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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멜, 창녀에게서 드러난 예언성서의 조연들-7
코디 밀러의 <호세와 고멜>(Hosea and Gomer). 사진출처=codyfmiller.com 갈무리

그분을 생각하노라면, 엘리야 예언자께서 만나셨다는 그 야훼 하느님의 이미지가 항시 떠오르곤 합니다. 예언자께선 간악한 이세벨 왕비에게 쫓겨서 피신 중에 주님을 뵈었다지요. 강한 바람이 불어 산을 흔들고 바위를 산산조각 내시는 그 가운데 야훼께선 계시지 않았다지요. 지진 가운데도 불길 가운데도 계시지 않았다지요. 불길이 지나간 연후에 조용하고 여린 목소리로 오신 분이 주님이셨다지요.

사실 사마리아의 멸망이라는 엄청난 예언을 했던 제 남편 호세아는 본래 그런 사내였습니다. 섬약하고 시인의 마음을 간직할 줄 아는 사내였지요. 그분이 입을 열어 제게 건네주었던 음성은 이슬과 같아서 제 생명은 나리꽃처럼 피어나고, 버드나무처럼 뿌리를 뻗어가는 것 같았지요. 그분은 저로 하여금 ‘주인님’이라 부르게 하지 않았습니다. 제 낭군이라 했어요. 하늘이 맺어준 연분을 귀하게 여긴 탓이겠지요. 아침안개처럼 동터오는 햇살에 일순간 사라지고 마는 그런 사랑이 아니고, 말하자면 ‘절대적 사랑’ 그런 것이었던 것 같아요.

그러나 그건 호세아의 긍지이면서 약점이기도 했답니다. 어디 그런 항구한 사랑이 사람에게 머물겠어요. 저는 몸이 뜨거운 여자였고, 그이가 보이지 않으면 다른 사랑을 찾았던 거지요. 호세아를 싫어한 것은 아니었지만, 호세아만으로 제 열정이 만족하지 못했던 것은 그만큼 제 욕망이 컸던 탓이겠지요. 저는 여러 사내에게서 숱한 경험을 하였고, 때로는 못 이겨서, 때로는 마음이 가는대로 몸을 맡기고 흐트러진 정신으로 정분을 맺곤 하였지요. 부끄럽고 창피한 일이지만, 어쩌겠어요. 그렇게 생겨 먹은 이 여자를 저도 어쩌지 못하는 데요. 저를 창녀라 불러도 억울하지 않아요. 저는 사실 정조를 제대로 지키지 못했고, 온전한 사랑이 무엇인지 모르는 여자였답니다.

공교롭게도 창녀와 다름없는 이 몸을 당신의 도구로 쓰시기로 작정하신 분이 야훼 하느님이셨습니다. 온전하게 사랑 자체이신 분, 그분이 만신창이 불구의 사랑 자체인 저를 통하여 당신 백성 이스라엘의 죄를 묻고자 하셨던 것이지요. 많으면 많을수록 주님께 짓는 죄가 많아지는 사제들과, 법을 세우기는커녕 백성을 옭아맬 그물을 치는 지도자들과 음탕하게 바알을 섬기는 백성들의 죄악을 드러내는 표지(標識)요 상징으로 저를 세우신 것이지요. 더 분명하게 말하자면, 저희 가족 모두가 주님의 뜻을 드러내는 가혹한 표지가 되었습니다.

워낙 바람기가 있던 저를 호세아가 아내로 처음 맞이할 때부터 이미 예언은 시작되었습니다. 남편의 오롯한 순정을 저버린 저처럼 이스라엘은 주님의 사랑을 배신했던 것이랍니다. 제 자식들은 너나없이 이스라엘의 불행을 예고했지요.

예후가 이즈르엘에서 숱한 사람의 목숨을 빼앗아 유혈혁명을 일으켰듯이 그렇게 이스라엘을 멸망시키겠다는 의지를 맏아들 이즈르엘의 이름에 담았고, 다시는 이스라엘 가문을 돌아보지 않으시겠다는 다짐을 맏딸 로루하마의 이름에 새겨 넣었습니다. 그리고 막내 로암미의 이름을 통하여 “너희는 이미 내 백성이 아니요, 나는 너희 하느님이 아니다”라는 엄청난 절교(絶交)의 말을 던져 넣으셨지요. 참으로 애통하고 복통할 일이 우리 가족들의 몸을 통하여 드러나고, 제 남편 호세아가 그 말씀을 전하는 자로 소명을 받았습니다.

그러나 이스라엘의 멸망이 하느님의 진정(眞情)은 아니었던 모양입니다. 방탕한 이 몸조차도 끝내 사랑한 호세아, 제 낭군처럼, 주님께선 이스라엘의 회개를 위하여 가혹한 발언을 토하셨던 것이겠지요. 너희가 돌아서지 않는다면 내가 너희를 죽이리라, 쓰린 말씀을 아프게 하셨을 테지요. 주님께선 제발 첫사랑을 기억하라고 이스라엘에게 말하는 것입니다. 에집트에서 나오던 때, 한창 피어나던 꽃 같고 꿀 같던 밀월의 연애시절을 되새기라는 것이겠지요. 노예살이에서 해방시켰던 주님과 그 기쁨을 함께 나누던 평등한 제 백성들의 환호성을 다시 듣게 되기를 갈망했던 것이지요.

이 하느님의 마음을 알아달라고 애원하다시피 하시는 주님의 목소리를 저는 호세아를 통하여 들었습니다. 저는 그 음성을 듣고 제 남편에게로, 낭군에게로 다시 달려갔지만, 이스라엘은 돌아가지 않았답니다. 온 백성의 완악한 마음 때문에 절망하는 주님의 심정을 남편을 통해 듣고 저 또한 발을 동동 구르고 있습니다.      

한상봉 이시도로
<가톨릭일꾼> 편집장
<도로시데이 영성센터> 코디네이터

 

 

[ 가톨릭일꾼 www.catholicworker.k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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