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파르나움에서 예수운동이 시작된 이유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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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파르나움에서 예수운동이 시작된 이유는?
  • 김진호
  • 승인 2019.06.18 14: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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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한이 잡힌 뒤, 갈릴래아 촌락 ‘안’에서 ―‘일상권력’과의 충돌-1
영화 중에서

예수, 요한의 하느님나라 운동을 계승하다

14 요한이 잡힌 뒤에 예수님께서는 갈릴래아에 가시어, 하느님의 복음을 선포하시며 15 이렇게 말씀하셨다. “때가 차서 하느님의 나라가 가까이 왔다. 회개하고 복음을 믿어라.”

어부 네 사람을 제자로 부르시다(마태 4,18-22; 루카 5,1-11) 16 예수님께서 갈릴래아 호숫가를 지나가시다가, 호수에 그물을 던지고 있는 시몬과 그의 동생 안드레아를 보셨다. 그들은 어부였다. 17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이르셨다. “나를 따라오너라. 내가 너희를 사람 낚는 어부가 되게 하겠다.” 18 그러자 그들은 곧바로 그물을 버리고 예수님을 따랐다. 19 예수님께서 조금 더 가시다가, 배에서 그물을 손질하는 제베대오의 아들 야고보와 그의 동생 요한을 보시고, 20 곧바로 그들을 부르셨다. 그러자 그들은 아버지 제베대오를 삯꾼들과 함께 배에 버려두고 그분을 따라나섰다. (마르 1,14-20)

요한이 잡힌 뒤 예수는 갈릴래아로 갔다. 앞에서 보았듯이, 이 구절 속에는 예수에 대한 대중의 기억이 함축되어 있다. 요한의 적극적 추종자였던 예수는 그이가 이끄는 집회에 안티파스의 군인들이 난입하여 무자비한 폭력을 휘두르는 아비규환 속에서 하느님나라 운동의 재개를 도모하며 흩어진 추종자의 한 사람이었다. 그 순간 그들은 각자 ‘제2의 요한’이었다. 필시 그들은 각기 다른 곳에서 하느님나라운동을 재개하고자 했을 것이다. 예수도 그랬다. “때가 찼다. 하느님나라가 가까이 왔다.”는 예수의 선포는 요한의 선포와 똑같다. 그도 ‘제2의 요한’이었다.

이 구절이 예수가 갈릴래아로 온 것이 요한의 하느님나라 운동을 재개한 것임을 말하는 포괄적 텍스트라면, 이 구절 다음에 바로 이어지는 ‘제자규합’ 텍스트는 그 운동의 첫 번째 국면을 보여준다. 요한이 잡힌 뒤 그이의 잔당에 대한 당국의 추적을 받는 상황에서 가장 먼저 선택할 만한 곳은 일가친척이 있는 고향일 것이다. 하지만 예수는 나자렛으로 간 것이 아니라 가파르나움으로 갔다. 왜 가파르나움일까.

35 이튿날 요한이 자기 제자 두 사람과 함께 그곳에 다시 서 있다가, 36 예수님께서 지나가시는 것을 눈여겨보며 말하였다. “보라, 하느님의 어린양이시다.” 37 그 두 제자는 요한이 말하는 것을 듣고 예수님을 따라갔다. 38 예수님께서 돌아서시어 그들이 따라오는 것을 보시고, “무엇을 찾느냐?” 하고 물으시자, 그들이 “라삐, 어디에 묵고 계십니까?” 하고 말하였다. ‘라삐’는 번역하면 ‘스승님’이라는 말이다. 39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와서 보아라.” 하시니, 그들이 함께 가 예수님께서 묵으시는 곳을 보고 그날 그분과 함께 묵었다. 때는 오후 네 시쯤이었다. 40 요한의 말을 듣고 예수님을 따라간 두 사람 가운데 하나는 시몬 베드로의 동생 안드레아였다.(요한 1,35~40)

〈요한복음〉에 의하면 예수운동의 핵심 인사들인 베드로와 안드레아(Aνδρεας)가 원래 요한의 추종자였다고 말한다. 다른 복음서들은 침묵하고 있는데 〈요한복음〉만 말하고 있다면 그것을 얼마나 신뢰할 수 있을까.

우선 예수 당대에는 베드로 등이 요한의 운동에 가담했다는 전력이 있더라도 그것을 드러낼 이유는 없었을 것이다. 그들은 자신을 예수의 분신으로 주장했을 것이기 때문이다. 예수 자신도, 비록 대중은 그이를 요한의 분신으로 이해했음에도, 자신이 요한의 제자라고 말하지는 않았다.

한편 〈마태복음〉 〈마르코복음〉 〈루카복음〉은 베드로 등이 요한의 제자였다는 걸 몰랐을 가능성이 있다. 혹은 알고 있더라도 예수가 요한의 후계자가 아니라 요한이 예수의 예비자로 주장하려 했으니 그 사실을 의도적으로 말하지 않았을 수도 있다.

그런데 〈요한복음〉에는 다른 데서는 없는 독특한 자료들이 많다는 점에도 베드로 등이 요한 추종자였다는 주장도 다른 복음서들이 모르는 정보일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하지만 이 문서도 요한은 예수의 예비자였다. 그러니 이 얘기는 말하지 않는 게 더 유리한 것일 수 있다. 그럼에도 말하고 있다.

이에 대한 가설적 해설에 의하면 당시 이스라엘 재건 율법회의에 의해 강제추방 당한 두 공동체가 서로 연대하고 때로 서로 통합을 모색하고 있는 상황에서 〈요한복음〉은 두 공동체가 애초부터 인맥에서 서로 긴밀히 결합되어 있었음을 명시하면서 요한이 자신의 제자들을 예수에게 보냈듯이 요한계 공동체도 그리스도파 공동체의 일원이 되어야 한다는 것을 제안하고 있다는 것이다. 어쩌면 〈요한복음〉은 베드로 등이 요한의 제자였다는 정보를 요한계 공동체로부터 들었을 수 있다.

[참고] 그리스도파 공동체들이 이스라엘계 공동체에서 강제 탈퇴당하게 된 정황

세기 말 얌니아(Ἰαμνία, 지금의 야브네 Yavneh)에 본거지를 두고 있는 ‘이스라엘 재건 율법재판소’는 지중해와 팔레스티나 각 회당에 ‘비브캇 하미님’(birkat haMinim, 직역하면 ‘이단자에 대한 축복’, 하지만 실제로는 ‘이단자에 대한 저주’를 뜻함)에 대한 협조공문을 보냈다. 이는 66~70년 반로마항쟁으로 인해 로마에 의해 초토화된 이스라엘의 재앙에 대한 책임자 처벌의 의미를 지니는데, 율법재판소는 ‘이단자’로 그리스도파와 요한파 등을 지목했다. 이에 몇몇 회당들에서 그리스도파와 요한계 인사들이 색출되고 고문당하며 재산이 몰수되고 추방되는 일이 벌어졌다.

다음 구절들은 이 저주운동으로 그리스도파가 당한 고초를 반영하고 있다.

 

"그러므로 이제 내가 예언자들과 현인들과 율법 학자들을 너희에게 보낸다. 그러면 너희는 그들을 더러는 죽이거나 십자가에 못 박고, 더러는 너희 회당에서 채찍질하고 또 이 고을 저 고을 쫓아다니며 박해할 것이다."(마태 23,34)

"사람들이 너희를 회당에서 내쫓을 것이다. 게다가 너희를 죽이는 자마다 하느님께 봉사한다고 생각할 때가 온다."(요한 16,2)

만약 〈요한복음〉의 정보가 사실에 부합한다면, 베드로, 안드레아 등은 요한운동에서 예수를 따르던 소그룹의 일원이었을 가능성이 있다. 한데 당국에 의해 요한이 체포되자 예수일행은 갈릴래아로 왔다. 한데 이 소그룹의 리더인 예수의 고향 나자렛이 베드로 등의 고향인 가파르나움으로 갔다. 이 사실은 〈요한복음〉의 정보가 더 사실과 부합하다는 것을 시사한다. 예수가 생면부지의 땅으로 갔다가 거기에서 동지가 될 이들을 알게 되었다는 가정보다는 동지들의 고향으로 갔다고 하는 게 더 타당해보이기 때문이다.

예수의 운둔지요 활동의 거점

사실 카파르나움은 여러 가지로 당국에 추적당하고 있던 요한운동의 잔존세력이 운둔하기에 적합한 곳이다. 우선 변경지역의 어촌마을이라는 점이 중요하다. 고대사회에서 국가와 국가 간의 경계는 하나의 선(線)을 긋듯이 국경(border)으로 나뉘는 게 아니다. 국가의 경계선은 명료하지 않다. 오히려 그 경계는 선이 아니라 면(面)으로 되어 있다. 그런 의미에서 ‘변경’(frontier)이라고 부른다. 이 나라에도 속하고 저 나라에도 속한, 혹은 여기에도 속하지 않고 저기에도 속하지 않은 지역이 바로 변경이다. 두 개의 정체성, 그리고 흔들리는 정체성, 그것이 변경의 사람들을 특징짓는 개념이다. 카파르나움이 바로 그런 곳이다. 안티파스의 공권력을 피해 은거하며 활동을 도모하기에 변경 마을 카파르나움은 안성맞춤이다.

 

카파르나움 유적지

 

또한 이곳이 꽤 큰 어촌이라는 것이 중요하다. 최근 카파르나움 회당(위의 오른편 그림에서 굵은 검은 색 선으로 표기된 부분)에 대한 발굴 작업 중에 그 아래쪽에, 회당 건설 과정에서 파괴되었을 것으로 보이는 가옥 흔적이 발견되었다. 이 가옥들은 헬레니즘 시대와 로마시대로 추정되는 시기에 실재했던 것으로 보이는데, 그 가옥의 구조가 흥미롭다. 

작고 빽빽하게 구획된 매우 많은 가옥들이 마치 다세대 주택처럼 서로 연결되어 있었다. 이것은 공동체가 매우 긴밀하고 평등하게 연결되어 있다는 것을 뜻한다. 나자렛 같은 지역의 가옥의 흔적들은 집집마다 독립적으로 구성된 건조물 형식을 띠고 있는 것과 대조적이다. 이것은 가버나움이 어촌 가운데서도 제법 큰 마을일 수 있다는 것을 뜻한다. 한 가족 단위의 작은 배가 아니라 마을 사람들 다수가 함께 조업을 할 만한 제법 큰 배가 있었고, 그것을 가공하는 작업까지 수행할 만큼의 규모가 있는 마을이라는 얘기다.

요한과 야고보 형제가 예수를 따르게 되는 이야기에서 “그들은 아버지 제베대오를 일꾼들과 함께 배에 남겨 두고, 곧 예수를 따라갔다.”(마르 1,20)라는 묘사는 제베대오와 마을 사람들이 선주와 삯꾼의 관계가 아니라 마을사람들이 함께 조업하는 일종의 어촌조합으로 엮여 있는 상황을 시사한다.

이런 촌락은 외부인에 대해 대단히 배타적인 반면 내적 결속력은 대단히 높다는 특징을 갖는다. 한데 이 마을에 사는 적어도 네 명의 청년들이 신원을 보증하는 사람, 더구나 촌장 역할을 하는 집안의 아들들이 존경해 마지 않는 사람은 빠르게 그 마을의 내부인으로 받아들여졌을 것이다. 하지만 외부에서 그 사실에 다가가기는 쉽지 않았다. 그만큼 마을사람들은 가족처럼 연결되어 있고, 외부인이 그 연결망 안의 사정을 알아내기 용이하지 않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이 마을은 ‘제2의 요한’이 되고자 하는 이가 은거하기에 더없이 적합한 곳이다.

한편 그곳은 은거의 장소만이 아니라 활동의 거점이기도 했다. 〈마르코복음〉 2,1 “예수께서 ‘다시 카파르나움으로’(παλιν εις Καφαρναουμ) 들어가셨다.”는 표현을 1,37 “예수께서 온 갈릴래아와 ‘여러 회당’(εις τας συναγωγας)을 두루 찾아가셔서 말씀을 전하고, 귀신들을 쫓아내셨다.”와 연결시키면, 예수일행이 카파르나움을 거점으로 삼고 마을을 돌아다니며 하느님나라 운동을 폈다는 것을 암시한다.

한편 예수일행이 마을 안에서 더 이상 활동하지 않게 된 시기(이에 대하여는 뒤에서 상세히 이야기할 것임)에도 카파르나움은 여전히 중요한 거점이었던 것으로 보인다. 예수일행이 예루살렘으로 가려던 결정적인 순간에, 예수는 다시 북쪽의 카파르나움으로 갔다가 남쪽으로 내려가는 행보를 보인다.

그들은 카파르나움에 이르렀다. 예수님께서는 집 안에 계실 때에 제자들에게, “너희는 길에서 무슨 일로 논쟁하였느냐?” 하고 물으셨다.(〈마가복음〉 9,33)
 

김진호
현 제3시대그리스도교연구소 연구기획위원.
전 제3시대그리스도교연구소 연구소 연구실장, 한백교회 담임목사, 계간 《당대비평》 주간. 《경향신문》, 《한겨레신문》 《서울신문》 《주간경향》 《한겨레21》 등의 객원컬럼리스트. 《예수역사학》 《예수의 독설》 《리부팅 바울―권리 없는 자들의 신학을 위하여》 《급진적 자유주의자들. 요한복음》 《권력과 교회》 《시민K, 교회를 나가다》 《반신학의 미소》 등 지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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