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후, 바알을 척살한 군인 혁명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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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후, 바알을 척살한 군인 혁명가
  • 한상봉
  • 승인 2018.11.26 22: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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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서의 조연들-6

그렇습니다. 활시위를 겨누어, 달아나는 이스라엘의 왕 요람의 가슴을 뚫어버린 사람이 저였습니다. 제 손을 떠난 화살은 급박한 순간에도 어김없이 과녁을 놓치지 않았던 겁니다. 저는 목표를 향해 돌진하는데 익숙한 군인이랍니다. 하느님은 예언자를 통하여 제게 명령을 내리셨고, 저는 그 명령에 복종했을 따름입니다.

하느님은 아합의 가문을 멸하시기로 작정하셨고, 제게 그 역할을 맡기신 셈입니다. 요람이 병거 위에서 거꾸러지자, 요람의 부관이었던 비드칼에게 단호한 목소리로 명령했지요. “그를 끌어내어 이즈르엘 나봇의 땅에 내던져라!” 그렇게 요람의 아버지 아합 왕에게 살해된 나봇의 복수를 가름했던 것이지요. 하느님께서 저를 통해 억울한 죽음을 대신 갚아주신 것입니다.

사실 제가 처음부터 어떤 엄청난 일을 꿈꾸고 있었다고 여기시면 오해입니다. 거사(巨事)는 벼락같이 급작스레 발생한 것이지요. 저는 복잡하게 생각하는 걸 싫어합니다. 아합 왕이 살아 있을 때는 임금의 병거 뒤에 바짝 붙어서 호위하였습니다. 엘리야가 아합 왕에게 “나 야훼가 선언한다. 나는 지난날 나봇과 그의 아들들이 억울한 피를 흘리는 것을 보았다. 내가 바로 이 밭에서 원수를 갚으리라. 이는 내 말이라 어김이 없다”며 섬뜩한 비난을 하던 그 날도 그 질책을 임금 옆에서 함께 들었지요. 듣기는 들었으되, 왕의 신하로서 딴 마음을 품은 적은 없었습니다. 아합 왕은 왕비 이세벨만큼 독살스러운 자는 아니었고, 그가 욕심이 과하긴 해도 여전히 제 주군(主君)이었기 때문입니다. 저는 그 그늘 아래서 용맹한 장수가 되었고, 아합 왕이 전사한 뒤로 요람 왕 그늘에서 충성을 맹세하고 군대를 이끌었습니다.

그런데 전쟁터 한복판에서 제게도 새로운 운명이 열린 것이지요. 요람 왕이 전군을 이끌고 라못길르앗에서 시리아 왕 하자엘을 맞이하여 싸우다가 상처를 입고 이즈르엘로 돌아가 치료를 받고 있는 참이었는데, 라못길르앗에 남아 있던 우리 군막(軍幕)에 엘리사가 보낸 젊은 예언자가 한 사람이 저를 찾더군요. 우리 군인들은 예언자 집단을 그다지 달가워하는 편이 아니었답니다. 오죽하면 제가 그 예언자를 면회하고 오자 동료 장교들이 “무슨 일이오? 그 미친 녀석이 왜 왔답니까?”하며 호기심 반, 농담 반으로 물었겠습니까?

군인들은 사실 영적인 문제나 하늘의 뜻 따위는 별로 관심 없어요. 그런데 그날 제가 들은 이야기는 ‘정치적’인 신탁이었습니다. 야훼께서 저를 이스라엘의 왕으로 세웠다는 것이지요. 그야말로 역성혁명(易姓革命)입니다. 그 혁명의 내용은 이세벨의 손에 죽은 예언자들뿐만 아니라 모든 야훼의 종의 원수를 갚기 위해 제가 섬기던 아합의 가문을 쳐부수라는 것이지요.

예언의 내용을 알게 된 동료 장교들이 뜻을 모와준 것은 정말 천운(天運)이요 다행한 일이었습니다. 지존(至尊)이신 야훼께서 내린 명령이니, 우린 거칠 게 없었습니다. 즉각 병거를 몰아 이즈르엘로 달려가 요람 왕을 척살하고, 마침 함께 나온 유다 왕 아하지야도 활을 맞았습니다. 그 역시 아합 가문과 혼인하여 바알신앙을 섬기며 이미 타락할 대로 타락한 구태(舊態)의 장본인 가운데 하나였지요.

바알신앙을 온 이스라엘에 퍼뜨린 아합왕의 왕비 이세벨은 눈 화장에 머리손질까지 하고선 이즈르엘 왕궁의 창가에 서서 나를 저주하다가 내시들이 등을 떠밀어 담벼락에 피를 튀기며 떨어졌고, 그 몸을 제 말이 짓밟았습니다. 아합 가문의 남은 자들도 하나같이 숙청하였습니다. 아합 가문이 제게 개인적으로 원수진 일은 하나도 없었지만, 어찌합니까? 야훼의 명령인 것을. 저는 앞서 말씀드렸지만 군인이었고, 군인은 명령에 단서를 달 수 없습니다.

그리곤 이스라엘 각지에 사람을 보내 바알을 섬기는 예언자들과 사제들을 모조리 사마리아로 불러들여 죽이고, 바알 신전을 헐어 변소로 만들어 버렸습니다. 엘리야 예언자가 입으로 선포한 것을 저는 몸으로 실행하였습니다. 그 일들은 아주 짧은 순간에 이루어진 것이기에 당시엔 그 일의 의미조차 헤아릴 틈이 없었습니다.

하느님께서 제 인격을 보시고 저를 선택했다곤 지금도 생각하지 않습니다. 다만 저는 필요한 때에 필요한 일을 할 수 있었던 주님의 도구였던 거지요. 거기까지가 제 몫이었고, 저는 이스라엘의 왕이 되었지만, 왕으로 한 일은 별로 없습니다. 저는 왕이라기보다 혁명가로 저 스스로 기억하고 만족합니다.

한상봉 이시도로
<가톨릭일꾼> 편집장
<도로시데이 영성센터> 코디네이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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