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앙이 관념이 아니라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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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앙이 관념이 아니라면
  • 한상봉
  • 승인 2016.05.23 17: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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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동하는 사랑-5
ⓒ한상봉

그게 언제였던가? 하늘이 차가울 만큼 맑았던 늦은 이십대의 어느 겨울이었다. 인천 제물포역 지하상가를 막 벗어나려다 낯익은 얼굴과 맞닥뜨렸다. 김윤경, 서강대 사학과 동기다. 그녀는 <청지淸芝>라는 교내 여학생 잡지를 발간하는 서클에서 활동했던 친구였다.

내가 군대에 가기 전에, 약 2년여를 함께 학창 시절을 보냈지만, 그녀에 대한 기억은 별로 없었다. 그녀는 다소곳이 말없는 학생이었으며, 남의 눈에 두드러진 구석이라곤 별로 없었던 것 같다. 아, 지금은 교사 생활을 하고 있는 내 친구가 한동안 그녀를 좋아해서 쫓아다니며 고민을 토로했던 바로 그 당사자이기도 했다는 걸 기억해 냈다. 그저 그뿐이었다. 개인적으로는 단 한 번도 대화를 나눠 본 적이 없었다. 이 친구를 4∼5년이 훨씬 지난 뒤에 우연히, 서울도 아닌 내 고향 인천에서 마주친 것이다.

내 생각에는 내 친구처럼 그녀도 역사 교사가 되어 있어야 했지만, 정작 그녀는 인천 주안공단에 ‘위장’ 취업한 활동가였다. 시간이 지나고 얼굴이 잊혀져도 인상이 남아서 서로가 내버려 두었던 시간의 공백을 채워 준다. 그녀는 나를 곧 알아보았고, 다방에 가서 그녀의 이야기를 듣는 동안에, 나는 줄곧 당장에 떠오르지 않는 그녀의 이름을 기억해 내느라고 애를 먹었다. 한 번쯤 친구의 이름을 불러 주어야 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에서였다.

하필이면 이름도 베아트리체였던 그 다방에 앉자마자, 그녀는 대학 졸업 후의 내 진로를 물어 왔다. 사제가 되기 위해 신학교에 갈까 고민 중이라는 답변에 대뜸 “종교는 관념”이라는 화두부터 들이대며 마음을 고쳐먹으라고 설득하기 시작했다. 학생운동을 시작하면서부터 줄곧 나는 신앙 때문에 선배와 동료들로부터 관념론자라는 낙인에서 자유롭지 못했다.

그네들이 종교를 부정적으로 보는 것은 단순하게 종교가 신이라는 관념적 존재에 기초한다는 철학적 차원에서 제기된 문제만은 아니었다. 역사적으로 제도교회가 기득권층과 지배 권력의 이익에 봉사하면서 혜택을 누려 왔다는 혐의에서 면제받을 수 없었기 때문이다. 따라서 나는 제도교회의 몰염치한 부도덕성을 무조건 변호할 처지가 되지 못하였다. 단지 ‘해방신학’을 거론하며, 민중해방운동에 동참했던 라틴아메리카의 혁명적 그리스도인의 사례를 들어가며 해방의 도구이기도 한 복음에 관해서, 실천적 신앙 운동에 관해서 말하는 것으로 그나마 면피免避할 만한 구석을 찾았다.

그 후로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는 동안, 그녀가 예전에 알던 연약한 여성이 아님을 알았다. 시대와 삶이 그녀를 단련시켰고, 이른바 1980년대가 낳은 시대의 고통이 그녀를 성장시킨 것 같았다.

내 연락처를 알려 주고 헤어진 뒤, 꼭 일 주일 뒤에 그녀가 죽었다는 소식을 들었다. 연탄가스 중독이었다. 나와 헤어진 뒤 얼마 되지 않아서 그녀는 월세 방을 옮겼고, 이사한 날 밤에 연탄불을 지피고 잠들어서 영영 목숨을 거두었다. 민중운동 활동가이기 전에, 이십대 여성으로서 꽃다운 사랑을 누구와도 미처 만개해 보지 못한 채, 그녀는 그렇게 이승을 하직했다.

비정한 우주 그리고 하느님이 원망스러웠다. 그녀가 사라진 세상에서 이젠 제대로 말로 답변할 수 없으니, 두고두고 신앙이 관념이 아님을 증명해 보여야 저승에서라도 그녀에게 떳떳한 말 한마디 건네 줄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한상봉
이시도로, 가톨릭일꾼 코디네이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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