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경공부] "예수의 작별인사는 사랑의 말들로 가득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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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공부] "예수의 작별인사는 사랑의 말들로 가득하다"
  • 리차드 로어 & 죠셉 마르토스
  • 승인 2017.03.16 15:54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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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한복음의 마지막 만찬에 대한 이야기는 다른 세 복음서에 나오는 만찬 이야기와는 아주 다르다. 첫째로 그 길이가 아주 길다. 요한 복음서 전체의 5분의1에 해당하는 네 개의 장(章)을 차지한다. 공관 복음서들은 마지막 만찬을 장(章) 하나의 일부로 했다. 둘째로, 요한은 성찬례의 제정을 언급하지 않는데, 공관복음에서는 성찬례의 설립이 예수님이 가장 가까운 제자 열둘과 함께한 예수님의 마지막 만찬의 중요한 핵심이다.

많은 학자들이 제 4복음서에서 성찬례에 관한 것이 생략된 것에 대해 여러가지 설명을 내놓고 있다. 그 하나는 이 복음서가 제일 마지막에 쓰여졌으므로 요한은 다른 세 복음서에서 이미 분명하게 가르친 것을 다시 말할 필요를 느끼지 못했다는 것이다.

또다른 설명은, 제6장에서 빵과 생명에 대한 이야기를 할 때 성찬례에 대한 그의 신학적 견해를 내놓았기 때문에 여기서 다시 그것을 반복할 필요를 못 느꼈다는 것이다. 그러나 우리가 요한 복음서에 나오는 마지막 만찬에 관한 이야기를 읽고 예수님의 말씀을 잘 생각해 보면 비록 성체 그 자체에 대한 언급은 없지만 그 전체적인 장면이 성찬례의 의미를 오래 심사숙고한 듯한 느낌을 준다는 것을 알수 있다.

tkwlscnfcj=um-jovem-catolico.tumblr.com

성찬례의 한 가지 의미는 ‘감사’이다. 그리스어 ‘eucharistia'는 원래 “고마움”, “감사하기”이다. 이 이야기 내내 우리는 예수님께서 아버지께 감사를 드리고 하느님께서 당신에게 주신 영광을 되돌려 드리고 있음을 듣는다. 예를 들면 담화는 다음과 같이 시작된다:

"이제 사람의 아들이 영광을 받게 되었고, 또 사람의 아들로 말미암아 하느님께서도 몸소 사람의 아들에게 영광을 주실 것이다. 이제 곧 주실 것이다."(요한 13,31b-32)

여기에서 하느님 아들의 영광이 곧 아버지께도 영광을 드리는 것이라는 요한의 가르침에 주목하라.

성찬례의 또다른 의미는 희생이다 - 이웃에게 자신을 주고, 봉사하는 의미에서의 희생이다. 우리는 마지막 만찬의 맨처음 장면에서 그 주제가 서로서로 섬기는 것임을 보았다. 이 이야기에서 요한은 예수님의 희생에 관해서 묵상을 하며, 또 하느님 아버지께 -이제 그분께 돌아가려고 하는- 당신을 내어 드리는 것의 의미에 대해 종종 묵상을 한다. 예수께서는 그분이 자기들을 떠나실 것이라는 생각으로 슬픔에 잠긴 제자들에게 여러차례 말씀하신다, “슬퍼하지 마라. 나는 내 아버지께 간다”(요한 14,1-3, 13, 27-28).

성찬례의 셋째 의미는 일치이다. 예수님께서는 종종 당신과 하느님과의 일치에 대해 말씀하신다. 그분은 제자들에게 포도나무와 가지의 형상으로 제자들과 하나됨을 상기시키신다(요한 15,1-8).

결국, 성찬례의 전체적인 의미는 사랑이다. 예수님의 작별인사는 사랑의 말들로 가득하다. 그분은 아버지와 당신, 제자들에 대한 그분의 사랑, 그리고 제자들간의 서로 서로에 대한 사랑을 감동적으로 말씀하신다. 이 말씀의 가장 아름다운 구절 중의 하나는 이 세 가지 차원의 사랑이 어떻게 서로 잘 조화를 이룰 수 있는지 보여준다:

"아버지께서 나를 사랑하신 것처럼
나도 너희를 사랑해 왔다.
그러니 너희는 언제나 내 사랑 안에
머물러 있어라.
내가 내 아버지의 계명을 지켜
그 사랑 안에 머물러 있듯이
너희도 내 계명을 지키면
내 사랑 안에 머물러 있게 될 것이다.
내가 이 말을 한 것은 내 기쁨을 같이 나누어
너희 마음에 기쁨이 넘치게 하려는 것이다.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처럼 너희도 서로 사랑하여라.
이것이 나의 계명이다.
벗을 위하여 제 목숨을 바치는 것보다
더 큰사랑은 없다."
(요한 15,9-13)

제18장, 19장에 이어서 나오는 내용은 잘 알려져 있다. 예수님께서는 친구를 위해서 자기 생명을 버리시고 아버지를 위해서 자기 생명을 바치신다. 동시에 모든 사람을 위해서 자기 생명을 버리심으로써 모든 사람이 그분 안에서 생명을 갖게 된다.

이렇게 자신을 내어주는 궁극적인 행위 안에서 예수님께서는 모든 사람이 그분의 친구라는 본원적인 신호를 주신다. 그분은 우리 모두를 포용하고 우리 모두를 하나하나 돌보아 주시려고 십자가상에서 팔을 뻗으신다. 예수님께서는 마지막 만찬에서 기도 하셨다:

"나는 이 사람들만을 위하여 간구하는 것이 아니라
이 사람들의 말을 듣고
나를 믿는 사람들을 위하여 간구 합니다.
아버지 이 사람들이 모두 하나가 되게 해주십시오.
아버지께서 내 안에 계시고
내가 아버지 안에 있는 것과 같이
이 사람들도 우리 안에 있게 해주십시오.
그러면 아버지께서 나를 보내셨다는 것을
세상이 믿게 될 것입니다."
(요한 17,20-21)


<성서의 위대한 주제들-신약>, 리차드 로어 & 죠셉 마르토스(참사람되어 2000년 7월호 번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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