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돈나하우스, 몸은 지치고 영어는 안 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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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돈나하우스, 몸은 지치고 영어는 안 되고
  • 주은경
  • 승인 2024.03.19 08:14
  • 댓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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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은경의 순례여행 - 마돈나하우스 6화

목요일은 특별한 날이다. 오후는 게스트들의 자유시간. 일을 하지 않는다. 오늘은 두 번째 목요일. 한국인 게스트들끼리 음식을 만들어먹을까, 읍내(?) 구경을 갈까, 숙소에서 낮잠을 잘까 고민했다. 결론은 게스트 마가리타의 차를 타고 5명이 우르르 함께 나가기로. 자동차로 3분 거리. 읍내라고 해봐야 편의점과 피씨방 말곤 별게 없다. 편의점에서 치약, 치실, 과자, 그리고 일요일에 먹을 냉동새우를 샀다. 2,30대 젊은 게스트들은 피씨방에 인터넷 한다고 가는데 나는 관심 없었다. 노트북도 휴대폰도 없이 사는 이 생활이 좋아 푹 빠져 보기로 했다. 돌아오면서 마돈나하우스가 운영하는 중고품 가게 세인트 조셉(Saint Joseph)에 들러 쇼핑을 했다. 가죽부츠 하나를 1달러에 샀다. 득 템 덕분에 엔돌핀 뿜뿜.

목요일이 자유시간인 대신에 토요일은 오후 5시까지 일한다. 오늘 오전에는 1시간 정도 콩을 골랐다. 오후에는 주방에서 일하는 한국인 스탭 주은을 도왔다. 아픈 사람을 위한 특별스프 준비하는 일. 그런데 주은을 따라 주방 아래 반지하실에 내려갔다가 깜짝 놀랐다. 선반에 과일조림, 잼, 피클 등 온갖 저장식품들이 선반에 빼곡하게 쌓여 있었다. 모두 여기서 재배한 농작물로 만든 것이다. 또 하나 놀란 것이 있다. 비닐봉지를 버리지 않고 모두 비누로 깨끗이 씻어 말려 사용한다. 옷은 기부 받은 헌옷을 입고. 이 모든 게 공동체의 매뉴얼대로 행하는 일이다. 심플 라이프, 생태적인 삶이다.

 

마돈나하우스에서는 동방정교회의 전통과 문화를 곳곳에서 보고 경험할 수 있다. 

일요일, 동방정교회식 미사와 고요한 산책

11월 18일(일) 12일째. 오늘 일요일 미사는 특별했다. 동방정교회의 전통을 그대로 옮겨온 미사. 신부님의 복장이나 성물, 향까지 동방정교회 전통을 본받은 모양새다. 마돈나하우스에서는 한 달에 한 번 동방정교회 방식으로 미사를 진행한다. 동방정교회식 미사는 노래와 노래로 이어진다. 음악이 많아 더욱 경건하고 아름답다. 성체식도 납작한 흰색 밀전병이 아니라 카스테라처럼 포실포실한 빵을 작게 잘라 나눠준다. 젊은 시절 러시아정교회 신도였던 마돈나하우스의 설립자 캐서린 도허티는 동방정교회와 서방교회의 교류와 만남을 자신의 중요한 소명으로 삼았다고 한다. 그래선지 평일 오전 오후 미사를 보는 채플과 일요일 미사 장소의 전면에는 동방정교회의 이콘 여러 개가 모셔져 있다.

아점을 마친 후 나의 일요일 교복(?) 와인색 원피스를 벗었다. 등산복으로 갈아입고 서둘러 산책을 시작했다. 손끝이 얼얼해 감각이 없을 만큼 차가운 날씨인데도 몸은 춥지 않았다. 햇볕을 즐기며 자유롭게 걸을 수 있으니 너무 상쾌했다. 평소엔 공동체의 하루 일정이 꽉 짜여 있어 잠시잠깐의 이동이나 휴식 말고는 마음껏 운동을 하거나 햇볕을 즐길 수 없는 탓이다.

메인하우스에서 농장으로 가는 완만한 길을 오르기 시작한다. 혼자 걷다가 잠시 걸음을 멈춘다. 산이 뿜어내는 소리를 듣는다. 내가 가만있으면 천지 사방이 고요하고 적막하다. 그 소리가 얼마나 좋은지. 오늘은 쨍하고 맑은 하늘빛에 호수 또한 거울처럼 시리도록 투명하다. 완벽하게 깨끗한 날씨다.

언덕을 오르는데 저 아래 인기척이 들린다. 누군가 걸어 올라오고 있다. 서른 살 남짓으로 보이는 홍콩계 캐나다인 앤드류. 검은색 가느다란 뿔테 안경에 짧은 머리, 똘똘하고 샤프한 인상의 그는 밴쿠버에서 신학교를 다니다가 이곳에 게스트로 체류하고 있다. 눈인사를 나누고 그가 앞질러 올라간다. 목적 없이 나선 길. 그가 저 위에서 왼쪽 길로 접어들기에 나도 그쪽 길을 택한다. 하지만 마냥 계속 걸어갈 수가 없다. 2시 30분에 한국인 게스트들과 컵라면을 먹기로 했으니까. 홀로 산책이 아무리 좋아도 뜨끈한 컵라면을 마다할 순 없지. 서둘러 내려간다.

한국인 게스트들이 유난히 많은 이유는 뭘까

수선을 피우며 허겁지겁 컵라면을 먹었다. 메인하우스 1층 주방에서. 이곳의 음식이 입에 잘 맞는다고 생각했는데도 역시 한국 컵라면이 최고. 속도 몸도 노골노골 풀렸다.

라면을 먹으면서 한국인 여자 게스트들에게 이곳에 어떻게 오게 됐는지 물었다. 엄마 친구 소개로 온 20대 대학생 J, 토론토에 어학연수를 왔다가 마돈나하우스를 알게 됐다는 20대 Y, 밴쿠버 마돈나하우스 필드하우스에서 자원활동을 하다가 왔다는 30대 전직 은행원 S. 학원에서 수학교사로 일하다가 영어도 배우고 외국생활을 체험해보고 싶어 왔다는 20대 후반 M. 캐나다에 유학하거나 이민 온 한국인보다 한국에서 일부러 이곳을 찾아온 게스트들이 훨씬 더 많다. 간혹 한국의 신학생도 오지만, 드문 경우다. 짧게는 1-2주, 길게는 6개월에서 1년 동안 게스트로 머문다.

한국인 게스트들이 많을 땐 10명이나 된다는데. 일본이나 중국에서 온 게스트는 거의 없다. 두 달 동안 나는 일본인 청년 게스트를 딱 한 명 봤지만, 그것도 대단히 이례적이라 한다. 왜 다른 아시아 나라보다 한국인들이 많이 찾아올까? 한국인이 종교와 영성에 특별한 관심이 있어서? 아니면 한국에서는 몸과 마음이 쉴 곳을 찾기가 다른 나라보다 어려워서? 답을 쉽게 내릴 수가 없다.

몸이 지친다, 미열이 난다

저녁식사 후 메인하우스 다이닝홀에 사람들이 별로 보이지 않았다. 아, 오늘 일요일이니 일찍 숙소로 돌아가는 거겠지? 숙소로 돌아와 잠옷으로 갈아입었다. 그런데 ‘하우스 마더’ 쟌이 들어오면서 나를 보고 깜짝 놀랐다.

“은경, 왜 여기 있어요? 일요일 저녁은 Family Night이라 9시40분까지 공동체 사람들과 함께 시간을 보내야 해요.”

내가 깜빡 했던 것이다. 피곤해서 일찍 자려 했더니만. 낭패였다. 양말, 바지, 코트까지 다시 중무장을 하고 눈길을 걸어 다시 메인하우스로 돌아갔다. 다이닝홀에서 한 시간 남짓 ‘사막의 영성’에 관한 책 <푸스티니아>를 영문책, 한글책을 비교하며 읽었다. 그러나 자꾸 눈이 감겼다.

이렇듯 일요일은 나 같은 게스트에게는 휴식의 시간이 아니다. 활동량이 많아 평일보다 훨씬 지친다. 11시 브런치를 마치면 5시까지 자유시간이다. 하지만 이때는 정말 귀한 자유시간이라 산책을 하거나 사람을 만나거나 뭐든 하고 싶다. 그런데 저녁식사 후에도 몸을 쉴 수 없으니. 기력이 달린다. 젊고 건강한 게스트들은 아무 문제가 없다. 하지만 나는 몸이 약해 1주일에 최소 하루는 아무 것도 안하고 휴식해야 하는데. 여기선 불가능하다. 컨디션 조절 잘 해야 한다.

11월 19일 월요일. 아침에 일어나기가 힘들다. 몸이 너무 무겁다. 미열이 난다. 나는 체력이 떨어질 때 늘 그렇다. 오늘 하루 쉬지 않으면 정말 몸살이 올 것 같은데. 때마침 하우스 마더 쟌이 일요일 밤마다 푸스티니아에 가서 자리에 없다. 대신에 도서실에서 일하는 셔메인이 임시로 24시간 대체근무를 하는데 오늘 내가 배치된 곳도 도서실. 셔메인에게 부탁했다. 점심식사 후 게스트하우스에서 휴식하고 싶다고. 다행히 허락을 받았다. 그런데 여자 게스트하우스까지 함께 걸어가며 그가 말했다. 내 체온을 재야한다고.

“내 몸은 내가 알아요. 체온계에선 안 잡혀요. 서울에서 내 주치의가 이게 일종의 열감, 허열이라 했거든요.”
“여기는 공동체라 한 사람이 열이 나면 다 옮을 수 있어요. 열이 몇 도인지 체크해야 해요.”

셔메인이 체온계를 나의 혓바닥 밑에 집어넣었다. 예상대로 열은 정상이었다.

“Oh, it's low feaver." 셔메인이 큰 소리로 말했다.
“아이쿠. 내 미열이 원래 그렇다고요.” 설마 꾀병이라 오해하진 않겠지? 민망하다.

고열이 나거나 심하게 아프지 않으면 5시15분 저녁 채플에는 참석해야 한다더니, 잠시 후 점심식사 후에 숙소 가서 쉬고 저녁식사는 메인하우스에 와서 하란다. 점심식사와 영적 독서시간이 끝나고 게스트하우스에 들어와 침대에 누웠다. 난방을 안 한 오후의 게스트하우스는 썰렁하다. 피곤이 밀려오는데도 잠이 깊지 않다.

저녁식사를 한 후 다시 들어와 누웠다. 내일은 좋아지겠지? 걱정이다.

 

마돈나하우스의 도서실

다음날은 도서실에 새로 들어온 책을 비닐로 포장했다. 도서실 공간이 별도로 있는 건 아니다. 메인하우스의 1층 일부, 그리고 식사도 하고 강의도 듣고 파티도 하는 다이닝홀 벽면이 모두 책장으로 둘러싸여 있다. 책마다 도서관처럼 잘 분류해서 찾기 좋게 시스템이 되어 있는데. 하나하나 표지를 비닐로 싸는 일을 하다 보니, 옛 생각이 났다. 어린 시절 교과서를 새로 받으면 이렇게 포장을 하곤 했지.

저녁 설거지를 끝내고 8시20분에 숙소로 돌아왔다. 매주 화, 목요일은 early night이라 하여, 평소보다 일찍 숙소에서 쉬는 날이다. 그런데 또 게스트들의 미팅을 시작하는 게 아닌가? 10시가 다 되도록 10여명이 둘러 앉아 끝도 없이 수다를 피우는데. 젊은 게스트들은 특히 말이 빨랐다. 슬그머니 뒤로 빠졌다. 세탁실에 내놓기 위해 손바느질로 속옷과 양말에 이름표를 달면서 생각했다. “이렇게 말도 알아듣지 못하면서 여기 왜 있는 거지?” 점점 마음이 가라앉았다.

갈등의 시간, ‘왜 여기 있지?’

여기 온 지 만 2주일이 흘렀다. 내일 수요일 오전에 신부님의 강의, 목요일은 점심이후 자유시간이고, 금요일 저녁부터 24시간 동안 홀로 명상하는 장소 ‘푸스티니아’를 다녀오면 이곳 생활에도 한 획을 긋게 되겠지. 그런데 채플시간에도 기도에 집중을 못하고 있다. 영성, 기도, 생태적인 생활. 마음과 머리는 평화가 가득해도 이게 무념무상인지 몸이 힘들어 멍한 상태인지 구별을 못하겠다. 명징하게 깨어 있는 상태가 아니다. 아침부터 밤까지 하느님(God), 주님(Lord)을 입에 달고 사는 이들의 꽉 짜인 생활이 좀 질릴 때도 있다. 영어가 안돼서 그런가? 갈등이 생긴다.

11월 21일 수요일. 와우! 아침에 일어나니 온 세상이 하얗다. 이곳 생활에 대해 회의(?)하고 있는 내 마음을 하느님이 아셨나? 설경의 아름다움이 나의 복잡한 마음을 확 날려준다. 하지만 오후가 되어 햇빛이 비치면 눈은 금방 녹아버리고, 내 마음도 다시 왔다 갔다 한다.

아침 식사 후엔 폴 신부의 강의를 들었다. 역시 거의 알아듣지 못했다. 오후엔 내내 마늘을 깠다. 이곳 마늘은 한국 웬만한 마늘의 2-3배 크다. 마늘을 갈아서 야채에 섞어 나오는 샐러드는 내가 아주 좋아하는 메뉴다. 오후 휴식시간, 그리고 저녁 식사 후에도 디저트로 케익을 먹었다. 달콤했다. 생활이 단순해지니 먹는 것이 차지하는 비중이 더욱 커진다.

저녁식사 후 8시부터 크리스마스 4주를 앞둔 대림절에 대한 강의가 있었다. 그 시간이 힘들었다. 못 알아들으니까.

 

마돈나하우스의 산책길 

 

잠자리의 일기, 마가리타의 카드

잠자기 전 침대에 앉아 일기를 쓰고 있다. 지금도 손에서 마늘냄새가 난다. 여러 마음이 오간다.

‘주은경, 섣부른 판단은 하지 말자. 내가 모르는 세계에 대해 존중하자. 충분히 경험하고 관찰하자. 그게 먼저다.’

해보고 싶은 일이 고개를 든다. 마돈나하우스 체험에 대해 글을 써볼까? 여기 사람들 몇 명을 인터뷰하고 녹음을 하자. 이런 생각을 하니 조금 기운이 돈다. 영어 못한다고 기죽지 말자. 내가 할 수 있는 만큼 하자. 느끼고 만나고 경험하기 위한 시간. 그래. 요 며칠 처음 본 것을 일기에 적어볼까?

‘눈 내리는 호숫가. 흩날리는 눈발. 가로등에 비치는 눈보라. 해질녘 서늘하게 푸른 빛 감도는 눈밭. 그 눈밭이 가로등에 비쳐 반짝반짝 빛나는 눈의 결정체, 뽀드득 거리는 내 발자국 소리. 길가의 통학버스. 간간히 마주치는 사람들의 눈인사, 손 인사. 사무실에서 나직나직 전화 통화하는 소리. 누군가 사무실 문을 열고 들어올 때의 차가운 바깥바람. 잠자기 전 여자들의 까르르 수다소리.’

아하. 그러고 보니 오늘 마돈나하우스를 떠난 브라질계 캐나다인 게스트가 작은 카드를 주고 갔지.

“은경. 너를 만난 건 정말 멋진 축복이었어. 너의 친절과 인내심에 감사해. 이곳에서의 시간이 좋은 경험이 되길, 그리고 하느님의 축복과 함께 충만하기를. 마가리타 토레스.”

울컥 목이 멘다. 열흘 남짓 함께 지냈던 마가리타. 그가 따뜻한 응원의 선물을 준 것이다. ‘마가리타, 고마워. 너의 기도처럼 이 시간이 내 인생의 축복이 되길. 너에게도 같은 시간이 되길 기도할게.’ 침대에 누워 두 손을 모았다. 깊고 고요한 밤이었다.

 

주은경
1980년대 인천에서 노동자교육활동을 했다.
1994년부터 15년 동안 다큐멘터리 작가로 일하며
KBS <추적60분> <인물현대사> <역사스페셜> 등을 집필했다.
1999년 성공회대학교 사회교육원 기획실장으로
노동대학 첫 5년의 기반을 닦았다.
2008년부터 참여연대 아카데미느티나무에서
민주주의학교, 인문학교, 시민예술학교를 기획 운영하다
2020년 말 원장으로 정년퇴임했다.
현재 시민교육연구소 ‘또랑’ 소장.
지은 책으로 <어른에게도 놀이터가 필요하다>,
함께 쓴 책으로 <독일 정치교육현장을 가다>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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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와 2024-03-22 20:01:27
주샘 글 읽다보니 저도 순례 여행 떠나고 싶네요. 눈 내리는 호숫가 풍경, 겨울 밤 도란도란 얘기 나누는 소리, 갈등이 생길 때 다시금 마음을 새롭게 다잡는 모습, 공동체 일원으로 일하고 기도하는 모습, 자기 전 홀로 묵상하며 하루를 돌아보는 일...경건한 마음으로 그곳에 주샘과 함께 했던 모든 이들께 두손 모아 축복의 말을 전하고 싶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