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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 그 낯선 분] 율법 넘어 함께 아파하기예수와 율법 - 5

예수의 정체성과 사명은 마르 2,1-3,6의 문맥에서 잘 드러난다. 예수는 2,10에서 “사람의 아들이 땅에서 죄를 용서하는 권한을 가지고 있음”을, 2,17에서 “병든 이들을 위한 의사”임을, 2,19에서 “혼인 잔치의 신랑”임을, 2,28에서 “안식일의 주인”임을 드러낸다.

우리 본문 바로 뒤의 마르 3,7-12는 예수의 활동을 요약한다. 그는 치유와 구마의 일을 계속한다. 이 활동의 요약은 복음서의 앞 문맥에서 서술된 예수의 치유와 구마 행위가 계속되고 있다는 것을 확인한다. 그리고 이 요약 본문은 뒷 문맥에서도 그의 활동이 계속되리라는 예상을 가능하게 한다. 이러한 문맥에서 예수와 작은 등장인물들 사이의 기본적인 만남의 패턴이 계속될 것이다.

우리 본문에서 드러난 예수와 반대자들 사이의 갈등은 복음서 이야기의 줄거리가 진행되면서 더욱 깊어질 것이다. 특히 이 둘 사이의 갈등은 예루살렘에서 그 절정에 다다를 것이다. 이러한 문맥에서 우리 본문은 전체 이야기의 갈등 구조를 축약한다고 말할 수 있다. 예수의 정체성과 사명은 반대자들의 몰이해와 비판에 직면한다.

마침내 반대자들은 예수를 없애려 한다. 사람들의 죽이려는 계획과 하느님의 살리시려는 계획 사이의 갈등은 복음서 이야기 전체의 기본 골격을 이룬다. 마르 1,14에서 세례자 요한이 잡힌 뒤에 본격적으로 시작된 예수의 갈릴래아 활동의 첫 단계는 마르 3,6에서 그분을 죽이기 위한 반대자들의 모의로 끝나고 있다.

독자인 우리는 우리 본문의 어떤 손이 오그라든 사람에게 공감(共感)한다. 우리도 예수님의 도움을 필요로 하는 사람들이다. 예수님은 도움이 필요한 사람과 함께 아파하시고, 그를 살리시는 분이시다. 예수님은 변두리로 내몰린 사람을 가운데로 다시 세우시고, 오그라든 삶을 살아가는 사람을 다시 일으키신다. 그분은 하느님과 다른 사람과의 관계에서 단절되어 고립된 삶을 살아가는 우리에게 “손을 뻗어라”고 말씀하신다. 예수님은 “나”의 세계에 갇힌 우리의 삶을 “나” 밖의 세계로 열린 삶으로 바꾸시고, 하느님과 다른 사람들과 단절되어 오그라들었던 우리네 삶을 소통하고 개방된 삶으로 변화시키신다.

율법에 대한 역사적 예수의 관용적인 태도는 안식일에 허용된 여러 자비로운 행동들의 언급에서도 잘 드러난다. 마르 2,23-28; 마태 12,1-8; 루카 6,1-5에서 배고픈 예수의 제자들이 안식일에 밀 이삭을 뜯어 먹었다. 마태 12,1-8의 본문에 따르면, 하루는 예수의 일행이 밀밭 사이를 지나게 되었다. 그의 제자들이 배가 고파서 밀 이삭을 뜯어 먹었다. 그런데 그날은 공교롭게도 안식일이었다. 마침 그것을 보고 있던 바리사이들이 예수에게 말한다. “보십시오, 선생님의 제자들이 안식일에 해서는 안 되는 일을 하고 있습니다.”(2절)

안식일은 사회 정의와 생태 정의의 회복과 실현을 의미하고 하느님 창조의 완성을 전망한다. 그런데 이러한 안식일의 의미는 인간에 의해 방해받았고, 오히려 땅과 양식은 부자를 부자로, 가난한 이는 가난한 이로 머물게 하는 이유가 되었다. 그래서 안식일은 가난한 이들이 양식에 접근하는 것을 제한하는 도구가 되어 버렸다.

예수는 가난한 이들이 양식에 접근하는 것을 가로막는 안식일에 대한 종교 엘리트들의 통제에 저항한다. 그래서 안식일에 어떻게 배고픈 이들이 먹도록 허용되었는가를 실례를 들어 설명한다.(3-4절) 예수에 따르면 배고픈 이들이 존재하는 한 안식일은 제대로 지켜지지 않는 것이 되고 정의와 평화는 제대로 이해되지 않는 것이 된다.

안식일의 실천은 배고픔과 같은 인간의 기본적인 요구들을 만나는 자비로운 행동으로 이루어져야 한다. “‘내가 바라는 것은 희생 제물이 아니라 자비다.’ 하신 말씀이 무슨 뜻인지 너희가 알았더라면, 죄 없는 이들을 단죄하지는 않았을 것이다.”(7절) 자비는 하느님의 정의, 즉 사회 정의와 생태 정의를 실천하는 것이다. 이것이 바로 안식일의 본래적 의미이고 희망적인 비전이다.

예수의 에토스는 할례, 음식과 정결 규정, 안식일 준수 등으로 경계들을 설정했던 유다인들의 분리와 배제와는 명백히 구별된다. 당시 유다인들의 정결의 정치학을 비판하는 예수는 분리와 배제를 뛰어 넘는 “함께 아파하기”(compassion)의 새로운 사회적 패러다임을 대안으로 제시한다. 역사적 예수의 가르침과 실천 안에서, 제2성전 유다이즘의 질서와 가치에 대한 도전과 새로운 대안의 제시는 특히 그의 안식일에 대한 태도에서 잘 드러난다.

송창현 미카엘 신부
지곡성당 주임, 성서학

 

[ 가톨릭일꾼 www.catholicworker.k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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