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상한 혁명가, 나자렛 예수
상태바
이상한 혁명가, 나자렛 예수
  • 호세 곤잘레스 화우스
  • 승인 2017.02.28 12:24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참사람되어-10
by Laura James - Hosanna

그는 어느 작은 마을에서
한 농촌여성의 아들로 태어났다.
그곳에서 서른 살이 될 때까지 목수로 일했다.
그리고서 3년 동안 그는 방랑하는 설교자가 되었다.
그는 결코 책을 쓴 적이 없다.
사무실도 연 적이 없었다.
결코 가족이나 가정을 가지지 않았다.
대학에도 가지 않았다.
태어난 곳에서 300km 이상 여행한 적도 없었다.
거대함과 관련된 그 어떤 것도 성취한 적이 없었다.
자신 이외에 어떤 신용장이나 자격증도 없었다.

여론이 그에게서 등을 돌렸을 때
그는 겨우 서른세 살이었다.
그의 친구들도 그를 버렸다.
그는 적들의 손에 넘겨졌고,
그들은 재판에서 그를 조롱했다.
그는 두 도둑들 가운데에서 십자가에 못 박혔다.
그리고 그가 하느님께 왜 자기를 버렸느냐고 물으면서
고통에 휩싸여 있을 때,
그를 고문한 자들은
유일한 소유물인 그의 옷을 놓고 제비를 뽑고 있었다.
그가 죽었을 때, 한 친구가 묘를 빌려서
그곳에 그를 매장했다.
20세기가 지나갔지만,
오늘날 그는 우리세계의 중심인물로 자리잡고 있다.
그는 인간의 변화에 있어 결정적인 요인이다.

행진해 갔던 어떤 군대도,
항해했던 어떤 해군도,
회의를 했던 어떤 국회도,
지배했던 어떤 왕도,
이 모든 권력을 다 합쳐도 그의 이 고독한 삶만큼
지상에 존재하는 사람들의 삶을 바꾼 것은 없었다.

이 글은 이천 년 전 팔레스타인에서 태어났고 처형된 나자렛 예수의 놀라운 삶과 역설을 완전하게 묘사하고 있다. 그에 대한 기억은 상황을 전복시키고 복종시키는 기억이다. “집 짓는 이들이 내버린 돌, 그 돌이 모퉁이의 머릿돌이 되었네”(마르 12,10)라는 말이나 이사야 예언서의 ‘야훼의 종의 노래’들은 예수의 전복적인 이미지와 잘 어울린다. 대사제등 하느님의 ‘공식적인’ 대변자들은 예수를 비난하고, 결국 신성모독죄로 판결했다. 그러나 교회는 그런 불경한 자를 하느님의 “유일한 아드님”으로 선포하였다. 역설이며 전복적 상상력이다.

by Laura James-love one another

예수는 종교계와 정치계 권력자들의 하느님이 아니라, 이 권력들에 의해 배제되고 소외된 사람들의 하느님을 선포하고 입증했으며 그분의 현존을 느끼게 했기 때문에 ‘신성모독죄’로 고발되었다. 박사도 아니요, 사무실도 열지 않았고 저술도 하지 않았던 ‘예수’라는 흔한 이름을 가진 익명의 사람은 이런 방식으로 인류 역사에서 가장 위대한 영적 혁명을 이룬 사람으로 이천년 동안 기억되고 있다.

예수는 하느님께 이르는 길이 권력이나 성전을 통해서가 아니라는 것, 사제직이나 율법을 통해서가 아니라는 것, 어떤 아름다운 말들을 통해서도 아니라는 것, 다만 역사 속에서 소외된 사람들을 통해서 하느님께 이르는 것이라는 사실을 확고하게 정립하였다. 소외된 이들을 통한 혁명은 아마도 우리들이 쉽사리 이해하기 힘들 것이다. 그러나 혁명은 “그곳에 있었고”, 우리들에게도 가능한 혁명이다.

그의 십자가 죽음은 노예들과 테러리스트들에게 해당되는 죽음이었고, 그 시대의 가장 비참한 죽음이었다. 이런 종말은 그의 삶이 가져온 논리적 결과였다. 예수는 어떤 “형이상학적” 혹은 무죄한 이의 피를 요구하는 대속신앙 같은 “거룩한 보상 계획”에 의해서 죽은 것이 아니다. 예수는 그가 살았던 방식 때문에 죽었다.

예수의 삶과 비참한 죽음은 제자들의 마음에도 혼란을 일으키는 것이어서, 예수는 죽기까지 고독했다. 예수는 먼저 제자들에게서 버림받았고, 그를 따랐던 군중들도 그를 배반하여 “그를 십자가에 못박으라”고 소리쳤다. 그들은 당시 지배층에게 조종을 받았던 것이다. “나그네”가 그를 도와 십자가를 짊어지기도 했는데, 예수 혼자 감당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십자가 주변에는 단지 한 명의 제자가 다른 제자들보다 더 큰 용기를 보이며 끝까지 남아있었던 충실한 여인들과 함께 있었다. 그를 죽이는데 성공했던 사람들은 이제 그에게 가졌던 두려움으로부터 자유롭게 되었고, 사형대 밑에서 그를 조롱하였으며, “대화”하자고 제안하면서 하느님이 그를 십자가에서 내려 준다면 그의 말을 들을 용의가 있다고 하였다.

하느님도 예수도 이런 협박을 받아들이지 않았다. 그러나 우리는 예수가 얼마나 암흑의 순간들을 겪고 있었는지 이해할 수 있다. 마침내 그는 울부짖고 떨면서 크게 외쳤다: “오 나의 하느님, 왜 나를 버리셨습니까?” 그리고 그 어두운 밤의 한 가운데에서 예수가 자신의 죽음을 확인하는 힘을 가질 수 있었던 것은 놀라운 일이다. 그는 그의 생명을 가해자들이 가져가도록 하지 않고 하느님께 맡기며 큰 소리로 다시 외친다. “압바, 당신의 손에 제 영혼을 맡깁니다.”
 

출처/<참사람되어> 2003년 2월호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