르호보암, 지혜 없는 권력의 끝자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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르호보암, 지혜 없는 권력의 끝자락
  • 한상봉
  • 승인 2018.11.19 10: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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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서의 조연들-5

지리멸렬한 시대였습니다. 제가 다스리던 유다도 그렇고, 혁명을 성공시킨 여로보암이 다스리던 이스라엘도 마찬가지였지요. 분명한 정치적 신념도 없고, 종교적 확신도 없이 그저 권력에만 매달리던 우린 정말 배 다른 쌍둥이였을까요? 제 어미가 암몬 여자라서 그랬을까요?

이스라엘의 열 지파가 다윗왕가에서 떨어져 나간 차에 경황이 없던 저는 높은 산과 우거진 나무 아래 산당을 짓고 돌로 남신도 만들고 여신도 만들어 섬겼지요. 여로보암은 금송아지를 만들었다고 하더군요. 그러나 이 모든 게 제 탓이라고만 윽박지르지는 마세요. 이것도 원죄(原罪)라면 원죄겠지요. 제가 선왕이신 아버지에게서 배운 게 뭐겠습니까?

우리 히브리 백성들에게 왕이 생긴 이래로 피비린내 나지 않았던 세월이 있었습니까? 다윗 할아버지든 저희 아버지 솔로몬이든 권력투쟁과 전쟁에서 벗어날 도리가 없었지요. 그래도 다윗 할아버지는 야훼 하느님에 대한 믿음이 있었고, 제 아버지는 지혜를 받았습니다. 저는 오직 그분들에게서 악업(惡業)만 유산으로 받은 것 같아요. 핑계라고 하셔도 할 말은 없지요.

저는 아버지 곁에서 분명히 보았지요. 세바에서 온 여왕조차 혀를 내두르고 칭송하며 돌아갈 만큼 지혜로운 아버지. 여왕은 아버지에게 “당신을 모시는 부인들이야말로 행복한 여인들입니다. 언제나 당신 앞에 서서 당신의 지혜로운 말씀을 듣는 신하들이야말로 행복한 사람들입니다”라고 하였죠. 저는 그런 행복한 아들임을 그때는 의심하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항상 지혜의 방향이 문제인 모양입니다. 무엇을 위한 지혜인가, 수시로 때때로 따져묻지 않는다면 그 지혜가 우리 신세를 망칠 것이기 때문입니다. 아버지는 막강한 군사력과 재력으로 성전과 궁전을 짓고, 그 집에 살 여자들을 불러들였지요. 율법에서 금한 수많은 외국 여인들과 사랑을 나누었는데, 그 중에 한 분이 제 어미이기도 합니다.

후궁이 칠백 명이요, 수청 드는 여자가 삼백 명이라면 믿을 수 있겠습니까? 게다가 신당을 지어 모압의 우상 그모스와 암몬의 우상 몰록에게 그 집을 바쳤지요. 그러니 야훼께서 진노하신 것은 당연한 일이지요. 그런데도 보고 배운 대로 저 역시 그 짓을 하였답니다. 한심한 일이지요.

하느님께서 아버지처럼 제게도 지혜와 분별력을 주셨다면 제 백성은 둘로 나뉘지 않았을 것입니다. ‘결정적 순간’이 제게 왔을 때, 저는 아무 것도 스스로 판단할 능력이 없었습니다.다. 귓볼을 만지작거리며 누군가 대신 판단해 주기를 기다렸답니다.

세겜에서였지요. 여로보암이 이스라엘 회중들을 거느리고 와서 솔로몬 선왕께서 백성들에게 너무 무거운 멍에를 주었으니, 그 짐을 덜어달라고 청했죠. 그래야 저를 왕으로 받들겠다는 겁니다. 사흘 말미를 얻어 선왕을 모시던 나이 많은 신하들의 의견을 물으니, 그들의 요구를 들어주라고 합디다. 저는 그들이 현명한 판단을 내리기에는 너무 늙었다고 여겼습니다. 저를 받들던 젊은이들은 한결같이 다르게 말하더군요. 내 손가락이 부왕의 허리보다 굵다고 말입니다. 혈기방장한 나이에 호기를 부렸던 거지요.   

술렁거리는 대중 앞에서, 충분히 지도력을 인정받지도 못한 처지에, 선친들의 경험도 무시하고 “부왕께선 가죽채찍으로 치셨지만, 나는 쇠채찍으로 다스릴 것이다”라고 하였으니 들끓던 여론에 기름을 부은 격이 되었지요. 무식하면 용감하고 설익어서 떫은 과일을 좋아할 사람이 없는 법입니다.

그때 그들이 내지른 말마디가 지금도 또렷하게 살아나 쓰린 상처로 남아 있습니다. “이스라엘아, 모두 자기 집으로 돌아가자. 다윗이여, 이제 네 집안이나 돌보아라.”

나만 남고 온 세상이 떠내려가는 것만 같았지요. 줏대도 없고 생각도 없는 나만 홀로 남은 셈이죠. 하늘이 맺어준 백성의 인연을 내 손으로 깨어버렸으니, 이승은 외롭고 저승은 두려운 곳이 됩니다. 세상에서 가장 불행한 사람은 하소연 할 데가 없는 인간입니다. 쪽박을 깨고 난 사람의 마음이 예루살렘의 흙바닥 위에 얼룩져 있습니다. 주여, 이 죄인을 굽어 살피소서.

한상봉 이시도로
<가톨릭일꾼> 편집장
<도로시데이 영성센터> 코디네이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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