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란치스코] 기도1: 우리는 때때로 고독 속으로 물러날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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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란치스코] 기도1: 우리는 때때로 고독 속으로 물러날 필요가 있다
  • 머레이 보도
  • 승인 2016.11.07 17: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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욕설을 넘어서게 하는 힘, 기도

프란치스코의 기도는 그가 기꺼이 포옹하길 원했던 것으로부터 흘러나온다. 그는 우리가 성인이 되지 않는 이유가 죄를 극복할 수 없기 때문이 아니라, 부끄러움을 극복하길 원하지 않기 때문이라고 믿고 또한 형제들에게 그렇게 말한다. 그리고 부끄러움을 극복한다는 것은 우리 자신 안이나 다른 이들 안에 있건 간에 실수로 믿게된 것이 가치가 없거나 불명확하거나 중요하지 않다는 사실을 받아들이는 기꺼움을 암시한다.

프란치스코의 삶에는 그가 부끄러움을 어떻게 극복했으며 기도가 그런 극복을 통하여 어떻게 올바르게 되었는가를 밝혀주는 두 가지 극적인 사건들이 있다. 첫 번째는 회심의 바로 시작에 일어난다.

그는 산 다미아노 성당에서 가난한 사제와 함께 살고 있다. 그의 아버지와 어머니는 그가 어디에 있는지를 알지 못하고 그래서 그의 아버지는 아들에 대하여 물으며 도시를 돌아다닌다. 프란치스코가 어디에 있는지 알게 될 때, 그는 친구들과 이웃들 모두를 불러서 산 다미아노로 내려간다.

프란치스코는 그리스도를 섬기는 일에 아직도 낯설다. 추종자들에 대하여 듣고 그들이 오고 있는 것을 알았을 때, 프란치스코는 은신처로 미리 준비해 두었던 비밀 동굴 안으로 기어 들어가 아버지의 분노로부터 몸을 숨긴다. 그곳에서 거의 한 달 동안 머문다. 그는 몰래 그에게 가져온 음식을 먹으며 주님께서 박해로부터 그를 구하시고 그분만을 홀로 섬기고 싶은 소망의 실현을 허락해 달라고 눈물로써 계속 기도한다.

그는 단식하고 끊임없이 기도하는데, 자신의 힘을 믿지 않고 전적으로 하느님을 의지한다. 그리고 하느님께선 그의 영혼을 말로 표현할 수 없는 기쁨과 놀라운 빛으로 채워 주시고 그는 동굴을 떠나 박해자들을 대면할 준비가 된다. 내적인 빛을 자라게 하셔서, 마음에 빛을 안고 그는 아씨시로 가는 길을 올라간다.

친구들과 친척들이 그를 발견하자, 그들은 바보, 미친놈이라 부르고 욕설을 하면서 그를 옥죄였으며, 돌과 진흙을 던진다.

하지만 하느님의 종이 된 프란치스코는 그들에게 전혀 주의를 돌리지 않는다. 그들의 욕설에 무관심하면서 그는 모든 것에 대하여 하느님께 감사한다.

이 이야기는 프란치스코 영성을 말해주는 원형적인 이야기이다. 그것은 하느님 안에 사는 그의 삶의 뿌리와 움직임을 담고 있다. 처음에는 은신처로 준비한 비밀 동굴 속으로 몰래 걸어가서 아버지의 분노로부터 숨는다. 진실한 자아가 나타나기 시작할 때의 우리 모두처럼 그는 아버지의 분노를 두려워하며 움추러 들고 숨으며, 아직까지도 자신이 될 수 있는 용기가 없기 때문에 그릇된 것을 위해 기도한다. 그는 주님께서 박해로부터 그를 구하고 그의 소망을 실현시켜 달라고 기도한다. 아직까지도 그의 소망이 실현되려면 박해를 받아야 한다는 사실을 알지 못한다.

그러나 참고 견디기 때문에, 주님은 빛으로 그의 영혼을 채우시고, 그래서 숨어있는 동굴을 떠나 박해자들의 욕설과 공격을 직면한다. 부끄러움을 극복하면서 그는 진실한 자아를 발견하고 박해에 의해 흔들리지 않는다. 그리고 모든 것에 대하여 하느님께 감사하는데, 단지 유쾌한 것에 대한 것만 아니라 박해로부터 구해 달라는 빗나간 소망과 같은 것에 대해서도 감사한다. 행동 속에서, 그리스도께 대한 결단의 결과를 대면하면서, 프란치스꼬는 올바르게 기도하는 것을 배운다. 삶 속에서 프란치스코는 끊임없이 주님과 자신을 알기 위하여 그래서 순수한 마음으로 기도할 수 있도록 부끄러움을 극복해간다.

Jan van Eyck, Stigmatization of St Francis, 1428-29, Philadelphia Museum of Art, Philadelphia

기도, 하느님과 통교하는 거룩한 장소

두 번째 또 다른 사건은 사도 베드로의 무덤이 있는 로마로 가는 순례 길에 회심이 일어나기 전에 벌어진다.

출입문 계단 위에서 몇몇 거지들이 오가는 사람들에게 돈을 요청하고 있다. 프란치스꼬는 조용히 거지들 중 한사람의 옷을 빌리고, 자신의 옷과 바꾼다. 누더기를 입은 그는 다른 이들과 함께 계단에 서서 자선을 청하고 있다.

그 날이 끝날 무렵 그는 다시 자신의 옷으로 갈아입고 예수께 올바른 길을 보여주길 청하면서 아씨시로 돌아온다.

다시 한번 부끄러움을 극복하는 행동이 기도보다 앞서있다. 그는 자신을 사회의 밀려난 자들과 동일시한다. 그는 그들의 눈으로 세상을 본다. 그는 자신의 의존성과 작음을 발견한다. 그리고 그 이야기는 이렇게 결말이 난다, 집으로 돌아 올 때 그는 비밀을 아무에게도 말하지 않고 홀로 결코 실패하지 않으시는 안내자인 하느님께로 향한다.

이 마지막 진술은 프란치스코의 기도의 삶을 이해하는데 있어서 중요하다. 그는 우리가 하느님과 맞대면하는 그 깊은 중심, 그 비밀스러운 곳, 하느님과 친밀하게 통교하는 거룩한 그곳을 존경하고 지키는 파수꾼이다.

기도, 아무도 방해받지 않도록 하라

오늘날 인간의 자유에 대해 말로만 섬기는데도 불구하고 자유의 이름으로 자유에 대한 항복, 그룹에 대한 미묘한 종속, 올바른 자유와는 정 반대에 있는 “공동체”에 대한 순응주의가 일어날 수 있다. 그리고 다시 한번 진실한 공동체의 중심에 놓여 있는 소중한 자율성에 대한 균형을 상기시키는 사람은 프란치스코이다.

그와 그의 형제들은 가장 강력한 형제애와 사랑의 결속으로 서로가 밀착되어 있다. 그러나 주님께로부터 받은 모든 형제의 각각의 보화는 한 형제가 방해받지 않고 존중받고 소중히 여겨지며, 소음을 듣지 않고 기도할 수 있도록 한 사람 혹은 몇몇의 형제들이 보호해 주면서 항상 존중되고 키워진다.

프란치스코 자신은 프란치스코 카리스마의 핵심에 위치한 본질적으로 관상적인 정신을 육성하는 <은수처 규칙>을 쓴다.

그리고 오상을 받기 바로 전에 라 베르나에서의 그의 모범은 주님과 자신의 개인적인 관계, 즉 때때로 오늘날 “나눔”, “그룹 영적지도”, 혹은 “함께 함을 촉진시킴”이라는 구실아래 무례하고 강제로 침해당하는 영역의 거룩함에 대한 프란치스코의 지혜를 극적으로 보여준다. 친교는 우리가 하느님의 현존 앞에서 벌거벗은 채로 또한 부서지기 쉬운 채로 앉아 있는 그 비밀스러운 동굴을 침해하는 것에 의하여 촉진되지 않는다.

라 베르나의 프란치스코에 대한 매력적이고 섬세한 이야기가 있다.

그는 성 미카엘 대천사의 사순절을 좀더 깊은 고독 속에서 보낼 수 있는 적당한 장소를 찾고 있는데, 그 사순절은 성모 몽소 승천 축일에서부터 시작한다. 그래서 그는 레오 형제를 불러서 “가서 형제들의 은수처 문 앞에서 계시오, 그리고 내가 부를 때 나에게로 오시오.”라고 말한다.

레오 형제는 가서 문 앞에 서 있고, 성 프란치스코는 조금 떨어져서 걸으며 큰 소리로 부른다. 그리고 프란치스코가 부르는 소리를 들으면 레오는 그에게 서둘러 간다. 그러나 프란치스코는 그에게 말한다: “아들이여, 조금 더 떨어진 곳을 찾으시오, 내가 당신을 부를 때 내 소리를 들을 수 없는 곳을 말입니다.”

그리고 나서 프란치스코는 다른 형제들을 불러서 자신이 그 한적한 곳에서 성 미카엘의 사순절을 지낼 것이라고 말하는데, 그는 거기에서 다른 이들과 떨어져서 홀로 기도할 수 있다. 그래서 그는 형제들에게 그곳에 초라한 집을 지어 달라고 요청하는데, 거기에선 프란치스코가 소리를 지르지 않는 한 들을 수가 없다.

그리고 오두막이 지어지자, 성 프란치스꼬는 그들에게 말한다. “이제 돌아가시오, 나를 이곳에 홀로 있게 해주시오, 왜냐하면 하느님 도움으로 나는 정신이 흐트러짐 없이 이곳에서 사순절을 지내려고 하기 때문입니다. 여러분 중 누구도 나에게 오지 마시오, 그리고 그 밖의 그 누구도 내게 오지 않게 하시오!”

우리는 때때로 고독 속으로 물러날 필요가 있으며 다른 이들 특히 우리에게 가장 가까운 사람들에게 “돌아가시오, 이곳에 나를 홀로 있게 하시오”라고 말할 필요가 있다. 그리고 우리는 돌아올 때 주님께서 침묵 속에 말씀하신 것을 표현해선 안될 것이라는 것도 알아야 한다.

개별성의 중요성, 비밀 속에서 하느님께 기도하다

초기 수도자들은 공적으로 그들의 과오를 인정하고 죄를 서로에게 고백한 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그것은 각 형제의 개별성이라는 귀중한 보물이 존중되고 주님의 특별한 선물이 프란치스코가 행한 모든 것의 특징인 정교하고 훌륭한 맛과 함께 비밀이 보장되거나 최소화되는 분위기 속에서만 일어난다.

당신이 형제와 자매들에게 거스른 과오와 죄를 인정하는 것과 당신이 진정으로 누구인가를 다른 이에게 보여주는 것은 다른 일이다. 당신이 누구인가를 어떤 사람에게 말하기 전에 어떤 특별한 관계가 반드시 이루어져야 하며, 어떤 신뢰가 있어야 하며, 어떤 수년간의 사랑이 증명되어야 하는지! 그렇게 다 된다해도 여전히 위험은 내포되어 있으며 자기 표현의 신비를 허용하는 어떤 깊은 만남의 순간이나 강력한 이유가 있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보여줌은 값싼 노출이 되며 기도는 하느님 안에서 당신의 정체성을 발견하는 그 중심으로부터 분리되므로 불가능 하게된다.

벌거벗은 자아의 조급하고 불손한 노출에 의해서 당신은 받을 수 없고 받아서도 안 되는 사람들에게 값비싼 진주를 흩뜨리는 것이다. 성 프란치스코는 기도 중에 들리는 소리를 결코 다른 이들과 나누지 않는다. 그는 황홀경을 감추기 위하여 두건을 끌어올린다. 그는 비밀 속에서 하느님께 기도한다.

<출처> 머레이 보도의 <성 프란치스꼬의 길-모든 이에게 도전하는 프란치스꼬의 영성>, 참사람되어 2002년 3월호 번역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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