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단여백
HOME 칼럼 칼럼 윤영석 칼럼
“당신이 특권에 익숙해지면 평등은 억압처럼 느껴진다.”
트럼프 막말과 품성을 패러디한 이미지 (사진출처=Moanaipo)

[윤영석 신부 칼럼] 

세상이 어지럽다. 특히 내가 자라온 두 나라, 한국과 미국이 그렇다. 박근혜 대통령과 비선 실세의 등장은 한국을 뒤틀었고, 이 뒤틀림을 바로 잡으려는 시민들이 거리로 나왔다. 내가 13년 만에 한국을 방문하고 미국으로 다시 돌아온 지 일주일도 안되서 일어난 일이었다. 그리고 2주 후, 미국 대선이 끝났다. 오늘 밤 맨해튼에서는 트럼프를 대통령으로 인정하지 않겠다는 거리 시위가 있었다. 분노와 절망에 쌓인 한숨 소리가 대선이 지난 다음 날 온 도시를 가득 찬 느낌마저 들었다.

소수자들은 이 땅을 떠나야 하나? 그 절망의 거리에서

정치 운동가이자 변호사인 밴 존스(Van Jones)가 트럼프의 당선이 점차 확실해지자 CNN 방송에서 이런 말을 했다. “이제 우리 아이들에게 어떻게 설명할 건가? 우리는 아이들에게 남을 괴롭히지 말라고 가르친다. 나와 다른 사람에게 편견을 갖지 말라고 말한다…이제 우리 아이들에게 뭐라 말을 하나? 회교도 친구가 ‘이 땅을 떠나야 하냐'며 문자를 보냈다. 이건 변화하는 세상과 흑인 대통령을 향한 백인 우월주의자들의 반발이다. 오늘밤 트럼프는 자신이 공격하고 모욕한 사람들의 대통령으로서 책임져야 한다.”

하루 아침에 여성과 이민자, 타종교인, 약자, 성소수자를 모욕하는 사람이 대통령인 나라에 살게 됐다. 아직도 충격이 가시지 않는다. 비백인 이민자로서 두려움과 불안이 내 마음을 가득 채운다. ‘부시 정권 8년도 겪었는데 4년 쯤이야’라고 애써 위로해 본다. 별 효과가 없다.

메리놀회 평신도 선교사로 사회 정의와 인권 운동에 전념한 병원 사목 동료에게 불안감을 없애려 안일한 질문 하나 물어본다. “트럼프 시대도 별거 아니겠지?” 친구의 대답이 심상찮다. “아무리 나빴어도 보수층이 이렇게 대놓고 사회적 약자를 차별하고 모욕하진 않았지.” 벌써 인디애나와 메릴랜드에 위치한 성공회 교회벽에 “fag church(fag 혹은 faggot는 동성애자를 비하하는 속어),” “heil Trump(트럼프 만세),” “Trump nation, whites only(트럼프 국가, 백인 전용)”라는 낙서가 발견됐다. 아, 도대체 어떤 세상을 살아가는 건가.

백인들의 비틀린 분노가 트럼프에게 

도널드 트럼프의 선거 유세 포스터. "다시 미국을 위대한 나라로 만들고 싶다"는 문구가 적혀 있다.

서른 중반을 넘어 사십대를 바라보는 지금, 내가 너무 안일하게 살진 않았는지 자괴감과 온갖 잡생각이 쳐들어온다. 뭘 놓쳤는지, 내가 뭘 할 수 있었을까 등등. 버니 샌더스가 나왔으면 이겼을까? 힐러리 클린턴를 통해 미국 사회에 숨어있던 여성혐오가 이제야 그 얼굴을 드러냈듯이, 버니 샌더스가 나왔으면 반유대주의의 얼굴을 볼 수 있었을까?

출처를 명확히 알 수 없는 말을 인용한다. “당신이 특권에 익숙해지면 평등은 억압처럼 느껴진다.” 비백인들의 인권 향상과 평등에 대한 소리들이 백인들에겐 억울함과 억압으로 다가갔을게다. 마음 속에 숨기고 있다 트럼프를 통해 억압 받은 감정이 드러나고 해소되는 쾌감을 얻었을 지 모른다. 비백인 이민자인 나는 왠지 여지껏 내게 친절을 보인 백인들에게 뒤통수를 맞은 기분이다.

무엇보다 그리스도인으로서 한 가지 사실에 화가 난다. 우선 백인 복음주의자 5명 중 4명이 트럼프에게 표를 줬다고 한다. 그들은 어떤 하느님을 믿는단 말인가? 하느님의 보편적인 은총을 그들에게 빼앗을 권리나 힘은 누구에게도 없지만 인종주의에 빠진 그들이 그리스도를 따른다고 할 순 없다. 그리스도교의 참된 영성은 지역, 인종, 계급의 장벽을 넘어섰다. 페터 제발트는 이렇게 말한다.

“국가와 지역의 장벽을 뛰어넘어 생각과 경험, 구체적인 삶의 모범과 지혜를 공유하는 운동이 일어날 때 편협한 지역주의나 민족주의, 답답한 국가주의는 설 곳을 잃는다. 이탈리아 사람(캔터베리의 안셀모)이 영국에서 주교가 되고, 앵글로 색슨계의 보니파시오가 독일 사람을 위한 위대한 선교사가 되고, 720년 프랑켄 지역에서 온 독일인 수도자들이 이탈리아의 몬테카시노를 새롭게 일깨워 전 유럽의 정신적 수도로 성장하게 했다.

그리스도인이 인종주의자가 되고 다른 사람과 형제가 되지 못한다면 그것은 이미 그리스도인의 정의에 위배된다. 그런 사람이 있다면 그는 그리스도인이 아니라, 정신적인 혼란 속에서 다른 사람에게도 해가 되는 암적인 존재에 불과할 것이다.” (사랑하라 하고 싶은 일을 하라, 페터 제발트, 187쪽)

그들과 나 사이를 분리하는 그림자

대선 다음 날 아침, 매일 걷는 출근길이 낯설다. 그리고 한 가지 질문만이 떠오른다. 자, 이제 그리스도인으로서 트럼프 시대를 어떻게 살아야 할까? 마침 트럼프의 슬로건이 적힌 모자를 쓴 20대 청년이 내 옆을 지나간다. Make America Great Again! 꼴보기 싫다. 그런데 빨간 트럼프 모자만 새 것이다. 먼지가 여기저기 묻어 있는 외투, 너덜해진 바지 밑단과 헐거워 보이는 운동화가 눈에 띈다. 이 청년이 트럼프 모자를 쓰고 있지 않았다면 어땠을까 상상해본다. 아마도 그리스도를 통해 내게 주어진 무조건적이고 보편적인 하느님의 은총이 이 청년에게도 똑같이 주어졌다고 생각했을 것이다. 그리고 하느님의 은총을 그가 경험하길 빌었을 수도 있다.

내 주위에 트럼프를 지지하고 그의 대선 승리를 환호하는 신자들의 얼굴이 떠오른다. 그들은 결코 트럼프처럼 거대한 부를 누리지 않는 사람들이다. 경제적 수준 또한 높지 않다. 트럼프 덕으로 비선 실세가 될 가능성은 0%다. 이제 그들과 나 사이를 분리하는 그림자가 보인다. 사탄은 헬라어로 디아볼로스(diabolos), 분리하는 자이다. 그들과 나, 타인화(othering)을 없애는 길은 멀게만 느껴진다.

아직 화해와 평화를 이야기하기엔 시기상조다. 그들과 나를 분리하는 그림자를 더 분명히 직시하고 인식해야 할 때다. 그리고 이 그림자가 그들과 나 사이를 가로 막고 있어도 그들과 내가 함께 영하는 그리스도의 성체와 성혈에서 화해의 희망을 맛본다. 파스카의 신비는 분리하는 영의 그림자가 짙게 드리운 세상을 밝히는 빛이다. 그리고 이 빛은 엠마오에서 두 제자의 눈을 열어 부활의 예수를 밝혔듯이, 분리하는 그림자를 제대로 볼 수 있는 눈을 밝힌다. 


윤영석(바울로) 신부
미국성공회 뉴왁교구 소속 사제
NewYork-Presbyterian Hospital 원목

[ 가톨릭일꾼 www.catholicworker.kr ]

<가톨릭일꾼 기사는 상업적 용도 아니라면 출처를 밝히고 누구나 퍼갈 수 있음>

윤영석 신부의 다른기사 보기
icon인기기사
기사 댓글 0
전체보기
첫번째 댓글을 남겨주세요.
Back to 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