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헨리 나웬] 그럼에도 불구하고 너를 사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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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헨리 나웬] 그럼에도 불구하고 너를 사랑한다
  • 헨리 나웬
  • 승인 2017.04.04 11: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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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스도인의 길-22

나의 신앙의 핵심에는 우리가 하느님의 사랑받는 아들딸이라는 확신이 자리잡고 있습니다. 그리고 우리가 해야 할 거대한 영적 과제들 중의 하나는 이 확신을 선포하고 이 지식에 근거한 삶을 살아가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 과제는 쉽지 않습니다. 실상, 우리들 대부분은 진짜 우리가 어떤 존재인가라는 진리를 주장하는데 늘상 실패합니다.

당신과 나에게 던지는 질문은 이렇습니다. “우리들은 도대체 누구인가?” 왜냐하면 우리를 계속 살아가게 하는 질문이기 때문입니다. 살아가는 동안 내내 우리는 “나는 누구인가?”라는 질문에 대답하려고 애씁니다.

Helena Cherkasova (b1962, Moscow, Russia)

갈증나는 질문, "정말 나는 누구인가?"

우리에게 자주 떠오르는 첫 번째 대답은 이렇습니다, “나는 무엇을 하는 나이다.” 그리고 이 대답은 매우 실제적입니다. 내가 좋은 일을 하고 삶에서 조금 성공할 때에 나는 나 자신에 대해 좋게 느낍니다. 그러나 실패할 때에 나는 처지고 절망하기 시작합니다. 그리고 나이가 많아지면, 일을 많이 할 수 없게 되고 나는 이렇게 말합니다, “자 내가 살면서 무엇을 했는지 보자... 보자, 보자, 보자, 난 그래도 무언가 좋은 일을 했지.”

혹은 우리는 이렇게 말할 수도 있습니다, “나는 다른 사람들이 나에 대해 말하는 나이다.” 다른 사람들이 나에 대해 말하는 것은 매우 강력합니다. 실제로, 다른 사람들이 나에 대해 말하는 것은 때때로 가장 중요하게 여겨집니다. 사람들이 당신에 대해 잘 말할 때, 당신은 꽤 자유롭게 움직일 수 있습니다. 그러나 다른 사람이 당신에 대해 부정적으로 말하기 시작할 때 당신은 슬프게 느껴지기 시작합니다.

수천 명의 사람들에게 말하던 때를 기억합니다, 그들은 이렇게 말합니다, “당신이 말한 것은 훌륭합니다.” 그러나 한 사람이 일어나 말합니다. “여보세요, 나는 당신의 말이 너무나 황당하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면 내가 기억하는 것은 그 사람뿐입니다. 때때로 어떤 사람이 당신을 반대해서 말하면 그 말이 당신의 마음을 깊게 찌릅니다. 그리고 아침에 어떤 사람의 말이 당신에게 상처를 입히면... 그 말이 하루 종일 머물러 당신의 기분을 망칠 수 있습니다.

그리고 당신은 이렇게 말할 수 있습니다, “나는 내가 가진 것으로서 나이다.” 예를 들어 나는 네덜란드 사람이고 친절한 부모 좋은 교육과 건강을 가진 사람입니다. 그러나 이중에 어떤 것을 잃자마자... 만일 가족 중 한 사람이 죽거나, 내 건강이 나빠지고 혹은 가지고 있는 재산을 잃거나 하면, 나는 내적 어둠 속으로 미끄러져 떨어질 수 있습니다...

내 인생은 왜 갈짓자로 걷는가?...나는 사랑받는 존재인데...

매우 자주, 당신과 나의 에너지는 “나는 내가 무엇을 하는 것으로 나이다,” “나는 다른 사람들이 나에 대해 말하는 것으로 나이다,” “나는 내가 가진 것으로 나이다”라고 말하는 것에 많이 쓰여집니다. 그리고 당신도 알다시피, 이러 식으로 생각할 때에 우리의 삶은 재빨리 굴곡이 심한 모습으로 변해갑니다.

왜냐하면 다른 사람들이 나에 대해 잘 말해주고 내가 좋은 일을 하고 무엇인가 가지고 있을 때 나는 기분이 올라가고 흥분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내가 잃기 시작할 때, 갑자기 내가 더 이상 아무것도 할 수 없다는 것을 알아차릴 때, 갑자기 사람들이 나에 대해 나쁘게 말하는 것을 발견할 때, 친구를 잃었다는 것을 발견할 때, 나는 절망 속으로 미끄러지고 매우 처지게 될지도 모릅니다. 그리고 당신도 모르는 사이에, 당신과 나는 갈짓자로 비틀거리게 됩니다.

그러므로 대부분의 일과 우리의 정신에너지는 한계선 위에 있을려고 애쓰는 데에 쓰여지고 그런 인간 노력을 우리는 생존이라고 부릅니다. 우리는 우리의 명성에, 좋은 일에, 재산에 매달리고 싶어하지만 마지막에 가서 “우린 결국 죽을꺼야” 라고 말하게 될 우리자신을 알고 있습니다.

그리고 당신도 아는 것처럼, 모든 굴곡과 함께 이런 식으로 살게 될 때에 그 끝은 죽음입니다. 그리고 당신이 죽을 때, 당신은 죽은 존재가 됩니다. 아무도 더 이상 당신에 대해 말하지 않으며, 더 이상 아무것도 가지고 있지 않으며, 더 이상 아무것도 할 수 없습니다. 당신은 모든 것을 잃습니다. 그리고 당신과 나의 작은 삶은 아무것도 아닌 것이 되어버립니다. 그런데 오늘 내가 여러분에게 말하고 싶은 것은 이 모든 것이 잘못되었다는 사실입니다. 당신과 나는 무엇을 하거나 가진 것으로 혹은 남들이 나에 대해 말 한 것에 의해서 존재가 결정되는 것이 아닙니다.

그런 것은 예수가 사막으로 갔을 때 악마가 그분에게 말했던 것입니다. 악마는 말했습니다, “돌을 빵으로 변화시켜라, 그리고 당신이 무엇인가 할 수 있다는 것을 보여라.” “성전에서 뛰어내려라 그리고 사람들이 당신을 붙잡고 당신에 대해 좋게 말하도록 하라.” “내 앞에 무릎을 꿇으면 세상을 다 주겠다.” 그러면 당신은 사랑받을 것이다. 당신이 무엇인가 하기 때문에, 사람들은 당신에 대해 좋게 말한다... 그러면 모든 사람이 당신을 사랑할 것이다. 그러나 예수는 말합니다, “그건 거짓말이다. 그런 말은 당신과 나를 폭력과 파괴의 관계 속으로 들어가게 만드는 가장 큰 거짓말이다.”

왜냐하면 나는 내가 누구인지 알고 있기 때문입니다. 나는 내가 어떤 존재인지 압니다. 성령이 나를 유혹받게 하기 전에 나에게 와서 말했기 때문입니다, “너는 사랑받는 아이이다. 너는 나의 사랑하는 아들이다. 너에게 나의 사랑이 머물고 있다.” 이것이 바로 당신의 참 모습입니다. 이것이 나의 참 모습입니다. 그리고 예수는 그 소리를 들었습니다. “너는 나의 사랑하는 아들이다. 내 마음에 드는 아들이다.”

그리고 예수는 살아가는 내내 이 소리에 매달렸습니다. 그리고 사람들은 그를 칭찬했고, 거부했으며 호산나라고 외치고 십자가에 못박았습니다. 그러나 예수는 진리에 충실했습니다. “무슨 일이 일어나든지, 나는 하느님의 사랑받는 아들이고 이 사실로써 나는 나이다.” 그리고 이 사실이 계속 나를 거부하거나 칭찬하고 웃거나 침 뱉는 세상 속에서 나를 살아가도록 해줍니다. 나는 사랑받는 존재입니다. 사람들이 나를 위대하다고 말해서가 아니라, 태어나기 전부터 나는 사랑받는 존재이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Helena Cherkasova (b1962, Moscow, Russia)

"나는 너를 영원한 사랑으로 사랑해왔다"

사랑하는 여러분, 내가 여러분에게 들으라고 요청하는 것은 예수에 대하여 말해진 사실이 바로 여러분에 대해서도 말해진 사실이라는 점입니다. 여러분은 여러분이 하느님의 사랑받는 자녀라는 사실에 귀를 기울여야 합니다. 그리고 듣는 것은 단지 머리로만 듣는 것이 아니라 존재 깊숙한 곳으로부터 듣는 것이고 여러분의 온 삶이 변화되기 위하여 들어야 하는 것입니다.

성서는 이렇게 말합니다. “나는 너를 영원한 사랑으로 사랑해왔다. 나는 너의 이름을 영원으로부터 내 손바닥에 새겨 놓았다. 나는 지구의 심연 속에서 너를 빚었고 너의 어머니의 움속에 짜 넣었다. 나는 너를 사랑한다. 나는 너를 포옹한다. 너는 내 것이고 나는 너의 것이며 너는 나에게 속한다.” 여러분은 이 사실에 귀를 기울여야 합니다. 당신에게 영원으로부터 영원으로 이렇게 말하는 이 소리를 들을 수 있다면 당신의 삶은 점점 더 사랑받는 사람의 삶이 될 것이기 때문입니다. 사랑받는 사람, 이것이 바로 나와 당신, 우리들의 모습입니다.

그러면 당신은 이 생에서 당신이 하는 모든 것은 당신이 사랑받는 존재라는 지식에서 키워진다는 사실을 발견하게 됩니다. 그 지식에서 당신의 참 존재됨이 밝혀집니다. 그리고 이 사실을 믿기 시작하면 이 영적인 지식은 점점 더 커지게 될 것이고 당신의 일상생활을 변화시킬 것입니다. 그렇지만 여전히 당신은 거부를 받게 될 것이고 칭송과 상실을 체험할 것입니다. 그러나 당신은 여전히 정체성을 찾아 헤매는 불안한 인간으로서 그러한 거부들을 대하지 않을 것입니다. 오직 사랑받는 존재로서 그러한 상황을 살게 될 것입니다. 당신은 자신이 누구인지 아는 사람으로서 고통과 불안과 성공과 실패를 살게 될 것입니다.

그리고 나는 이 시점에서 당신에게 작은 다짐을 하고자 합니다. 당신을 사랑받는 존재라고 부르는 소리는 첫째 사랑의 소리입니다. 요한은 이렇게 쓰고 있습니다, “하느님이 먼저 여러분을 사랑하셨으므로 서로 사랑하시오”(요한 15,12). 그리고 위대한 투쟁은 그 첫째 사랑을 믿고 선언하는 것입니다.

당신은 당신의 부모와 형제자매들 그리고 당신의 선생들이 당신을 사랑하기 전에 사랑 받았습니다... 우리를 사랑하는 사람들은 항상 우리를 잘 사랑하지는 않습니다... 우리를 돌보는 사람들이 우리에게 상처를 주기도 합니다. 그리고 당신은 경험에 의해 아버지, 어머니, 아이들, 형제들, 선생들, 교회 등 당신에게 더 가까운 사람들이 또한 당신을 가장 힘들게 하는 사람들임을 알고 있을 것입니다. 그리고 그 사실을 어떻게 받아들일 것입니까? 이 세상에서 사랑과 상처는 절대로 분리되지 않는다는 노골적인 진실을 어떻게 살아갈 것입니까? 우리는 항상 하느님의 첫째 사랑을 다시 받아들이고 확신할 때에만 그 진실을 살아갈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우리를 별로 사랑하지 않는 사람들을 용서할 수 있고 우리가 받는 사랑 속에서 하느님의 첫째사랑이 실재라는 조짐이나 일별을 얻을 수 있습니다. 여러분은 그 사실을 고수할 수 있습니까? 회한을 느끼고 시기심을 느끼려는 유혹에 시달릴 때, 거부감을 느끼고 공격하고 싶을 때, 당신은 다시 돌아가 다음과 같이 말할 수 있습니까? “아니다, 나는 하느님의 사랑받는 딸이다.”

그리고 비록 내가 거부를 당하더라도, 그 거부는 나에게 그 진실을 다시 기억하는 길이 되어야 합니다. 나의 사랑받음이라는 진실을 더 온전히 더 깊게 주장할 수 있도록 나를 도와주는 가지치는 작업이 되어야 합니다. 그리고 내가 그 진실을 고수할 수 있고 세상 속에서 살아갈 수 있다면 다른 사람들이 내가 원하는 것을 다 채워주어야 한다고 기대하지 않으면서 그들을 사랑할 만큼 자유로울 수 있습니다.

왜냐하면 당신과 나는 오로지 하느님의 사랑만이 만족시킬 수 있는 그런 마음을 가지도록 하느님이 창조하셨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모든 다른 사랑은 부분적인 것이며 실제이지만 제한적이고 따라서 고통스러운 것이 될 것입니다. 그리고 만일 우리가 고통이 우리를 정화시키도록 기꺼이 허용한다면, 우리의 사랑받음에 대한 더 깊은 자각을 주도록 허락한다면 우리는 예수처럼 자유로울 수 있고 이 세상에서 걸어가며 하느님의 첫째 사랑을 어딜 가든 선포할 수 있습니다.

헨리 나웬의 강론, 「사랑받는 존재가 되기」에서
1992년 8월 23일


*이 글은 1998년 미국 메리놀 출판사 올비스에서 출판된 <Henri Nouwen>(Robert A. Jonas 구성)을 부분적으로 옮긴 것입니다. [번역문 출처] 참사람되어, 2004년 8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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