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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론 "모세가 예언자라면 저는 사제였어요"성서의 조연들-3

모세가 해와 같다면 저는 달과 같은 존재였습니다. 그가 빛이었다면 저는 그림자였습니다. 태양은 너무 뜨겁고 빛은 너무 눈부셔서 사람들은 그 빛을 맨눈으로 보기에 어려워합니다. 그가 입 속에서 우물거리던 말은 하느님께서 뱉어내던 원초적인 언어라서 사람들은 그 말에 귀멀고 그 빛에 눈 멀고 말 것입니다.

아무도 그가 전하는 하느님을 직접 눈으로 보지 못합니다. 그래서 사람들은 그분을 직접 눈으로 뵈면 죽고 말리라고 믿고 있었던 것이지요. 다만 모세만이 하느님을 직접 뵈올 수 있었던 유일한 사람이었습니다. 그래서 사람들에겐 빛으로부터 왔으나 빛처럼 밝지 않고, 해로부터 왔으나 해처럼 뜨겁지 않고, 투명한 진리로부터 왔으나 형상을 갖는 저, 아론이라는 사람의 중재가 필요했던 모양입니다.

그렇게 모세는 하늘에 속한 존재였고, 저는 땅에 속한 존재였습니다. 모세가 전한 하늘을 땅에 소개하는 사명이 그래서 저에게 주어졌습니다. 저는 모세처럼 결정적이고 절대적인 진리를 소유하지 못했지만, 모세의 그림자처럼 어둠인 채로 그 곁에서 떠나지 않았습니다.

아론

모세가 예언자의 원형이 되고 제가 사제의 원형이 된 것은 그래서 우연한 일이 아닐 것입니다. 예언자는 하느님께 온전하게 사로잡힌 자였으며, 온몸으로 하늘의 뜻을 드러냅니다. 그러나 사제는 그 예언을 세상에 전달하기 위해서 상징적 의례를 행함으로써, 그 뜻을 인간의 언어로 바꾸어주어야 합니다.

그러나 하늘의 언어를 땅의 언어로 바꾸는 것은 그리 쉬운 노릇이 아니었습니다. 때로는 발을 헛딛고 골방에서 어둔 자책의 나날을 보내야 했던 것도 인간의 짧은 언어를 가진 사람의 어쩔 수 없는 한계였습니다. 하늘에 속한 모세와 백성들 사이에서 제 부족한 지혜를 헤아리며 가슴 졸이던 날들이 머리털 같이 많고 많았던 세월을 지냈습니다.

모세는 미디안 땅에서 양을 치다가 하느님을 뵈었지요. 어느날 떨기나무에 불이 옮겨붙었고, 하느님은 그 불꽃 속에서도 떨기나무가 끝내 불타지 않도록, 목숨을 잃어버리지 않도록 지키시는 분의 형상으로 모세 앞에 나타나셨습니다.

한낮의 뜨거운 광야에서 떨기나무가 지열(地熱)을 견디다 못해 불타버리는 일은 흔한 현상입니다. 마치 에집트의 파라오 왕의 어처구니 없는 요구와 폭압 속에서 우리 히브리 노예들이 불현듯 죽어나가던 것과 같은 꼴입니다. 굶어서 죽고, 매맞아 죽고, 돌을 지고 나르다 쓰러져 죽고, 한낮의 열기에 견디다 못해 목말라 죽는 게 다반사였기 때문입니다. 에집트는 우리같은 천민들에겐 죽음의 땅이었지요.

모세에게 나타나신 하느님은 이름을 알려주셨죠. "있는 나"라고. 히브리 노예들에게 "너희와 함께 있는 이"이 당신임을 알려주시려는 것이겠지요. 하느님은 당신 백성을 죽을 목숨에서 살려주시고 살 길을 열어주시는 생명의 하느님이셨습니다. 그 하느님이 광야로 탈출하던 우리 백성들에게 홍해의 물길을 열어주시고, 광야에서 만나를 주시고 메추라기를 주신 분이십니다. 예언처럼 우리 앞에 하느님의 명령을 들고 미디안에서 다시 찾아온 모세는 그런 하느님을 저희 히브리 장로들과 제 앞에 보여주었던 것입니다.

모세가 전한 하느님을 백성들에게 다시 전하는 사명을 저는 받았습니다. 그 과정에서 하느님은 모세와 저를 한짝으로 삼았습니다. 그는 제 영이고 저는 그의 육신이 되었습니다. 그가 생각한 것을 저는 그의 입이 되어 말합니다.

하느님께서 모세에게 이렇게 이르셨답니다. “네가 할 말을 그에게 들려주고 그의 입에 넣어주리라. 나는 네가 말할 때나 그가 말할 때나 너희를 도와주리라. 너희가 할 일을 내가 가르쳐 주리라. 그가 너를 대신하여 백성에게 말해 줄 것이다. 그는 너의 입이 되고, 너는 그에게 하느님처럼 되리라.” 그러니 제가 모세와 함께 파라오에게 가서 히브리 백성을 해방하라는 명령을 전달한 것도 다 하늘의 뜻이었던 것입니다.

그와 더불어 고난도 나누고 기쁨도 나누었습니다. 그가 빛을 던지면, 나는 백성들이 그늘 속에서 그 빛이 보여주는 세계를 읽도록 도왔습니다. 백성들의 원망을 모세에게 전하고, 모세를 통하여 오는 응답을 다시 백성들에게 들려주었습니다. 그렇게 예언자와 사제는 한몸입니다. 

그런데 제게 여지껏 회한을 남긴 사건은 모세가 제 곁에서 멀리 떨어져 있던 한 순간에 벌어졌습니다. 모세가 하느님에게서 계명이 새겨진 돌판을 얻으러 혼자 시나이산에 올라갔을 때, 그 몇날 며칠 동안 제 영혼은 적막했습니다. 영혼을 잃어버린 사람처럼 판단이 흐려지고 짝을 잃은 새처럼 가여웠습니다. 아마 다른 백성들도 그러했던 모양입니다. 부딜 언덕이 눈에 보이지 않자, 영 버림받은 게 아닌가 두려웠던 모양입니다.

그들은 그들 곁을 다시는 떠나지 않을 하느님의 형상을 요구했습니다. 그래서 빈자리를 채워줄 속절없는 우상을 세우기로 작정한 것이지요. 그 욕망은 에집트에 버리고 왔어야 하는 금붙이 같은 것이었습니다. 숫송아지상을 만들고 그 주위를 돌며 춤추는 동안 우린 잠시 행복해 보였습니다. 그건 미망(迷妄)이지요. 다시 모세가 제 영혼 곁으로 왔을 때, 저는 반갑고도 두려운 마음이었습니다. 그가 그 미망을 깨고 우상을 갈아먹이고 나서야 제 정신으로 돌아올 수 있었습니다. 정말입니다. 예언을 잃어버린 제사는 그렇게 허망한 것입니다.   

한상봉 이시도로
<가톨릭일꾼> 편집장
<도로시데이 영성센터> 코디네이터

 

[ 가톨릭일꾼 www.catholicworker.k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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