핵발전과 지진, 소돔과 고모라에 내린 유황불을 기억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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핵발전과 지진, 소돔과 고모라에 내린 유황불을 기억하라
  • 황인철
  • 승인 2016.09.21 14: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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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인철 칼럼] 

지난주 월요일이었다. 그날 필자는 오랜만에 찾은 영화관에 있었다. 상영 도중 두 차례 의자가 심하게 흔들리는 걸 느꼈다. 처음에는 어느 교양 없는 관객이 의자를 흔드는가 싶었지만, 영화상영이 끝난 뒤 그것이 지진이었음을 알게 되었다.

진앙지는 경주. 서울에서도 느껴질 정도의 상당한 규모였다. 국내 지진관측 사상 가장 강력한 규모인 5.8의 지진이었다. 300여 차례의 여진이 명절 연휴동안 계속되었고, 연휴가 끝나자마자 다시 4.5 규모의 지진이 발생했다. 일 주일 새에 먼 나라 이야기처럼 들리던 지진의 공포를 전 국민이 생생히 경험하고 있다. 그리고 이 사건은 한국이 결코 지진의 안전지대가 아님을 알게해 주었다.

원전 안전신화, 무모한 자신감

이번 지진이 더욱 불안하고 위험한 이유는 바로 핵발전소 때문이다. 경북 동해안을 따라 울진, 경주, 울산, 부산에는 국내에서 운영 중이거나 건설 중(건설예정 포함)인 핵발전소가 28기에 이른다. 국내 전체 원전 34기 중 82%에 달한다. 발전소만이 아니라 방폐장도 위치하고 있다. 게다가 이 지역 핵발전소의 수는 더 늘어날 계획이다. 현재 신고리3,4호기가 건설 중이고 지난 6월에는 신고리5,6호기가 승인되었다. 계획대로 이 원전들이 건설되면 고리는 원자로10기가 들어선 세계에서 유례없는 원전 밀집지역이 된다. 또한 고리 주변 30km 이내에 사는 거주인구 341만명인데 이 또한 세계 1위이다.

그런데 마치 일부러 그런 것처럼, 이 원전들은 지진발생 확률이 가장 높은 지역에 위치해 있다. 한국지질자원연구원에 따르면 지난 10년간 규모 2.0 이상의 지진 491회 중 32%인 157회가 경북, 울산, 부산에서 발생하였다. 특히 14개의 원전이 들어선 경북은 15개 시도 중 지진 발생 1위이다. 그리고 경북과 울산, 부산 지역에는 지진 발생 가능성이 높은 양산단층대, 울산단층대 등 크고 작은 활성단층이 몰려있다.

이번에 5.8의 지진이 발생한 양산단층대는 경주-양산-부산에 걸쳐 있으며 원전밀집지역과 가깝다. 그런데 2012년 정부의 연구과정에서 양산단층대가 활성단층, 곧 지진발생 가능성이 있는 곳으로 확인되었지만, 정부가 공개를 막은 사실이 드러났다. “환경단체가 원전 가동에 반대할 것”이라는 이유 때문이었다.

정부는 “국내 원전 내진설계가 6.5-7.0이라서 안전하다”는 주장만을 되풀이하고 있다. 하지만 그 누구도 국내 최강의 지진이 9월에 발생할 것을 예측한 이는 없다. 지진학자인 존 C. 머터는 “지진학계는 이미 수년 전에 지진 예측 가능성을 기대하는 연구 과제는 근본적으로 포기했다. 다음 지진이 언제, 어디서, 어떤 강도로 발생할지 정확히 예측하는 게 목표라면, 그 예측은 불가능하다는 사실을 깨달은 것이다”고 말한다. 내진 설계 7.9의 후쿠시마 핵발전소가 9.0의 지진 앞에 맥없이 무너지고 폭발했다는 사실이 바로 그것을 반증한다.

AP, 로이터 통신이 공개한 체르노빌 사진

핵발전소의 안전신화에 대한 맹신은 비단 한국의 일만이 아니다. 작년 노벨문학상을 수상한 스베틀라나 알렉산드로브나 알렉시예비치는 <체르노빌의 목소리>에서 일본 원전의 방문 일화를 다음과 같이 전한다.

“몇 해 전 일본 훗카이도에 있는 토마리 원전을 방문한 적이 있다...토마리 원전 직원들은 자신들을 마치 데미우르고스, 즉 조물주처럼 생각하는 것 같았다. 내게 체르노빌에 대해 질문했다. 내 이야기를 들으며 연민을 담은 미소를 지었다. ‘우리가 일하는 원전에서는 절대로 일어날 수 없는 일’이라고 했다. ‘원전 건물 위로 비행기가 떨어져도 끄떡없고, 가장 강력한 지진, 규모 8.0의 강진도 견뎌낼 수 있다’고 했다. 하지만 이번에 일본 역사상 처음으로 규모 9.0의 지진이 발생했다. 현대인들은 자기 능력의 한계를 인정하려 하지 않는다.”

국내 1위의 지진빈도, 세계 1위의 원자로 밀집, 세계1위의 원전밀집지역 주변인구, 그리고 정직하지 못한 정부와 과학기술에 대한 맹신. 이런 것들이 모이면, 위험은 예측할 수 없을 정도로 커진다. <위험사회>의 저자인 울리히 벡은 근대의 과학기술이 환경오염, 생태계 파괴 등의 위험을 체계적으로 생산해 내고 있음을 지적한다.

위험사회, 재난 불평등하다

핵발전소야말로 근대 과학기술이 생산해낸 대표적인 “위험”이다. 재난은 자연적이기도 하지만 사회적이다. 지진은 불가항력적인 자연재난일지 모르나, 그 위험과 피해의 정도는 사회적 현상이다. 지진의 위험성을 무시하고 지진위험대 위에 핵발전소를 짓는 행위도 사회적 현상이다. 체르노빌과 후쿠시마의 사례에서 보았듯이, 핵 사고는 돌이킬 수 없는 치명적인 인명피해와 환경훼손을 발생시킨다.

또한 재난은 불평등하다. “스모그는 민주적이다”는 말이 있다. 현대사회의 위험은 국경과 계급을 경계를 넘는다는 의미다. 하지만 이것은 반쪽의 진실이다. 재난은 평등할지 모르나, 재난의 피해는 불평등하다. 존 C. 머터는 그의 저서 <재난 불평등>에서 “재난이 자연적 사건일 뿐만 아니라 경제적, 정치적 속성을 갖고 있다”고 강조한다.

재난의 피해는 한 사회의 불평등한 구조를 반영하며, 가난한 사람들에게 더 큰 고통을 가져온다는 것이다. 지진을 예로 들자면, 내진설계가 잘된 튼튼한 집을 갖지 못한 이들은 더 큰 피해를 입게 된다. 현실의 불평등은 재난정보에 대한 불평등, 재난대비책에 대한 불평등으로 고스란히 전이된다. 핵발전소의 위험도 마찬가지다. 지금 원전에서 만들어진 전기는 대부분 대도시에서 소비한다. 대도시의 풍요를 위해 그 위험은 다른 작은 지역이 감수하고 있는 것이다.

성경 안에도 많은 재난 이야기가 있다. 노아의 홍수, 이집트 탈출에 앞서 벌어진 열 가지 재앙, 소돔과 고모라에 내린 유황불 등등... 성경 저자들은 재난의 의미를 묻는다. 이러한 재앙의 원인이 인간의 타락과 죄악에 있다고 전한다. 2016년 9월 한국을 강타한 지진의 의미를 찾는 것이 우리의 몫이다.

종말에 대한 예언적 경고

핵발전소의 이면에는 “인간의 과학기술은 완벽하고, 자연을 완전히 통제할 수 있다”는 생각이 깔려있다. 인간 스스로를 전지전능한 조물주의 위치에 놓으려는 오만이다. 예언자들은 재난 앞에서 항상 “회개”를 촉구했다. 교종 프란치스코도 경고한다.

"종말에 대한 예언은 더 이상 비웃거나 무시할 수 없습니다. 우리는 다음 세대에게 엄청난 폐허와 사막과 오염을 남겨 줄 수 있습니다...현재의 생활방식은 더 이상 지속 가능하지 않기에 이미 세계의 여러 지역에서 주기적으로 발생하고 있는 재앙으로 치달을 수 있습니다." (<찬미받으소서>161항)

지금 필요한 것이야말로 “생태적 회심”이다. 그 회심은 핵발전소를 중단하고 폐쇄하는 것부터 시작되어야 한다.  

 

황인철 마태오
녹색연합 환경활동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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