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리와 범죄 사이, 여성사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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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리와 범죄 사이, 여성사제
  • 한상봉
  • 승인 2016.05.17 11: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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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혐오주의에 기초한 가부장적 성직주의에 대한 유감

지난 2008년 5월 29일자로 교황청 신앙교리성에서는 「여성 서품을 시도하는 범죄에 관한 일반 교령」을 발표하여 교회안팎에 다시 여성사제에 대한 논란을 일으켰다. 요지인즉, 교회 최고 권위가 부여한 특별 권한의 힘으로 “여성에게 성품을 수여하려는 자와 성품을 받으려는 여성은 사도좌에 유보된 자동 처벌의 파문 제재를 받는다.”는 것이다. 여성사제를 시도하는 모든 행위를 ‘범죄’로 규정하고 파문한다는 것인데, 이 문제는 아직 논란이 그치지 않고 있다.

미국 등 일부에서는 여성서품회의 등을 통하여 여성사제론을 확장시키고 여성사제를 임의로 서품하는 일이 발생하고 있는 상황에서, 이 모든 논란을 잠재우고 그러한 시도에 ‘자동’으로 쐐기를 박으려는 조치로 보인다. 한편 여성사제 문제는 ‘사제독신제’ 논란과 맞물려 있기 때문에 교황청의 입장에서 예민하게 반응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이는 남성성직자를 중심으로 한 전통적인 교회의 위계질서에 심각하게 도전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여성사제 문제에 대해 ‘동등자 제자직’을 요구하는 여성신학자 엘리사벳 피오렌자나 󰡔예수는 그렇게 말하지 않았다󰡕(돋을새김, 2006)라는 책으로 한국에 알려진 평신도신학자 게리 윌스 같은 경우에는 신랄한 어조로 교황청의 여성사제 금지의 이유에 대해 공박해 왔다. 이들은 그동안 초기교회의 평등주의의 관점에서 성직자 중심주의와 사제직분에 대한 문제를 다루어 왔다.

이 글에서는 여성에 대한 사제직분 배제에 대한 게리 윌스의 비판적 견해를 중심으로 살펴보려고 한다. 그에 따르면, 1979년 교종 요한 바오로 2세가 미국을 방문했을 때 테레사 케인 수녀(미국여자수도회 장상연합회 회장, 자비 수녀회 총장)가 교종을 영접하면서 “인류의 절반이 교회의 온갖 직무에 참여할 수 있는 자격을 인정해 달라.”고 요청했다고 한다. 그러자 교종은 수녀들의 귀감은 동정녀 마리아가 되어야 마땅하며 마리아는 사제가 아니었노라고 대답했다는 것이다.

미국의 여성 사제들 ⓒwww.arcwp.org

수는 남자였고, 남자만 사도로 임명했다

여성사제에 대한 교황청의 반대 입장은 바오로 6세 교종이 영국성공회의 여성사제 임명을 반박하면서 제시했던 배제 사유에서 여지껏 크게 벗어나지 못한다. 교황청 신앙교리성에서 1976년에 발표한 「명백한 징표가운데서」라는 문헌에선 그리스도께서 원래 남자만 사도로 임명했기 때문에 교회는 여성을 서품할 권한이 없다고 밝혔다. 예수와 열두 사도는 남성들이었고, 따라서 모든 사제는 남성이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렇게 따지자면, 모든 사도는 결혼을 했으며 모두 다 유대인이었다는 점도 고려되어야 한다.

이처럼 복음서 시대의 상황을 우리 시대에 그대로 적용해야 한다면 정작 사도들 자신도 사제가 아니었음을 알아야 한다. 교종 요한 바오로 2세 역시 1994년에 발표한 교황 교서 「사제서품」에서 “교회는 여하간 여성들에게 사제서품을 줄 수 있는 권한이 전혀 없으며, 교회 신자들 모두는 이러한 판결을 명확하게 받아들여야 한다.”고 선언했다.

그러나 예수가 남성이었고, 사도들도 남성이었다는 근거는 아주 취약한 것이다. 오히려 수세기에 걸쳐 여성을 사제직에서 배제해야 하는 이유로 제시되어 온 것은 “여성은 열등한 존재여서 이 존엄한 직분을 담당할 자격이 없다.”는 것과 “여성은 예식 수행에 걸맞지 않는 ‘불결함’ 때문에 제단에 다가가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즉, 여성혐오사상에 뿌리를 두고 있는 것이다.

여성은 실패한 남성 그리고 불결한

토머스 아퀴나스는 오로지 남성만이 하느님의 모습으로 창조된 까닭에 신성한 사제직분은 남성들만 받을 수 있다고 했으며, 둔스 스코투스는 여성은 인류를 타락하게 만든 하와의 후계자이므로 인간의 구원을 담당하는 공직자가 될 수 없다고 했다. 이러한 생각들은 아리스토텔레스의 철학을 이어받은 것이다. 그는 수태의 형식요소가 남성씨앗인데, 자궁의 토양이 불결한 경우에 어머니를 닮은 남성을 낳거나 아버지를 닮은 여성을 낳거나 또는 어머니를 닮은 여성을 낳는다고 보았다. 즉, 여성은 수태될 당시에 이미 실패한 남성이거나 하나의 기형이라는 것이다. 그래서 여성은 남성보다 허약하게 태어나며 이성과 미덕과 기강 면에서 떨어지며 불안정하고 변덕스럽고 쉽사리 격정에 빠져 들고 자신과 타인을 통제하는 능력이 뒤진다고 말한다. 테르툴리아누스는 여자는 “악마가 들어오는 통로”라고 말했다.

그런데 더 일반적인 것은 여성의 불결함에 호소하는 것이다. 도미니크회 신학자였던 이브 콩가르가 이야기했듯이, 레위인이나 유대교 사제를 뜻하는 사제, 제사장(hiereus)이라는 말은 신약성서에 30번 나온다. 대사제, 대제사장(arhiereus)이라는 낱말은 130번 정도 나온다. 여기서 ‘대사제’라는 말은 그리스도나 신자 모두를 부를 때만 사용했다. 복음서에선 구체적인 개인을 사제로 부른 적이 없었다. 그러나 그리스도교가 유대교의 성전사제직을 모방하면서 이와 관련된 예식상의 규제와 금기들도 모방하였다. 예수께서 그리도 경계하던 정결법을 교회로 고스란히 되가져온 것이다.

자는 거룩한 제단에 접근할 수 없다

주교들은 희생제사를 드리는 유대인 사제들처럼 성찬식을 행하기 전에 아내와 잠자리를 같이하지 못했다. 이윽고 아예 아내를 두지 못하게 금지되었고, 이들이 행하는 성찬식은 일상과 아주 다른 비밀제의처럼 바뀌었다. 제단 칸막이는 평신도들의 시야를 가로막고, 성직자용 라틴어는 다른 신자들이 알아들을 수 없는 신비한 언어가 되었다. 축성을 해주는 엄지손가락과 집게손가락이 없는 자는 사제가 될 수 없었으며, 평신도는 혀를 빼고는 신체의 어느 부위로도 축성된 면병(성체)을 만질 수 없었다. 그리스도께서 동정녀에게서 태어났다는 ‘놀라운’ 믿음 때문에 수녀들이 손으로 면병을 만질 수 있는 특권을 얻게 된 것도 최근의 일이다. 유대교처럼 여성은 월경 때문에 예식상 불결한 존재이므로 9세기 바젤의 하이토 주교는 법령집에 이 내용을 포함시켰다.

"누구나 여자가 제단에 접근하지 않도록 유의해야 한다. 하느님께 봉헌된 여자[수녀]라도 어떤 종류의 제단 예식에도 개입해서는 안 된다. 만일 제대포를 세탁해야 할 경우 성직자가 그것을 걷어 내서 제단 난간 너머로 건네주어야 하며, 돌려받을 때도 같은 방법으로 해야 한다. 봉헌 예물 역시 마찬가지로 여자가 운반해 올 경우 사제가 제단 난간에서 받아서 제단으로 가져 갈 것이다."

여성은 중세 대성당에서 성소 뒤에 자리 잡고 있던 성가대석에 발을 들여놓을 수 없었고, 그래서 성가대는 모두 남성만으로 구성하는 게 원칙이었다. 그 결과 소프라노는 남자를 거세하는 방법으로 얻어냈다. 바티칸 성가대는 이 점에서 유명했는데, 남자는 불구라도 여자보다는 덜 불결하다는 논리다. 그러니 여성의 사제서품이란 생각할 수도 없었을 것이다.

불결한 여성들과 사귀는 예수

그러나 이러한 태도는 복음이나 초기교회의 전통과 동떨어진 것이다. 우리는 신약성경 안에서 한결 맑은 세계를 호흡하게 된다. 바오로 사도가 갈라디아 사람들에게 보낸 편지에 인용한 ‘세례찬가’에선 남성과 여성의 온갖 불평등을 배척하고 있다. “그리스도와 하나 되는 세례를 받은 여러분은 다 그리스도를 입었습니다. 그래서 유대인도 그리스인도 없고, 종도 자유인도 없으며, 남자도 여자도 없습니다. 여러분은 모두 그리스도 예수님 안에서 하나입니다”(갈라 4,26-28).

예수는 여성들과 사귀되, “천한 인생”들을 비롯하여 불결한 여성들, 매춘부들, 사마리아 여인처럼 따돌림 받는 여성들과도 교류를 가졌다. 이 점은 그분의 적들뿐 아니라 제자들에게도 충격을 주었다. 예수는 하혈하는 여자가 당신을 만지도록 허락했으며, 여자에게 머리털로 자신의 발을 닦도록 허락해 주고, 마리아와 깊은 이야기를 나누었다. 예수를 따르던 여자들은 갈릴래아에서 예루살렘에 이르기까지 줄곧 그분을 함께 따라 다녔다. 요한복음을 보면, 남자들이 한 사람만 빼고 모조리 도망쳤을 때도 여자들은 그분을 떠나지 않고 십자가 곁에 서 있었다. 세 복음서에서 빈 무덤을 맨 먼저 발견한 사람들은 마리아 막달레나 등 갈릴래아 여자들이었고, 주님이 부활하셨다는 기쁜 소식을 전하는 임무를 부여받은 이들도 그들이었다.

예수는 남자도 사제로 세운 적이 없다

여기서 우리는 그렇다면 왜 예수께서 여자를 사제로 세우지 않았느냐고 반문할 수 있다. 그러나 예수는 남자도 사제로 세운 적이 없었다. 우리는 초기교회가 수행했던 사목직분을 고스란히 알고 있는데 사도들, 복음의 일꾼들, 예언자들, 사목자들, 원로들, 전도자들, 교사들, 목자들, 안내자들, 권고자들, 기적을 행하는 자들, 치유하는 자들, 이상한 언어를 하고 알아듣는 자들, 영을 식별하는 자들이다. 이런 직분은 누구나 성령의 은사에 따라서 맡을 수 있었으며, 다른 직분은 없었다. 우리는 그리스도인 공동체 전체가 수행하는 사제직에 대해 성경에서 읽을 수 있지만, 개인적인 사제들에 관해서는 들은 바가 없다.

바오로 사도 역시 자신의 수고를 인정해 주는 분이 예루살렘의 열두 사도나 다른 누가 아니라 주님이시라고 말한다(갈라 1,1-20). 신약성경의 어느 사도도 사제를 서품한 적이 없으며, 바오로 역시 평신도 아나니아에게 세례를 받은 뒤에 오로지 하느님에게서 또는 자신을 일꾼으로 삼은 안티오키아 교회에서 권한을 위임받았을 뿐이다. 요한 바오로 2세 교종은 교서에서, 예수께서 성체성사를 설립하셨다는 최후의 만찬 때에 참석한 이도 남자들밖에 없었다고 하면서, 성찬례를 행할 사제는 당연히 남자여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아마도 사도들의 부인들이 그 자리에 함께 있었을 가능성이 높으며, ‘열 둘’이라는 것 자체가 12지파로 이뤄진 모든 이스라엘에 대한 은유일 따름이라고 학자들은 말한다.

미국 성공회의 여성 주교를 만나는 로완 윌리엄스 대주교.(출처:cache.daylife.com)

수 안에서 우리 모두는 하나

실제로 초기교회가 처음에 회당에서 집회할 때는 여자들이 발언할 수 없었겠지만, 유대교와 갈등을 빚어 회당을 떠나 ‘가정’에서 집회를 하게 되면서 자연스럽게 여자들이 예언도 하고 기도를 주도할 뿐 아니라 지역교회 창립의 주역이 되었다. 유니아와 브리스카 등 여성 지도자의 이름이 성경에서 연거푸 등장한다. 부부로 사도 직분을 행하던 이도 많았다. 미사의 원초적 형태였던 빵을 나누는 공동식사의 주례자가 ‘사제’라는 뜻이라면, 빵을 나눠주던 여성들도 사제 직분을 수행한 셈이다. 그런데 실상 정해진 사제는 없었다. 사제직은 회중 전체에 해당되는 일이었다.

예수께서 함께 했던 무리들과 초기 교회 안에서, 여성들은 칸막이 뒤에 격리되지도 수녀들처럼 자기들만의 공동체를 만들어 세상을 등지고 살지도 않았다. 그들은 팔레스타인에서 단정하지 못하게 방랑하던 동정녀도 아니었고, 틀림없이 사도들을 비롯한 대다수 제자들처럼 결혼을 했을 것이다. 그리고 성령강림절에 그들의 사내와 함께 이층 방에 있었을 것이다.

그럼에도 교회는 가부장적인 로마질서에 편입하는 과정에서 스스로 가지고 있던 해방된 자의식과 고유한 길을 벗어났으며, 여성혐오적이고 성차별적인 그리스와 유대교의 사상을 통해 공동체 주역에서 여성을 배제하며 여성에 대한 편견을 심어 왔다. 게리 윌스는 우리가 흑인을 열등하게 보면 그들에게 불의한 행동을 자행하는 걸 정당화하게 되고, 유대인을 그리스도의 살해자라고 믿으면 유대인에 대한 학살에 기여하게 된다고 말한다. 마찬가지로 여성에 대한 혐오는 여성에 대한 부당한 판단과 실천을 낳는 법이다. 예수께서 여성들에게 주신 ‘자유’를 교회가 도로 빼앗아 가두어서는 안 된다.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우리 모두는 진정 하나이기 때문이다.

출처/ <행동하는 사랑> 리북, 한상봉 지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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