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촛불들고 나타난 청소년 "혁명정부를 세우자"

[신승철 칼럼]

지난 주말 박근혜의 하야를 외치던 촛불집회에서 ‘중고생연대’의 “혁명정부를 세우자”라는 슬로건이 많이 회자되었습니다. 한편으로 너무 과격한 표현이라는 비판과 우려도 있었지만, 다른 한편으로 속이 후련해지는 느낌도 들었습니다. 그 문구가 가슴 뜨거워지는 역사의 기억으로 인도하는 느낌도 들었습니다.

사실 중고등학생들은 한국사회의 변혁운동에서 아주 중요한 역할을 했습니다. 4.19혁명, 6.10시민항쟁, 광우병 촛불집회에서 중고등학생들은 진실을 말하고 거리에 나섰습니다. 80년대 고등학교를 다니던 저도 거리를 나섰기 때문에 그때의 기억이 아련히 남아 있었지요.

사진=한상봉

혁명, 행복한 사랑의 과정

‘혁명’이라는 단어를 폭력과 증오라는 개념과 연결시키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저는 혁명을 사랑과 연결시키려고 합니다. 오히려, 차별, 증오, 폭력, 착취로부터의 해방되어 서로 사랑하라는 혁명가 예수님이 떠올랐으니까요. 며칠 전이 바로 수능이었습니다. 수능을 봤던 수험생들도 집회에 나왔더군요. 그래서 아이들, 중학생들, 수험생들, 재수생 등의 혁명이 과연 무엇인가에 대해서 다시 생각해 보았습니다. 프랑스 철학자 펠릭스 가타리는 다음과 같이 말합니다.

“혁명과정에 관한 한 나는 완전히 행복하다. 왜냐하면 어떤 혁명가도, 어떤 혁명운동도 없을지라도, 모든 수준에서 혁명이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것이 바로 혁명을 하자는 이유이다.” (Guattari, 2004: 79)

가타리(Guattari)는 68년 혁명 세대입니다. 그 역시도 뜨거운 거리에서 혁명을 경험했지요. 그 당시의 혁명은 성소수자들의 시위, 정신질환자들의 혁명집단화, 어린이들의 권리투쟁, 여성들의 권리신장운동과 성해방에 대한 열망과 같이 섬광과 같이 폭발했습니다.

그는 분자혁명(révolution moléculaire)이라는 개념을 창안합니다. 분자혁명이란, 네트워크나 공동체 속에서 어떤 특이점이 발생했을 때 전체에 돌이킬 수 없는 변화를 준다는 문제의식에서 출발하고 있습니다. 즉 작은 변화가 돌이킬 수 없는 변화를 유발하는 것이지요. 작은 변화가 네트워크의 출렁임과 연쇄반응, 소음이라고 간주되었던 미묘한 웅성거림과 변화의 증후들을 일으키고, 눈덩이효과를 내서 결국 거스를 수 없는 도도한 강물과 같은 역사와 구조의 변화를 유발한다는 것이지요.

사진=한상봉

분자혁명, 부드럽고 여성적이며, 아이의 행동과도 같은...

사람들은 대체로 혁명이라고 하면 굳건한 혁명가와 혁명집단을 떠올리면서 무의식적으로 남성적 이미지와 결부시키곤 하지요 그리고 폭력과 증오, 결사적이고 의지적인 투쟁과 같은 단어와 연결시킵니다. 그러나 분자혁명은 통상적인 혁명의 이미지와는 달리, 부드럽고 여성적이며, 아이의 행동과도 같은 혁명을 그려냅니다. 분자혁명은 소수자와 더불어, 생명과 더불어, 이 사회의 낮은 곳에 있는 모든 민중과 더불어, 차별과 착취, 위계, 권위, 위선에 맞선 사랑의 혁명입니다.

사랑이 곧 혁명이라는 점은 분명합니다. 우리가 아이, 여성, 동물, 광인, 장애인, 이방인 등의 소수자를 차별하지 않고 사랑의 부드러운 흐름으로 이 딱딱하고 경색되어 있는 자본주의 사회의 고정관념을 깨뜨리는 것으로 향할 때, 그것은 세계가 변혁되는 것입니다. 앞으로의 혁명은 결국 차별과 증오, 폭력에 반대한 사랑과 비폭력의 혁명일 것입니다. 그것이 바로 촛불의 혁명입니다.

사진=한상봉

청소년, 생명평화세상의 새로운 주인공

저는 홀연히 나타난 중고등학생들의 주체성에 주목하게 됩니다. 그들은 사랑과 연대, 부정부패가 없는 세상을 위해서 거리로 나선 주체성들입니다. 우리 주변에는 사랑을 통해서 세상을 바꾸어보겠다는 보이지 않는 주체성들이 많습니다. 가정주부, 중고등학생, 직장인, 소수자. 생명들, 나무들, 꽃들 이들이 바로 생명평화세상의 주인공들입니다. 펠릭스 가타리는 다음과 같이 말하기도 합니다.

“혁명가의 일이란, 자신들이 있는 곳에서 더도 덜도 덧붙이지 않고 술책을 부리지 않고 단 한마디로 진리만을 말하는 것이다.……혁명적 진리의 순간이란 사람(당신)이 어떤 일로 진절머리나지 않을 때이며, 사람(당신)이 이제 아무것도 두려워하지 않을 때이며, 사람(당신)에게 힘이 되살아날 때이며, 사람(당신)이 어떤 일이 일어나든 목숨을 걸고서라도 끝까지 앞으로 나가가려고 하는 기분이 들 때이다. 우리는 이런 진리가 68년 5월에 작동하는 것을 보았다.”

저는 혁명적 진리의 순간이 그들과 함께 하고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이전세대가 미래세대에게 부끄럽지 않는 내일을 약속해야 한다는 책임감에도 불구하고 이를 달성하지 못했고, 드디어 미래세대가 스스로 나섰습니다. 다른 세상이 가능하다는 희망은 지금 거리에서 촛불이 되어 일렁입니다. 사랑이 가까이에 있기에 혁명은 가능합니다. 그리고 그들의 용기에 박수를 보냅니다.

 

신승철 바오로
문래동 예술촌에 연구공간 ‘철학공방 별난’ 운영.
<마트가 우리에게서 빼앗은 것들>, <철학, 생태에 눈뜨다> 저자.

 

[ 가톨릭일꾼 www.catholicworker.k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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