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흐 "성경만으로 충분하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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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흐 "성경만으로 충분하지 않다"
  • 한상봉
  • 승인 2017.12.19 22: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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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빈센트 반 고흐, 내가 하느님을 보는 눈-2]
요람 앞에 무릎 꿇은 소녀

하느님의 탄생_요람 앞에 무릎 꿇은 소녀

고흐는 광산촌 보리나주에서 돌아와 잠시 아버지의 목사관에 머물렀지만 곧 헤이그에서 그림 작업실을 얻었다. 거기서 자신의 모델 가운데 ‘자기를 버린 남자의 아기를 임신한’ 병든 창녀와 그녀의 어린 딸을 작업실로 데려와 함께 살았다. 고흐는 그녀를 무료진료소에 데리고 가서 치료받게 했으며, 그녀는 건강한 아기를 출산했다. ‘크리스틴’ 또는 ‘시엔’이라고 부르는 클라시나 마리아 후르니크였다. 고흐는 초라한 병실에 놓인 요람 앞에서 깊은 감동을 받았다.

“그것은 사랑하는 여인 옆에 앉아 요람에 누운 아기를 바라보는 한 남자를 사로잡는 강렬하고 뜨거운 감동이었다. 그녀가 누워있고 내가 앉아 있는 곳이 비록 병원리라고 할지라도, 이 순간은 언제나 구유에 누운 아기와 함께하는 성탄절 밤의 영원한 시다. 오래전 네덜란드 화가들이 보았던 것처럼, 또 밀레와 브레통이 보았던 것처럼, 그것은 어둠 속의 빛이며, 어두운 하늘에 떠 있는 별이다.”

고흐는 작업실에 철제요람을 마련하고 벽에는 요람 옆에 두 여인이 있는 렘브란트의 판화를 걸어두었다. 작업실에 요람이 놓이면서, 고흐는 그 작업실이 “실제 삶에 뿌리를 내린 공간”이 되었다고 좋아했다. 이때 목탄과 연필로 그린 그림이 <요람 앞에 무릎 꿇은 소녀>(1883)이다. 아기는 평화롭게 잠들어 있고 한 손으로는 담요를 자기 가슴까지 끌어올려 붙잡고 있다. 이 아기의 평범한 일상에서 고흐는 장엄한 하느님을 느낀다.

“장엄하고 무한하며 하느님을 느낄 수 있는 무언가를 원한다면 멀리서 찾을 필요가 없다. 내가 생각하기에는, 아침에 잠에서 깬 어린 아기의 눈망울과 요람 위에 비친 햇살을 보고 옹알거리거나 소리 내어 웃는 아기에서 바다보다 더 깊고 무한하며 더 영원한 것을 볼 수 있다. 만일 ‘높은 곳에서 내려오는 빛줄기’가 있다면, 아기에게서 그것을 발견할 수 있을 게다.”

그러나 가족의 명예를 염려했던 아버지 반 고흐 목사와 부유했던 숙부는 고흐가 아이 딸린 창녀와 결혼하는데 동의할 수 없었다. 테오에게도 형에게 경제적 도움을 주지 말라고 압력을 넣었다. 한편 크리스틴이 매춘으로 벌어온 돈으로 생계를 유지하던 그녀의 어머니와 남동생은 그녀에게 다시 거리로 돌아가라고 다그쳤다.

 

시엔을 모델로 그린 작품. 슬픔

결국 고흐는 그녀를 떠나 불모지인 드렌테 지역으로 갔다. 돈도 물감도 없던 고흐는 시골길을 걷다가 “황야에서 팔에, 또는 가슴에 아기를 품고 있는 가난한 여인을 만날 때면 내 눈이 젖어든다 ... 그 모습은 내 심장을 꿰뚫고 지나간다.”고 말했다. 그리고 크리스틴에 대한 가족들의 반응에 깊은 상처를 받았다.

“당대에 겉으로 고상한 체하며 존경받는다 하는 사람들에게 예수께서 ‘창녀들이 너희보다 먼저 하느님의 나라에 들어간다’라고 말씀하신 뜻을 진심으로 이해할 수 있을 것 같다. ... 이별은 우리 둘에게 이루 말할 수 없는 슬픔이었던 것 같다.”

어느 농가에 방을 얻은 고흐는 하루 종일 걸어다니며 스케치를 하고 돌아온 뒤에 방의 쓸쓸함이 무겁게 짓누르면, 아래층으로 내려가 부엌에서 집주인 가족들과 어울렸다.

고흐는 스스로를 대중 위에 있는 고위성직자로 여기는 많은 예술가들과 한 무리가 되기보다는, 사랑하고 결혼하고 아기를 키우는 것이 그림 그리는 일보다 앞서는 것이라고 거듭 강조했다. 그는 죽는 날까지 자신의 그림은 가장 위대한 예술작품인 자녀들을 돌보면서 가정생활을 하는 노동자와 농부의 소명보다 못한 것이라고 고백했다. 하느님은 아기들처럼 가장 낮은 곳에서 태어나시며, 우리의 사랑의 돌봄을 필요로 하시기 때문이다.

 

성경책과 졸라의 소설이 있는 정물화

성경만으로 충분할까?_성경책과 졸라의 소설이 있는 정물화

드렌테 지역에서 떠돌던 고흐는 1883년 12월 이후 2년 동안 다시 누에넨에 있는 부모의 목사관에 머물었다. 거기서 그는 농부들과 직조공들이 일하는 모습, 항아리와 나막신과 감자들을 스케치했다. 그러던 중 1885년 3월 27일, 예순세 살이던 아버지가 뇌졸중으로 세상을 떠났다.

그해 8월 고흐가 그린 작품이 <성경책과 졸라의 소설이 있는 정물화>(1885)이다. 성경책과 꺼진 초 한 자루, 그리고 종이로 된 소설책 한 권을 화폭에 담아 아버지의 죽음을 기렸다. 불 꺼진 초는 삶은 영원할 수 없다는 엄격한 현실을 상기시킨다. 성경책은 이사야 예언서 53장 “주님의 종의 노래”가 펼쳐져 있다. 에밀 졸라의 소설책은 그해 출간된 <삶의 기쁨 La joie de vivre, 1885>이다.

성경책과 현대소설을 대조시킨 것은 아버지와 고흐의 갈등을 잘 보여준다. 테오에게 보낸 편지를 보면, 고흐는 아버지와 한 지붕 아래 살면서 “아버지와 어머니는 난폭한 개 한 마리 들여놓은 것처럼 무서워 하신다.”고 썼다. 이어 “나는 내 인생에서 의식적으로 개의 길을 기꺼이 선택한다고 말해두마. 나는 개로 남을 테다. 가난하게, 화가로.”

여기엔 이유가 있다. 아버지는 성경에 모든 진리가 다 담겨 있다고 생각했으나, 고흐는 성경을 새롭게 읽어야 하고, 당대 작가들의 작품에서도 진리를 발견할 수 있다고 믿었다. 특히 <레미제라블>을 쓴 빅톨 위고나 드레퓌스 사건에 개입한 에밀 졸라. 고흐는 미슐레와 발자크와 엘리엇의 작품을 읽듯이 성경을 읽는다고 고백했다.

고흐는 아버지의 생각을 ‘성경에 갇힌 생각’이며 억압적이라고 보았다. 고흐는 졸라의 소설도 예언자들이 말한 것과 같은 진리를 담고 있다고 생각했다. 이사야 53장은 이해받지 못하고 일그러진 하느님의 종의 모습을 그리고 있다.

“사람들에게 멸시받고 배척당한 그는
고통의 사람, 병고에 익숙한 이였다.
남들이 그를 보고 얼굴을 가릴 만큼 그는 멸시만 받았으며
우리도 그를 대수롭지 않게 여겼다.
그렇지만 그는 우리의 병고를 메고 갔으며
우리의 고통을 짊어졌다.
그런데 우리는 그를 벌 받은 자,
하느님께 매 맞은 자, 천대받은 자로 여겼다.”
(이사야 53,3-4)

졸라의 소설 <삶의 기쁨>은 ‘주님의 종의 노래’를 현대식으로 전달하고 있다. 관절염 때문에 고통받는 샹토 씨, 탐욕스러운 아내, 허약한 아들 라자르. 이 중산층 가정에서 자란 고아 폴린 케뉘는 이 가족에게 모든 유산을 빼앗기고 이용만 당하지만, 성질 못된 라자르의 아내와 아기를 구하고, 결국 그 아기를 거두어 기른다. 폴린은 이 어촌마을에서 사랑의 천사처럼 살았다. 그래서 졸라는 폴린을 이렇게 묘사한다. “극기와 타인에 대한 사랑, 죄로 물든 인간에 대한 친절한 사랑이 육화된 ... 그녀는 모든 것을 빼앗겼지만 그녀의 해맑은 웃음에는 행복이 울려퍼졌다.”

고흐는 기꺼이 고통을 감내하는 사람은 다른 이들을 치유할 힘이 있다고 믿었다. 그리고 현대의 작가들은 “복음을 우리 시대에, 우리의 이 삶에, 너와 내가 어떻게 작용할 수 있는지를 보여준다.”고 말했다. 고흐는 여동생 빌헬미나에게 보낸 편지에서 자기 생각을 들려준다.

“성경만으로 우리에게 충분할까?
내 생각에는 요즘 같은 시대에는 예수님도 우울에 잠겨 앉아 있는 사람들에게 말씀하실 것 같다. 여기가 아니다. 일어나 나아가거라. ‘어찌하여 살아 있는 이를 죽은 이들 가운데서 찾고 있느냐?’
말과 글이 여전히 세상의 빛이 되려면, 우리가 살아가는 시대는 그 시대에 맞는 그러한 말과 글을 필요로 한다는 것을 인정해야 한다. 그래야만 우리는 사회 전체를 혁명처럼 변화시킬 수 있는 위대하고 선하며 근본적이고 강력한 것을 찾기 위해서, 뚜렷한 의식을 갖고 우리 사회를 예전 그리스도인들의 혁명과 비교해 볼 수 있을 것이다.”

고흐는 거룩함을 드러내기 위해 굳이 성경 이야기를 그릴 필요가 없다고 생각했다. 거룩함은 오히려 일상에서 발견되어야 한다. 고흐가 그린 요람, 그가 친구를 만난 카페, 그의 침실과 의자, 우편배달부의 아내와 밀밭은 모두 일상에서 만나는 거룩함을 보여준다. 거기서 고난 받는 종과 삶의 기쁨이 만나기 때문이다.

 

[참고] <하느님의 구두 (The Shoes of Gogh)>, 클리프 에드워즈, 솔, 2007

한상봉 이시도로
<도로시데이 영성센터> 코디네이터
<가톨릭일꾼> 편집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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