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사제의 넋두리 "목숨 걸고 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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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사제의 넋두리 "목숨 걸고 살겠습니다"
  • 참사람되어
  • 승인 2017.02.20 14: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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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사람되어-9

저는 지금 굉장히 화가 나 있습니다. 껍데기들이 너무 많기 때문입니다. 무슨 껍데기냐구요? 세상의 가치대로만 생각하고 일하고 살아가는 껍데기들 말입니다. 저는 가톨릭교회의 사제입니다. 그런데 제가 살고 있는 교회도 본질보다는 껍데기가 더 많습니다. 복음적 가치가 진짜로 교회 안에서 중심이 될까요? 아닙니다. 분명히 현실은 세상의 가치가 교회의 중심에 자리잡고 있습니다. 조직력, 능률, 선으로 위장된 이기심과 공명심, 공동체보다는 제도가 훨씬 더 힘이 셉니다.

저는 외곬수입니다. 아니 더욱 더 외곬수가 되려고 노력합니다. 제 안에 있는 끈질긴 거짓들을 부수어버리고 예수의 진실이 살아 움직이도록 외곬수가 되고 싶습니다. 제 안의 자기중심성을 버리고 타인과 세상을 위해 살아가기 위해서 외곬수의 길을 선택하고 싶습니다. 세상의 힘이 너무 강합니다. 사람이 사람같지 않고 거대한 기계 속의 부품이 되어가고 있습니다.

그러나 저는 사람으로서 살고 싶습니다. 인간이 만든 제도나 원칙보다는 하느님의 영이 이끄시는대로 살고 싶습니다. 그래서 복음의 가치가 살아있는 공동체에 투신하고 싶습니다. 본질적인 삶을 포기하고싶지 않습니다. 이제 제가 왜 이렇게 되었는지 삶의 고백이 나와야 되겠지요?

"결혼도 하고 싶고 어떻게 하나?
에이 모르겠다, 그냥 예수님한테 맡기고 살자"

5학년 때였어요. 우연히 밤에 부모님이 싸우는 소리를 잠에서 깨어 들은 적이 있습니다. 내용은 돈 때문이었습니다. 돈이 부부 사이를 원수가 되게 만들었습니다.

그후 집이 날아가고 저희 가족은 시골로 이사를 갔습니다. 부잣집이 가난뱅이가 되어버린 거지요. 방 2칸에 9식구가 함께 살았습니다. 하꼬방이라고 하나요. 아마 집앞엔 500년 묵은 상수리나무가 있었고, 집 바로 옆엔 울창한 산과 계곡이 있는 곳이었습니다. 논이 있고, 밭이 있고, 아무데서나 오줌 눌 수 있고, 여름이면 계곡에서 멱감고, 겨울엔 토끼사냥, 총싸움 그리고 계곡을 타고 내리는 썰매, 지금 생각해도 너무 좋았습니다.

특히 겨울에 산사에서 몇달을 보내면서 자연의 고요함과 밤하늘의 별들 그리고 불상 등이 모두 제 마음을 설레이게 했습니다. 가난해졌지만 저는 비로소 가족의 소중함과 인간이 왜 사는지를 몸으로 느끼게 되었습니다. 아마 이때 제 인격에 고요함과 자유로움이 스며들게 되었나 봅니다.

아무튼 저는 신학교에 가게 되었습니다. 사제가 되기로 마음먹었을 때 가장 버리기 힘든 것은 ‘여자’였습니다. 지금도 가장 힘든 게 여인의 사랑에 대한 갈망입니다. 그때 저는 마음 속으로 이런 이끌림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예수님이 그냥 좋다. 그런데 결혼도 하고 싶고 어떻게 하나? 에이 모르겠다. 그냥 예수님한테 맡기고 살자!’

사진=한상봉

밑바닥 삶에선 늘 눈물이 따르게 마련이다

이렇게해서 신부가 되는 길에 들어섰습니다. 기질적으로 반복적이고 규칙적인 것을 싫어하는 저는 신학교 생활이 무척 싫었습니다. 그래서 저는 방학만 되면 현장체험을 자청했습니다. 몸바쳐사는 사람들과의 만남, 가난한 우리집, 가난한 사람들, 버려진 사람들과의 만남에서 저는 생명력을 느꼈습니다. 이런 주관적 체험이 복음과 일치한다는 사실 때문에 계속 예수님을 따르는 여정에 머물렀습니다.

피정 때였습니다. 과천의 영보수녀원에서 피정을 하던 중 우연히 꾀죄죄하고 무지무지 못생긴 할머니 수녀님을 만났습니다. 그런데 그때 그 수녀님께서 방금 낳은 달걀 하나를 주시면서 "학사님, 드세요"라고 말씀하는 것이었어요. 그때 그 수녀님의 몸짓과 표정이 얼마나 고귀하고 아름답게 보였는지 모릅니다. 그때 전 예수님을 느꼈습니다.

한번은 나환자 정착촌을 다녀왔는데 집에 와서 그분들을 기억하면서 얼마나 울었는지 모릅니다. 연민과 슬픔과 기쁨과 감사의 눈물이었어요. 가난한 그들의 공동체 속에 살아계신 하느님을 느꼈던 것이지요. 신학과 4년때 정신지체자들과 교리공부를 했었습니다. 그때 저는 마음으로 기도만 하고 아무 준비없이 그곳에 갔습니다. 그런데 그곳에 갈 때마다 저는 그 사람들로부터 오는 사랑과 관심에 너무나도 기뻤습니다. 그들은 너무나도 무시당하고 살았기에 작은 관심에도 너무도 기뻐하는 것이었어요.

그러다 군에 갔습니다. 저는 군대가 지금도 싫습니다. 인간성보다는 명령이 중요하니까 말이죠. 양심보다는 과업이 중요하니깐 말입니다. 고참들한테 맞고 힘든 일과 훈련을 받다보면 어차피 밑바닥 인생이 되기 마련입니다. 그럴때 주머니 속의 성서를 펴서 읽으면 어떤 주석서도 필요없어요. 그냥 그 말씀이 곧 나에게 하는 말씀으로 느껴지고 그러다보면 훌쩍훌쩍 눈물이 납니다.

그러던 어느날 그날도 지친 몸을 이끌고 점호를 받는데 사람들이 너무 귀하고 아름답고 사랑스럽게 느껴졌습니다. ‘그래, 사랑이 최고다. 나를 버리고 살자’ 이런 말이 제 마음속에서 울려나왔습니다. 아무튼 밑바닥 삶에선 늘 눈물이 따르게 마련인가 봅니다.

말년 병장 때였습니다. 무슨 사정으로 제가 쓰레기장 청소를 하게 되었습니다. 그 냄새나는 쓰레기 더미를 치우며 얼마나 해방감을 느꼈는지 모릅니다. ‘그래, 밑바닥이야 밑바닥’ 하고 실컷 웃었습니다. 군생활에서 저에게 키워진 것은 ”도전“하는 삶이었습니다. 거짓에는 철저히 ‘아니오’ 라고 하는 것 말입니다. 군 제대 후 혁명가가 되고 싶었습니다. 그래서 잘못된 구조와 제도를 온몸으로 들이받고 싶었습니다.

"너 운동권이지? 넌 신학생이 아니야"
울부짖을 곳은 ”하느님“ 밖엔 없었다

그래서 복학할 때 신학교에 도전장을 냈습니다. 결과는 ”너 운동권이지? 넌 신학생이 아니야.“ 였습니다. 그때 얼마나 방황했는지 모릅니다. 신학교를 나오고 싶었습니다. ‘잘됐다 장가나 가자.’ 그런데 예수님앞에 서 있자니 생각이 변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래, 끝까지 하느님을 믿고 나를 주는 삶을 살자. 신부가 되고 안되고가 중요한 게 아니다. 내 스스로는 나가지 말자.“ 이렇게 마음먹고 다시 신학교에 들어갔습니다.

그런데 내 앞에 ‘변고’가 기다리고 있을 줄은 생각도 못했는데 저는 온몸이 아팠습니다. 얼굴엔 온통 열꽃이 피어올라 저 자신도 거울을 차마 못보았습니다. 너무 비참했습니다. 너무 무력했습니다. 그리고 외로웠습니다. 하느님이 날 버리시는 것일까? 내가 큰 죄를 지어서 그런가? 그래서 처절하게 기도했습니다. 그때 저는 그래 맡기자 그래도 비우자 그것 뿐이었습니다.

그러다가 부제가 되었고 신부가 되기 전에 현장체험을 하고 싶었습니다. 그런데 결과는 철저하게 자신이 아무것도 아니라는 비참한 깨어짐 뿐이었습니다. 사랑하지 못하는 나, 이기적인 나, 공동체가 뭔지도 모르는 나에 대한 자각이었고 낭떠러지로 떨어지는 체험도 했습니다. 늘 언제나 그랬듯이 위기와 실패가 있을 때 울부짖을 곳은 ”하느님“ 밖엔 없었습니다.

신부가 되어 본당의 보좌로 왔습니다. 제가 처음으로 느낀 한계는 체력과 쉬고 싶다는 욕구였습니다. 노동자들을 위한 교리가 토요일 오후 8시에 있었습니다. 저는 주일을 위해 그 시간엔 쉬고 싶었습니다. 그래서 그들에게 이것은 안 했으면 좋겠다고 말했더니 실망한 표정이었고 그들 중 한사람이 한마리 양의 비유를 들면서 저에게 도전했습니다. 잠시 생각할 시간을 갖고, 계속하자고 했습니다. 또 깨진 것입니다. 이렇게 깨지기만 하는 제 모습이 아팠지만 그 결과 저는 가난하다는 것이 이런 것이구나 하는 것을 배웠습니다.

하느님의 영을 따라 살겠습니다

현대사회에서 사제는 버릴 것이 많습니다. 그중에 가장 큰 것은 권력입니다. 저는 권력을 버리고 있습니다. 사제는 조직가와 행정가는 아닙니다. 사제는 하느님의 사랑과 영을 전하는 도구입니다. 저는 틀을 싫어합니다. 저는 틀을 부수면서 살겠습니다. 제 자신의 아집의 틀도 부수고 거짓의 틀도 부수고 싶습니다. 그리고 목숨걸고 살아가겠습니다. 더 이상 유보나 얼버무림이 아니라 과감히 거짓에 도전하며 살아가겠습니다

지금 저에게 힘을 주는 사람들은 어느 시골에서 만난 할아버지의 꾸부러진 모습, 어느 노동자의 못박힌 손, 그리고 야훼의 가난한 사람들입니다. 저에겐 하느님의 영이 묶어주는 공동체가 있습니다. 저에겐 저를 교육하고 지도하는 누나와 친구와 가난한 사람들이 있습니다.

저는 생명력과 활기의 원동력인 하느님의 영을 따라 살겠습니다. 그래서 저는 없어지고 예수님의 복음만 살아있기를 바랍니다. 그리고 사랑하며 정의를 실천하며 말없이 살다가 태어났을 때처럼 고요히 죽어 가겠습니다. 그러면 하느님께선 우리 모두를 품어주시겠죠. 그 믿음과 희망으로 살 것입니다. 가난에 대하여 쓸려고 했는데 이상해진 것같습니다. 졸필을 이해해 주십시요.
 

기사출처: <참사람되어> 1993년 2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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