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 그 낯선 분] 율법 규정들: 정결과 부정 사이를 가르는 경계 표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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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 그 낯선 분] 율법 규정들: 정결과 부정 사이를 가르는 경계 표시
  • 송창현 신부
  • 승인 2019.01.08 12:11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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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와 율법 - 9

4QMMT의 발견과 발표는 바오로 연구에 있어 획기적인 전망을 제시한다. 특히 4QMMT C 27의 “몇몇 율법의 행위들”은 바오로 서간의 표현인 “율법의 행위들”을 이해하기 위한 중요한 실마리를 제공한다.

먼저 우리는 바오로의 “율법의 행위들”이라는 표현이 그의 독창적인 용법이 아니라 당시 팔레스타인 유다이즘 안에서 이미 사용되었다는 사실을 지적한다. 바오로는 당시에 통용되던 표현을 자신의 신학적 주제를 위하여 사용하였던 것이다. 여기서 우리는 쿰란 사본이 바오로의 신학사상과 표현 방식이 가지는 유다이즘적인 뿌리를 이해하는데 있어 매우 중요한 지식과 정보를 제공한다는 사실을 확인할 수 있다.

4QMMT에서 “율법의 행위”는 쿰란 공동체와 다른 백성을 분리하였던 율법의 특정한 규정들을 가리킨다. 그들은 예루살렘과 성전을 떠나야 하는 이유를 제시하였다. 특히 이 율법 규정들은 정결과 부정 사이의 경계를 가리키는 일종의 경계 표시이다. 4QMMT의 의미와 상황은 바오로의 용법을 이해할 수 있게 한다.

갈라 2,15-16에서 바오로는 “율법의 행위”와 믿음에 의한 의화를 극명하게 대조시킨다. 그런데 이 본문 앞에 위치한 갈라 2,1-10은 율법 규정 중에서 할례에 관한 것이고, 갈라 2,11-14은 안티오키아 사건을 보도하는 본문으로서 이방인과의 식탁 친교에 관한 것이다. 즉 바오로는 이방인과의 식탁 공동체를 거부하는 베드로와 유다주의자들에게서 4QMMT와 동일한 태도를 발견했던 것이다. 즉 안티오키아의 유다주의자들에게 이방인들과의 식사는 정결과 부정 사이의 경계를 가리키는 일종의 표시였다.

그들은 이 율법 규정의 준수를 위해 안티오키아의 그리스도교 공동체로부터 자신들을 분리하였던 것이다. 이에 대해 바오로는 “율법의 행위”에 의한 의화를 강하게 비판하는 것이다. 여기에서 우리는 4QMMT와 갈리티아서 사이의 놀라운 병행을 발견한다. 우리는 4QMMT 덕분에 바오로가 왜 “율법의 행위”라는 표현을 선택했는지, 그것을 통해 무엇을 말하고자 했는지를 분명히 이해할 수 있게 된다.

여기서 4QMMT와 바오로 서간 사이의 놀라운 병행은 “율법의 행위”와 관련된 “새 관점” 학파의 주장이 타당하다는 사실을 입증한다. 4QMMT의 쿰란 공동체와 바오로 당시의 일부 유다계 그리스도인들은 동일하게 “율법의 행위”를 통해 의화된다는 것을 믿고 있었다. 그들은 율법 자체를 부정하지 않는다. 이 “율법의 행위”는 정체성과 경계의 표시인 특정한 율법 규정의 준수를 가리켰다. 그리고 4QMMT와 바오로 서간의 “율법의 행위”는 둘 다 계약의 공동체 안으로 “들어가기”와 관련되는 것이 아니라 그 안에 “머물기”와 관련된다. 따라서 바오로는 4QMMT에서 발견되는 신학적 태도와 동일한 입장을 견지하는 유다주의자들(Judaizers)을 비판했던 것이다.

물론 4QMMT의 “율법의 행위”는 쿰란의 에세네파 공동체와 다른 유다인 그룹들 사이의 문제이고, 바오로 서간에서는 유다인들, 개종자들(proselytes), 이방인들 모두와 그리스도인 사이의 문제이다. 즉 4QMMT와 바오로 서간의 “율법의 행위”는 논점이 다르다는 반론이 제기될 수 있다. 그러나 우리는 쿰란 사본과 바오로 서간에서 논의가 되는 관점들은 서로 다를지라도, “율법의 행위”와 관련된 신학적 태도와 관심, 행동 방식은 동일하다는 사실을 지적한다. 이와 같이 우리는 4QMMT의 빛으로 바오로의 “율법의 행위”에 대한 비판의 본래적 의미를 파악할 수 있다.

이러한 맥락에서, 4QMMT는 바오로의 의화론에 대한 이해를 위하여 흥미로운 전망을 제시한다. 4QMMT C 31의 “그것은 당신에게 의로운 것으로 인정될 것이다”는 “율법의 행위”에 의한 의화를 표현한다. 여기서 우리는 창세 15,6과 바오로 서간의 관련성에 주목한다. 창세 15,6의 “아브람이 주님을 믿으니, 주님께서 그 믿음을 의로움으로 인정해 주셨다”는 믿음과 의로움의 관계를 말한다. 그리고 창세 15,6은 로마 4,3; 갈라 3,6에 인용된다. 이와 같이 창세 15,6과 4QMMT는 유사한 어휘로 의로움의 인정을 표현한다. 그러나 4QMMT가 “율법의 행위”에 의한 의로움을 말하는 것에 반해, 창세 15,6; 로마 4,3; 갈라 3,6은 믿음에 의한 의로움을 이야기한다.

송창현 미카엘 신부
지곡성당 주임, 성서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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