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님의 기도로 보는 영화 ‘파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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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님의 기도로 보는 영화 ‘파묘’
  • 김선주
  • 승인 2024.03.04 10: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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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선주 칼럼

교회에서 가장 많이 암송하는 것이 <주님의 기도>이다. 그것은 이천 년 동안 그리스도교 안에서 예배 의례를 장식하는 가장 장엄하고 성스러운 기도문이었다. 하지만 이제는 너무 상투적으로 암송되고 있어 통속화되었다. 그 의미와 메시지를 잘 알지 못할 정도로 문자 이미지에 사로잡혀 버렸다. 그런데 <주님의 기도>는 초월적 종교심을 위한 기원문이 아니다. 그것은 강력한 힘의 위계에 압제당하는 사회적 약자들의 탄원서다.

‘나라(국가)’, ‘양식’, ‘용서’, ‘권능(권력)’ 같은 주기도문의 주요 단어들은 정치, 경제, 법률 등에 관한 것들을 함의한다. <주님의 기도>는 단순한 종교적 기원문이 아니라 인간의 역사에 나타나고 있는 폭력적 사건을 해결하고자 하는 사회적 염원이 깃들어 있다. 이것은 현실적이면서 동시에 초월적인 종교적 서사성을 내포한다.

눈 밝은 이는 <주님의 기도>의 행간에서 이러한 워터마크를 볼 수 있다. 또한 그것의 사회적 배경에서 몇 개의 플롯을 찾을 수 있다. 그 플롯들이 상호 관계하여 하나의 주제를 향해 가고 있는데, 그것은 ‘하느님 나라’다. 인간이 지배하고 통치하는 나라가 아니라 절대선(絶對善)인 하느님이 다스릴(권력을 잡을) 때, 우리에게 어떤 정치, 경제, 사회적 보상이 주어질 것인가를 상상하는 것이다. 그것이 하나님 나라를 통해 상상하는 사회학적 이상이다.

예수는 하느님 나라의 이상을 초월적 신비에서 찾은 게 아니라, 지금 여기에서 일어나고 있는 정치적 박해와 경제적 불평등, 사법적 부정의에 대한 반성에서 찾았다. 하느님 나라는 인간이 이 땅에 박아 놓은 악의 뿌리를 뽑아내는 것이며, 그것의 실현은 우리가 하느님 나라의 백성이 됨으로써 가능해진다. 힘을 주어 억지로 뽑아내려는 정치적 투쟁이 아니라 ‘사랑’으로 모든 것을 녹여내는 데 있다.

삼일절이다. 민족대표를 자처한 33명의 사회 지도자가 작성했다는 기미독립선언문은 민족적 정체성을 분명히 하고 조선이 제국의 야만에 압제 받지 않을 권리가 있음을 선포한다. 그런데 그 33명의 민족 대표는 개신교(16명), 천도교(15명), 불교(2명)가 연대한 것이다. 이들을 민족대표라는 거창한 이름으로 부르기 전에 각 종단에 속한 종교인으로 볼 때, 삼일절의 의미는 새로워진다. 기미년(1919년)에 종교는 별개로 분화된 교조적 집단이 아니라 민족의 독립과 자강을 위해 협력하는 집단이었다. 야만적인 제국의 압제 아래 신음하는 백성을 출애굽시켜 하느님 나라의 백성으로 만들기 위한 일이었기 때문에 종교적 대립을 넘어 그것을 우선하는 가치로 삼을 수 있었던 것이다.

바울이 <로마서>에서, 할례가 우선이냐 믿음이 우선이냐를 논하며 종교적 형식과 정체성보다 하느님을 신뢰하고 그의 뜻을 온전히 받드는, 믿음이 우선한다고 교설한 바와 같이 기미년 그리스도인들에게는 조국의 독립과 조선인의 자유가 우선하는 가치였다. 그리스도교 신앙은 시대적 요구와 가치를 실현하기 위해 종교적 형식을 넘어설 수 있었다. 천도교, 불교와 손을 잡지 않을 이유가 없었던 것이다.

 

영화 <파묘>를 구성하고 있는 여러 가지 플롯 중에 종교가 나의 비상한 관심을 끌었던 이유가 여기에 있다. 음양오행과 풍수, 샤먼과 주술, 지관(미신)과 교회 장로(기독교) 들이 어우러져 오컬트를 연출하며 일제의 억압과 식민 잔재로 인한 상처를 치유한다. 일제에 대한 피해 의식과 상처 받은 민족 감정 위에 이야기를 입혀 감독이 우리에게 전해 주고 싶은 것은 ‘가족 서사’다. 서로 다른 종교적 신념과 우주관을 가졌지만 이들은 대립하거나 충돌하지 않고 하나의 목적을 향해 협력하는 가족으로 그려지는 것이다. 가족은 혈통보다 사랑으로 맺어진 관계가 우선하기 때문이다.

영화의 라스트 신에서 지관(地官) 상덕이 자신의 딸 결혼식장에서 가족사진을 찍으며 무당인 화림과 교회 장로인 영덕(고장로)을 한 자리에 불러들인다. “가족도 아닌데 뭘~”이라는 화림의 말에 상덕은 “우리는 다 가족이야”라고 말한다. 그렇다, 가족이란 동일한 유전적 형질을 공유한 집단이 아니라 하나의 서사를 공유한 사람들의 연대다. 민족 또한 하나의 언어를 사용하고 역사와 문화를 공유한 사람들이 느끼는 동질감의 외연이다.

<파묘>는 종교적 이질성을 뛰어넘어 하나의 서사를 공유하며 한 가족으로 민족적 대의를 이루어가는 소셜 오컬트 히스토리 무비다. <파묘>는 삼일절에 종교의 본질과 예수가 가르쳐준 <주님의 기도>의 맥락을 생각하며 볼 수 있는 좋은 영화다. 그리스도인들이 생각 없이 <건국 전쟁> 같은 가짜 이미지에 끌려다니지 말고 <파묘> 같은 영화를 사유하며 볼 수 있으면 좋겠다.

생각하지 않고 끌려 다니면 그건 믿음이 아니다. 그건 죄악이다.

 

김선주 목사
<한국교회의 일곱 가지 죄악>, <우리들의 작은 천국>, <목사 사용설명서>를 짓고, 시집 <할딱고개 산적뎐>, 단편소설 <코가 길어지는 여자>를 썼다. 전에 물한계곡교회에서 일하고, 지금은 대전에서 길위의교회에서 목회를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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