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염수정 추기경님, 어디에 계시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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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염수정 추기경님, 어디에 계시나요?”
  • 한상봉
  • 승인 2016.10.12 12:53
  • 댓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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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 리뷰-백남기 농민의 죽음 앞에서]
사진=한상봉

지난 10월 10일 천주교정의구현전국사제단이 주관한 ‘불의한 정권의 회개와 민중을 위로하는 시국미사’를 1천명의 사제, 수도자, 신자들이 광화문 광장에 모여서 봉헌한 다음날, 네 명의 주교가 서울대병원 장례식장에 찾아와 백남기 선생의 죽음을 추모하는 미사를 봉헌하였다. 이 주교들은 미사 전에 한 번, 미사 후에 한 번, 두 번씩이나 빈소에 찾아가 조문하며 안타까움을 표시하였다. 미사 후에는 농성자들을 위해 운영하는 밥차에 들러 고마움을 표시하였다. 광주대교구장이자 주교회의 의장인 김희중 대주교, 그리고 옥현진 주교, 주교회의 정의평화위원회 위원장인 유흥식 주교, 민족화해위원회 위원장인 이기헌 주교였다.

지금은 추계 주교회의 기간이다. 이들 주교들은 잠시잠깐 틈을 내어 한꺼번에 서울대병원에 방문했지만, 사실 첫 방문은 아니었다. 김희중 대주교와 유흥식 주교는 백남기 선생의 사망 이후 벌써 몇 차례 다녀갔다. 그 밖의 다른 주교들 가운데 백남기 선생을 조문한 이는 유경촌 주교 밖에 없었다. 서울대교구 사회사목부 담당인 유경촌 주교는 백남기 선생의 사망 당일 방문하였다. 그러나 정작 서울대교구장인 염수정 추기경은 한 번도 방문한 적이 없다.

김희중 대주교는 서울대병원에서 봉헌된 미사에서 강론을 통해 백남기 선생을 “주님께서 가르치신 사랑의 나눔을 실천하신 의인”이라 했다. 그분이 지금 있을 자리는 차가운 장례식장이 아니라, 황금빛 벼들이 익어가는 들판이라고 했다. 백남기 선생의 죽음이라는 참담한 현실을 개탄하며 “정직하게 땀 흘려 길러낸 우리의 먹거리에 대한 정당한 대가를 바라는 그 외침이 이렇게 죽어야 할 정도로 부당한 요구였습니까? 국민의 생명과 재산을 최우선적으로 보호해야할 국가가 이렇게 해도 되는 것입니까?” 따져 물었다. 백남기 선생의 세례명은 임마누엘이다. 이곳에 “주님께서 함께 계신다”는데 한 나라의 유일한 현직 추기경은 어디에서 주님을 찾고 계신 것일까?

신문기사를 검색해보면, 염수정 추기경은 10월 8일 말 많고 탈도 많은 롯데그룹과 스페셜올림픽코리아가 공동 주최한 ‘2016 슈퍼블루 마라톤’ 대회가 열리는 서울 상암동 월드컵공원 잔디광장에서 있었다. 신문에는 롯데그룹 소진세 대외협력단장과 새누리당 나경원 의원과 나란히 마라톤 출발 터치버튼을 누르는 사진이 실려 있었다. 물론 이 행사는 장애인에 대한 비장애인의 인식개선을 위한다는 거창한 명목을 내세우고 있지만, 그래서 롯데의 소진세 대외협력단장은 “더불어 살아가는 사회를 만드는데 도움이 되기 바란다”는 말을 하고 있지만, 롯데그룹 자체가 경제적 암세포이며, 새누리당 자체가 약자에 대한 차별과 배제, 금수저들의 독재권력을 희망한다는 점에서 자가당착적 코미디다.

사진출처=파이낸셜뉴스

그래서 염수정 추기경에게 ‘사목’보다는 ‘사업’에 관심이 더 많은지 묻고 싶다. 지난 2009년 1월 20일 새벽 용산참사가 발생하고 남일당에서 1년 넘게 공권력에 희생당한 철거민들을 위한 매일미사가 봉헌되는 동안 선임이었던 정진석 추기경은 단 한 차례도 이곳에 방문하지 않았다. 그래서 주변에서는 명동성당 개발사업 때문이라는 소문이 파다했다. 이번에도 백남기 선생은 공권력의 폭력에 의해 희생당했지만, 한국교회를 대표하는 서울대교구의 수장이기도 한 염수정 추기경은 서울대병원에 나타나지 않고 엄한 곳에서 ‘복음’을 선포하고 계신듯해서 신자의 한 사람으로서 마음이 아프다.

염수정 추기경. 사진출처=가톨릭뉴스 지금여기

용산참사 현장과 마찬가지로 명동성당에서 승용차로 20분이면 족히 닿을 거리에 있는 서울대병원이, 추기경에게는 태평양 건너 대륙을 오가는 길보다 더 멀게 느껴지는 것 같다. 광주에서도 오고, 대전에서도 오고, 의정부에서도 오는데, 지척이 천리인 모양이다. 본래 교회전통 안에서 주교란 일차적으로 ‘가난한 이들의 보호자’로 여겨져 왔다. 그래서 늘 주교관 주변에는 구빈원과 병원을 두곤 했다. 사도들이 주님으로 고백하는 예수께서 “가난한 이들에게 복음을 선포하신 분”이었고, 그분 자신이 가난했으며, 사실상 공권력에 의해 살해당한 분이 예수님이시기 때문이다.

프란치스코 교종은 누누이 관료나 사업가가 아닌 ‘사목자’인 주교를 원한다고 했다. 그러나 정작 지역교회의 사목자들은 사업가나 행정가, 사장이나 관료 역할을 자임하고 나서는데 교회의 위기가 있다. 복음이 사라지고서야 교회가 무슨 의미가 있을까? ‘교회는 세상을 위한 구원의 성사’라는 말이 얼마나 허망한 말장난인가? 그래서 다시 묻고 싶어진다. 추기경의 친구는 누구인가? 예수님과 그분이 벗하신 가난한 이들인가? 아니면 고관대작과 부유한 상인들인가? 내 마음이 있는 곳에 내 발길이 닿기 마련이다. 내 발끝을 보고 내 신앙을 다시 살펴볼 의향은 없는지, 조심스럽게 추기경께 청하고 싶다. 백남기 임마누엘, 주님께서 그분과 함께 계신다.

한상봉 이시도로
<도로시데이 영성센터> 코디네이터
<가톨릭일꾼> 편집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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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치오 2016-10-19 03:05:14
언제나 교회는 가난한 이들과 아파하는 이들이 서슴없이 쉬어가는 곳이 되어야 합니다. 과거 우리가 저질렀던 잘못은 이러한 것을 모르고 우리만 잘살면 되지 하는 것 때문에 일어 났습니다. 김 추기경님을 닮으라고 강요하지는 않겠지만 적어도 한국 천주교가 이땅에 자라나고 또 많은 순교성인들의 피로 이루어낸 교회임을 잊지 마셨으면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