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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을 첫 날, 세례를 받다

[김유철의 Heaven's door]

살아있는 질문들

9월 첫 날. 늘 이 날이 오면 “가을 첫 날”을 소리 내어 본다. 이쯤이면 어김없이 세례를 받던 날을 기억한다. 이마에 떨어지던 물방울이 하느님의 손길처럼 느껴지던 34년 전의 일이지만 마치 어제처럼, 아니 오늘처럼 생생하게 움직이는 장면들과 동시에 멈춘 장면들 속에 등장하는 인물들. 이미 지구별에서 사라진 사람들도 있고 아직 여기서 할 일이 남아 어딘가에서 서성이고 있을 그리운 사람들도 있다. 이것이 우리네 인생인가.

귓전에서 웅웅거리며 “하느님의 교회에서 무엇을 청합니까?”라고 묻던 음성이 생각났다. 그러고 나서 다시 “신앙이 여러분에게 무엇을 줍니까?”라는 질문이 연이어 나왔다. 세례성사의 문을 열면서 다가왔던 두 가지 질문은 꽤나 시간이 흘렀어도 늘 가슴 앞에 살아있는 진행형 질문들이다. 당시야 배운 대로, 정해진 대로 말을 했겠지만 해마다 가을이 오면 늘 귓가에 머무는 살아있는 질문들이다. 그리고 나는 무어라 답했을까.

 

사진출처=pixabay.com

하느님의 방법은 사람의 생각과는 다르다

교우 집안이 아니어서 예수와 만나는 기회는 좀처럼 오지 않았다. 흔히 말하듯이 ‘사돈의 팔촌’까지도 기독교인이 없었다. 어릴 적 기억으로는 집에서 백 미터쯤 떨어진 곳에 잘사는 집이 하나 있었고 그 집이 크리스마스가 오면 반짝이 전등이 마루에서 보이곤 했다. 나에겐 그냥 ‘특별한’ 집일뿐이었다. 중학생 시절 단체로 보러간 영화 <벤허>에서 금발을 장발로 기른 멋진 사나이가 어쩌면 처음 만난 예수였지만 별 감흥은 없었다. 그냥 ‘어떤 위인’으로 스쳐지나 갔다.

예수와 만나는 천재일우의 기회는 고등학교에서 벌어졌다. 난 이른바 ‘뺑뺑이’ 추첨으로 고등학교를 진학했던 1세대다. 은행알이 나를 인도한 곳은 뜻밖에는 부산에서 하나 뿐인 불교재단 고등학교였다. 그리고 일주일에 한 번씩 만나는 불교교리 시간은 인생의 모든 것을 깊게 생각하게 했다. 그리고 우여곡절 끝에 성당을 찾아 갔다. 이것을 어떻게 설명해야 할 일인지 참으로 모를 일이다. 늘 하느님의 방법은 사람의 생각과는 달랐다.

“나도 하느님의 자녀이고 싶습니다.”

그렇게 만난 하느님이었지만 교회문화가 낯설어서였는지 세례는 그로부터도 몇 년이 지난 청년이 되어서였다. 스무 살 무렵 만난 조국의 현실은 한마디로 암담함이었다. 1979년 말 장기집권의 독재자가 술자리에서 사라진 후 신흥 군부세력은 국민들을 대상으로 ‘작전’을 펼쳤다. 그들이 그것을 ‘광주사태’라고 불렀다. 요즘 알츠하이머를 앓고 있다는 사람은 구 전남도청 분수대 앞으로 보내면 헬기소리가 기억이 날지도 모를 일이다.

나라의 운명도, 20대 청년이었던 불덩이 같던 나의 운명마저 한치 앞도 헤아리기 어려웠던 그 시절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때 눈물 흘리며 가슴아파하던 사람들에게 두려움 없이 다가왔던 소수의 천주교 사제들은 걸어 다니던 교회였다. 어둠속의 한 줄기 빛과 같던 천주교 사제를 통해서 다시 다가온 하느님의 현존양식 앞에 숨을 죽였다. 그리고 고백했다. “나도 하느님의 자녀이고 싶습니다.”

 

사진출처=pixabay.com

여전히 가슴 벅찬 말, 세례

요즘도 세례식을 갈 때나 부활전야의 세례갱식예식 때는 늘 가슴이 설렌다. 그리고 앞에 말한 두 가지 질문 앞에 먹먹한 마음으로 십자가를 쳐다본다. 나 혹은 개인의 세례식도 그러하거늘 ‘하늘’ 그 자체이신 예수님의 세례는 그래서 더 감동적이다. 복음서가 전하는 그 분의 세례식 장면은 세례는 한 삶을 관통하는 핵심이자 하느님이 베풀어주시는 삶의 주제라는 생각이 절실하다. 과연 나는 하늘이 주던 그 날의 목소리를 지금도 간직하고 있는 것일까?

불교계 고등학교에서 만난 법사선생님이 들려주시던 “나를 찾으라”던 말씀, 청년의 끓는 피 앞에서 묵묵히 십자가의 길을 걸어가시던 소수의 사제들의 모습, 어렵게 예비자 모임에 찾아온 청년을 사랑으로 품어주시던 수도자의 손길 그리고 끝내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이마 위에 흐르던 세례성사의 물을 기억한다. 세례! 참 가슴 벅찬 말이다. 세례는 그 해 가을 첫 날 나를 찾아왔다.

구월에

새 살은 돋아날 것인가
하고 그이에게 묻는 구월 첫 아침
하늘이 한 뼘 물러섰다
굴참나무를 좋아한다고 말하던 입술과
우연히 마주친 고라니의 눈이 같은 느낌이 될 때
구월은 시나브로 얼굴을 내민다

철길에 귀를 내면 먼 바다 파도가 밀릴 듯하고
먼 산을 가까이 오라 손짓한들 숲의 메아리는 아득하다
‘너’라고 불리는 가을꽃을 올해도 어김없이 피게 하려
구월은 여름의 뒷주머니에서 슬며시 빠져나와
바람 머무는 언덕에 자리를 핀다

구절초 피는 바람 언덕을 바라보며
새 살이 돋았으면 좋겠다
사람의 얼굴에 더 환함이 찾아오도록
새 살이 돋았으면 좋겠다
환함에게 밝음으로 다가가도록
새 살이 돋았으면 정말 그랬으면 참 좋겠다

구월 첫날
가을 첫날이
새살의 첫날이기를

(<그대였나요>, 김유철, 리북, 2011)

김유철 스테파노
시인. 한국작가회의. 
<삶 예술 연구소> 대표
경남민주언론시민연합 대표


 

 

[ 가톨릭일꾼 www.catholicworker.k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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