살아남아 매일 아침 깨어나서 또 다른 하루를 맞는 기적과도 같은 일이 일어나고 있다.

마이클은 집안에 있는 돈을 모두 가지고 시장을 본다. 100달러 쯤이다. 조심스럽게, 신경을 곤두세우고 조심스럽게 40명분의 음식을 사고 있다 -콩 깡통 10개, 칠면조 소세지 상자, “돼지고기 모음” -포장 설명에 의하면 부스러기살을 다시 혼합한 것이다. 좋게 말하면 ‘알 수 없는 고기’이지만, 그것은 단백질이고 아주 힘들게 조금씩 조달 할 수 있는 음식이다.

다음 장은 할인매장으로 가서 본다. 마이클은 12½ 사이즈의 신발을 한 남자를 위해 찾고 있다. 그런 신발은 없다. 가게안에 웃음이 인다. 그런 큰 발을 가진 사람은 특별 주문을 해야지, 이런 할인 매장에서는 턱도 없는 주문이다. 마이클은 12 사이즈로 정한다. 발을 오무려서라도 신을 신을 수 있을 것이다. 지갑이 텅 비었다. 마이클은 걱정이 된다. 음식은 며칠을 지탱하겠지만, 마이클과 집안은 이제 빈털털이다.

집에 돌아와서 우편물 속에서 2개의 수표를 발견한다. 하나는 정기 기부금으로 10달러 수표고 또 하나는 알지 못하는 사람으로부터 놀랍게도 250달러가 왔다. 마이클의 얼굴이 밝아진다. 그의 눈에 찬탄의 빛이 보인다. 다음날 아침 기대하지도 않았던 잉여 음식물이 배달된다. 주로 식료품들이다. 고기를 넣은 빵과, 좋은 사과다.

마이클은 차겁고 아삭바삭한 단물맛이 나는 사과를 한 입 물고 말한다. “이건 내가 좋아하는 사과예요. 세상에 이걸로 음식문제는 해결 됐네요. 세상에!” 기증받은 식료품을 둘러보면서 마이클은 말한다. “나는 이런 기적에 동참할 수 있어서 너무나 축복 받았어요. 정말로 필요할 때까지는 아무 것도 생기지 않습니다. 그런 다음에는 꼭 알맞게 아주 꼭 알맞은만큼 생기죠. 그리고 꼭 생깁니다. 하지만 기다림의 댓가는 치러야죠. 하지만 왜 못기다립니까?”

이 일은 일체가 소모적이다. 집없는 사람을 받아들이고, 그들의 호소에 귀기울여주고, 싸움을 떼어 말려주어야 한다. 마이클은 가끔 이곳을 피해야 할 필요가 있고, 또 피하고 있다. 그의 어머니 집에 가서 못 잔 잠을 자고 그의 옷을 세탁한다. 그는 또 매일 국무성까지 산보를 간다. 국방부의 5각형 건물 주위를 돌 때마다 묵주신공을 한다. 언제나 고통의 신비를 기도하는데 1각마다 1단씩 드린다. 그 고통의 신비는 언제나 그에게 예수님의 고통을 생각케 한다. “무죄한 어린이들의 순교축일(12월 28일)이나, 히로시마 원폭일 등에는 이곳에서 데모가 있지만, 아무도 매일 와서 데모를 하지 않는다는 것을 깨닫고는 묵주신공을 드리기 시작했지요.”

1940년 10월호 “가톨릭일꾼운동” 회지에서 도로시 데이는 이렇게 썼다 :

“전쟁을 싫어하는 사람은 많다. 그들은 자신들이 할 수 있는 것이 무엇인지 모르면서 평화시의 징집에 반대하는 사람들이다. 또한 그들은 단결된 노력이 무엇인지 모르면서 그냥 뒤로 물러 앉아 우리에게 지워진 악을 체념으로 받아들이는 사람들이다. 이것은 하느님의 뜻이 하늘에서와 같이 땅에서도 이루어지라고 일하는 것이 아니다. 이런 태도는 세상의 악을 피할 수 없는 것으로 보고 받아들이면서 하늘은 하늘대로 ”그림의 떡“ 마냥 바라보고 있는 것이다. 하느님은 악을 만들지 않으셨다. 다만 사람들이 그의 자유의지를 잘못 사용하여 만든 것이다.”

그리고 매일 산책 후에 마이클은 이 낡은 집으로, 쫓겨난 자식인 식구들에게 돌아온다. 이곳은 각자가 자신의 재능과 상처를 가지고 들어오는 가정이다. 어떤 사람은 다른 이에게 사랑을 베풀 기회를 제공하는 것 외에는 할 수가 없다. 그리고 이곳에서는 그것만으로도 충분한 것이다.

[출처] 참사람되어 1993년 1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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