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톨릭교회 교리서는 예비신자용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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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톨릭교회 교리서는 예비신자용이 아니다
  • 김유철
  • 승인 2019.07.22 13: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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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유철의 Heaven's Door

 

“우리 아버지!”라고 말하기 위하여

<가톨릭교회 교리서>(CATECHISMUS CATHOLICAE ECCLESIAE)가 로마 교황청 사도좌에서 1992년 반포되고 1997년 라틴어 표준판으로 나온 것을 한국천주교회에서 2003년 주교회의 교리교육위원회가 우리말로 번역하여 발행했다.      

당시 교황 요한 바오로 2세는 교황령 <신앙의 유산>(FIDEI DEPOSITUM)을 통해 “<가톨릭교회 교리서>는 그리스도교 신비를 더 잘 깨닫고 하느님 백성의 신앙에 생기를 불어넣기 위하여 성경의 가르침, 교회 안에 살아 있는 성전(聖傳)의 가르침, 정통 교도권의 가르침, 교부들과 성인들이 영적 유산으로 물려준 가르침들을 충실하게 체계적으로 제시한 교리서”(신앙의 유산 3항)라고 말했으며, 우리말 번역본 발행에 즈음해서는 “<가톨릭교회 교리서>는 한국 교회의 모든 사목자와 교리 교사 뿐만 아니라 신자들도 읽어야 할 필독서입니다. 왜냐하면 이 교리서에는 우리가 믿고 실천하는 가톨릭교회의 신앙 진리가 충만하기 때문입니다.”라고 말한 바 있다.

발행이후 햇수로 16년이 지나는 동안 우리말로 나온 <가톨릭교회 교리서>가 교황의 의지대로 얼마나 읽히고 전파되고 실생활 속에서 녹아든 교리가 되었는지는 현재 교회를 구성하고 있는 모든 이가 감당해야 할 몫이다. <가톨릭교회 교리서>는 총 4편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제1편 [신앙 고백]에서 그리스도인으로서 믿는 것의 본질과 고백을 핵심으로 삼았다. 제2편 [그리스도 신비의 기념]에서는 신비의 핵심인 성사를 입문, 치유, 친교로서 설명하고, 제3편 [그리스도인의 삶에서]는 인간의 소명과 함께 십계명에 드러난 하느님 사랑과 이웃 사랑을 체험하며, 제4편에서는 [그리스도인의 기도]로서 가톨릭교회의 교리를 마무리 했다. 그 마지막 단락이 주님의 기도 “우리 아버지!”이다.

예비신자들은 무엇을 배우고 있을까?

많은 사람들이 오해하고 있지만 교리서는 평신도들이 보는 것, 그 중에서도 예비신자들이 보는 것이란 생각이 그것이다. 교황이 <가톨릭교회 교리서>를 발행하면서 반포한 <신앙의 유산>에서 말했듯이 “교리서는 한국 교회의 모든 사목자와 교리 교사 뿐만 아니라 신자들도 읽어야 할 필독서”라는 말에 방점을 분명히 찍어야 한다. 그러기에 <가톨릭교회 교리서> 제1편에서 말하는 것처럼 자신의 ‘신앙 고백’이 진정 무엇인지 환기하고 확실하게 상기시키고 있는 것이다. 분명한 것은 <가톨릭교회 교리서>는 예비신자용이 아니다!

현재 한국천주교회에서는 <한국천주교 예비신자 교리서>를 1999년 주교회의 교리교육위원회가 편찬하여 발행한 이후 2018년에 세 번째 개정된 것을 표준으로 사용하고 있다. <가톨릭교회 교리서>에 비해서는 단출하지만 예비신자들이 교리반에서 배울 수 있는 시간적 여유 등을 감안하여 편찬한 것으로 이해한다.

<한국천주교 예비신자 교리서>는 총3편으로 구성되어 있다. 제1편 <예비 신자 이전 기간>에서는 한국천주교회와 천주교, 성경과 예수가 설명되며 제2편 <예비 신자 기간>에서는 교리의 핵심이라고 할 하느님, 구세주 예수, 성령, 삼위일체, 교회, 동정 마리아, 7성사, 기도 등이 들어 있으며 제3편 <정화와 조명의 기간>에는 가족사랑, 생명사랑, 그리스도인의 경제생활과 사회생활, 영원한 삶으로 예비신자들이 교회에 입문함에 있어 그야말로 기초적이지만 신앙생활에 밑바탕이 될 것을 담고 있다. 알다시피 애석하게도(!) 예비신자 기간에 배운 것이 평생 유일한 교리교육이 되는 신자들이 상당히 많다는 사실이 피할 수 없는 ‘불편한 진실’이기도 하다.

 

절두산 성지. 사진=한상봉
절두산 성지. 사진=한상봉

 

고민1. 한국천주교회사를 언제 어디서 배울 것인가?

<한국천주교 예비신자 교리서>에서는 교리서 31쪽-37쪽에서 [한국천주교회]를 ‘소개’하고 있다. 이것은 바로 뒤에 나오는 천주교와 성경이나 예수보다 앞서서 한국교회의 신원을 밝히는 의미를 지니고 있다. 예비신자들이 어디에 속한 사람인지를 분명히 하고자 함으로 이해한다. 필자는 이 글에서 교리서의 구성 혹은 내용을 평할 위치에 있지 않으며 그것은 이 글의 주제가 아님을 밝혀둔다.

그러나 103위 성인과 124위 복자, 132위 하느님의 종 외에도 헤아릴 수 없는 많은 순교자와 삶과 죽음의 증거자들로 이루어진 한국천주교회의 230여년 역사를 어떻게 전할 것인지는 늘 숙제로 남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있는 그대로’가 역사를 마주보는 가장 바른 길이라는 생각에는 변함이 없다. 신앙은 하느님을 넘을 수는 결코 없지만 교리를 넘어 있는 것이고 그 교리를 삶 안에서 녹여 사는 길이 신앙이기 때문이다.

매년 9월을 한국천주교회는 순교자성월로 지낸다. 물론 한국천주교회가 일컫는 순교자는 1784년부터 병인박해 이후 프랑스 선교사들이 다시 들어온 1876년 4월까지 100여년동안 자신의 목숨을 하느님 고백과 맞바꾼 사람들로 이루어져있다. 21세기 임에도 불구하고 한국천주교회사는 조선시대를 벗어나지 못한 채 그 언저리에서 맴돌고 있을 뿐이다. 그것을 전가의 보도로 간직한 채.

선교사들이 들어오기 직전인 그 해 2월 강화도 조약이라고 불리는 조일 수호통상조약이 맺어지자 한국천주교회는 신앙의 자유와 함께 흑역사의 블랙홀로 들어간 일단의 내용은 올해 3·1운동과 대한민국 임시정부 100주년을 맞아 주교회의 의장 김희중 대주교의 담화(http://www.cbck.or.kr/Notice/13013764?page=3&gb=K1300)에도 그 아픔은 배여 있다. 하물며 그런 진솔한 담화마저도 주교회의 의장으로서는 처음이다시피 했으니 한국천주교회의 교회사에 대한 전향적 태도와 교육은 앞으로도 더욱 필요한 것이다. 그러기에 이제 ‘순교자성월’의 전례와 행사 양식은 바뀌어야 하고 교리서도 새롭게 해석되어야 할 것이다.

고민2. 사회교리는 어떻게 전할 것인가?

<한국천주교 예비신자 교리서> 제3편 [정화와 조명의 시간]을 통해 그리스도인의 경제생활과 사회생활을 설명함으로서 이른바 "사회교리"의 일단을 예비신자들에게 소개했다. 교황청 정의평화위원회가 2004년 <간추린 사회 교리>(COMPENDIUM OF THE SOCIAL DOCTRINE OF THE CHURCH)를 펴낸 이후 한국천주교회에서는 2005년 같은 제목으로 번역본을 발행했다.

당시 주교회의 정의평화위원장 최기산 주교는 편찬사에서 “사회 교리는 그리스도인의 인생관의 본질적인 요소(「어머니여 스승」,222항)인 만큼, 모든 신자들은 반드시 이것을 알고 실천해야 합니다. 그것은 사회를 복음화 하는 효과적인 수단이기도 합니다. … 모든 사회적 가르침은 배워서 알아야 할 뿐만 아니라 바로 현실에서 실천하여야 합니다. 사회 교리에 대한 교육을 받은 그리스도인들은 정치, 경제, 사회 문제에 관한 자신의 행동을 교회의 가르침에 일치 시켜야 합니다. 이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닙니다. 그러나 그것은 반드시 해내야 하는 일입니다”라고 역설하고 호소했다.

그러나 그 호소가 한국천주교회에서는 도무지 퍼져나가지 못했다. 추측컨대 ‘사회교리’(SOCIAL DOCTRINE)‘라는 말이 ’사회주의‘(SOCIALISM)라고 들렸던지 혹은 여러 사업을 하고 있는 교회 자신에게 돌아올 부메랑이 두려웠을 수도 있을 것이다. 분명한 것은 “내가 세상에 평화를 주러 왔다고 생각하지 마라. 평화가 아니라 칼을 주러 왔다.”(마태10,34)라는 예수의 말씀을 교회 역시 피해갈 길은 없는 것이다.

한국천주교 정의평화위원회가 2005년 <간추린 사회 교리>를 발행하고 이해를 쉽게 하기 위해 <더 간추린 사회 교리> 에 이어 2006년 <다시 간추린 사회 교리>를 연거푸 발행한 간절한 마음이 아릴정도로 느껴진다. 교회안의 복음화가 이러할 진데 예수의 유언 같은 세상의 복음화는 그리스도인으로서는 풀 수 없는 원죄가 될 것이다.

당신은 예수와 함께 있다

로마교황청이 발행한 <가톨릭교회 교리서>, 한국천주교회가 발행한 <한국천주교 예비신자 교리서>와 <한국천주교 견진 교리서>, 교황청 정의평화위원회가 발행한 <간추린 사회 교리>, 한국 천주교 정의평화위원회가 발행한 <간추린 사회 교리>와 <더 간추린 사회 교리> 가 모두 예비신자와 그리스도인과 세상 사람이 복된 길로 가는 나침판이 되길 기대한다. 혹여 먹고 사느라 읽을 시간이 없다는 말이나 본당에서 행사는 해도 가르칠 시간이 없다는 말이나 교리는 교리고 삶은 삶이라는 말은 인생을 함께 하는 예수 앞에서 “난 그 사람을 모르오.(루카23,57)라고 말하는 일이다.

 

김유철 스테파노 시인
한국작가회의 <삶 예술 연구소> 대표
경남민주언론시민연합 이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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