싸움의 흔적과 싸움의 기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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싸움의 흔적과 싸움의 기술
  • 김선주
  • 승인 2024.02.26 10: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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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선주 칼럼
사진출처=pixabay.com
사진출처=pixabay.com

우리 머리엔 구멍이 많았다. 그것을 쥐구멍이라고도 했고 쥐 파먹은 자리라고도 했다. 그땐 쥐가 많아서 무, 고구마 등속을 갉아먹고 곡식 가마니를 파먹는 것을 늘상 경험하던 터라, 머리에 난 구멍을 쥐 파먹은 것으로 쉽게 연상했던 것이다. 초등학교 땐 머리 숯에 가려 안 보이던 남자 녀석들의 쥐 파먹은 자리가 중학교에 들어가면서 드러나게 된다. 그땐 중학교에 입학하기 위한 첫 단계가 머리를 빡빡 미는 것이었다. 중학교 입학식 날 낯설고 기이한 서로의 머리통들을 바라보면서 키득거리던 기억이 난다.

쥐 파먹은 자리는 두피 질환으로 탈모가 생겼던 자리이거나 대부분 상처로 인해 머리털이 자라지 않아 생긴 것들이다. 이발소에서 머리 깎는 기계를 통해 곰팡이균이 옮았다고 해서 ‘기계충’이라 했다. 이 두피 질환은 머리카락이 빠지고 진물이 나서 딱정이가 생기면서 그 부분에 탈모가 일어났다. 그리고 다시 머리가 자라지 않아 빠꼼하게 구멍이 뚫린 자국처럼 탈모 상태가 유지된다. 그 부분이 마치 쥐가 파먹은 것처럼 동그랗게 두피가 드러났던 것이다. 가난의 흔적이다. 하지만 그것은 가난의 흔적이면서 동시에 싸움의 흔적이다. 두피에 번식한 곰팡이균과 면역체계의 싸움의 흔적이다.

인간은 태어나면서부터 싸움을 통해 생명을 연장해간다. 수많은 세균과 바이러스와의 싸움에서 생물학적 승리를 통해 성장한다. 이런 싸움으로 자신에게 유익한 것과 그렇지 않은 것을 구별하는 지혜를 얻게 되었다. 사람이 먹을 수 있는 것과 먹어서는 안 되는 것에 대해 분별할 수 있게 한다. 병이 될 만한 더러운 환경과 그렇지 않은 환경을 이해하게 한다. 그 싸움의 과정을 통해 인간은 보건과 위생의 관념을 스스로 터득하고 생장의 과정에서 유리한 지위를 유지할 수 있었다.

그런데 쥐 파먹은 머리는 또 다른 싸움의 흔적이다. 외상(外傷)의 흔적이다. 두피에 찢어지는 상처가 생기면 그곳이 아무는 과정에서 탈모가 일어나고 상처에 다시 머리털이 자라질 않는다. 그래서 쥐 파먹은 자리가 원형이면 기계충에 의한 것이고 일자(一字), 혹은 브이자면 무엇에 맞아 찢어지거나 찍힌 자국이라는 걸 알 수 있다.

어릴 적 남자 녀석들의 놀이라는 게 대부분 막대기를 휘두르거나 돌멩이를 던지는 것들이었다. 자치기, 구슬치기, 같은 도구 놀이도 있었지만 오징어 가이상 같이 전투적인 몸놀이가 대부분이었다. 개흙마당에 맹수처럼 사납게 뒹굴며 사냥을 하다 옷이 뜯어지고 목이나 얼굴에 손톱 자국을 수여받는 일이 다반사였다. 전투가 극렬한 날은 멍이 들고 피부가 찢어지고 뼈가 부러지는 일도 있었다. 가끔은 진짜 싸움이 일어나서 막대기나 돌맹이로 상대방의 머리 가죽을 찢어놓기도 했다.

하지만 그런 것들은 아이들이 성장과정에서 생존을 위한 학습이었다. 위험한 상황으로부터 자기 몸을 보호하기 위한 지혜를 습득하는 과정이었다. 그리고 싸움을 통해 공격과 방어, 연대와 협력의 정신을 다지고 생존해 나가는 방법을 익히는 과정이었다. 같은 편끼리 공감하고 연대하며 상대편을 적대시하다가도 다시 적들과 한 팀이 되는, 새 판 짜기의 변혁을 학습하는 과정이었다. 이 과정에서 수많은 상처가 발생한다. 머리에 쥐 파먹은 자리는 그 상처의 흔적이며 싸움의 기술이 축척된 역사다.

두피가 찢어지는 상처를 입으면 우리는 대가리에 빵꾸났다고 말했다. 빵꾸난 자리에 담뱃가루를 붙이거나 된장을 바르는 것으로 치유될 수 있다는 위안을 받았다. 대가리에 빵꾸났다고 해서 그것으로 참을 수 없는 분노를 발하거나 고소를 하지는 않았다. 치료비를 요구하지도 않았다. ‘애들이 놀다가 생긴 일’이라며 가볍게 넘어갔다. “애들은 싸우면서 큰다”고들 했다. 큰다는 것은 신체의 발육을 말하는 게 아니라 지혜가 축적되고 인격이 성숙해지는 과정을 말한다. 어른들은 아이들이 싸우면서 ‘싸움의 기술’을 익힌다고 생각했던 것이다. 그 싸움의 기술은 다름 아닌 인생을 살아낼 만한 삶의 기술이었다.

싸움의 기술은 나의 적대자들과 어떻게 화해하고 하나가 될 수 있는가에 대한, 치유와 회복의 기술을 내포한다. 비 온 뒤에 땅이 굳어진다는 속담처럼 싸운 뒤 화해하는 방법을 아이들은 스스로의 학습을 통해 알아간다. 그것이 인간이 되어가는 과정이다. 성숙한 인격으로 자라는 과정이다. 싸우고 화해해 본 아이들이 지혜롭고 너그럽고 성숙한 어른이 될 수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싸움의 기술은 화해와 치유와 회복의 기술이다. 나이 먹었다고 어른이 아니라 싸움의 기술을 체득한 사람이 어른이다. 나이가 많아서 어른이 아니라 인격적으로 성숙하여 타자와의 거리를 계산할 줄 알고 적대감 속에서도 공감의 능력을 키워갈 줄 알며 패배를 깨끗이 인정하고 상대방의 승리를 축하할 줄 알아야 어른이다. 자기와 타자를 동시에 치유할 수 있는 기술을 가져야 어른이다.

그런데 요즘 학교에서 아이들이 싸우면 웃픈 일이 일어난다. 싸움이 그리 심각한 것이 아닌데도 학부모가 처음부터 깊이 개입하여 교사의 지도와 자율성을 빼앗아버린다. 기계적으로 학폭위를 열어 잘잘못을 가려 가해자와 피해자로 나누어 버리고 가해자를 법리적으로 처벌해 버린다. 아이들이 싸울 기회도 없고 스스로 화해하고 치유할 기회도 박탈해 버린다. 엄마 아빠의 보호 아래 화초처럼, 고양이처럼, 강아지처럼 자란 아이들은 오직 경쟁을 통해서 승리하는 법만 배운다. 이런 아이들은 상대방을 적대시하고 조롱하고 비하하는 일을 싸움의 기술이라고 생각한다. 이준석, 박지현, 류호정 같은 MZ세대 정치인들의 특징이다.

이강인이 손흥민에게 대들었다는 일로 지난 며칠 동안 온 언론과 SNS가 그를 매장시키기라도 할 듯 흥분해서 난리를 쳤다. 축구협회 정몽규 회장이 저질 언론 플레이를 한 탓이다. 그는 대가리에 빵꾸도 안 나본 인간이다. 재벌가의 아들로 호사를 누리며 살아온 그는 길거리에서 아이들과 부딪치며 대가리 빵꾸나도록 싸우고 화해하며 치유 받아본 경험이 없는 인간이다. 오직 자기의 이기적 욕망을 위해 싸우는 재벌가의 유전자만 물려받은 인간이다.

우리의 대가리엔 상처가 많았지만 그것을 상처라 말하지 않았다. 상처를 유발하고 상처를 당하는 아이들 모두가 하나의 서사를 공유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상처를 유발한 우리의 놀이에는 삶과 죽음, 부활과 재생, 적대감과 동질감, 동지적 애정과 타자에 대한 적대감, 화해와 협력, 치유와 회복 같은 거대한 서사의 강물이 흘렀기 때문이다. 이 서사의 강물에 한 번도 발을 담가보지 못한 자들이 지금 대통령이 되고 여당 대표가 되고 국무총리가 되고, 되고, 되고, 되고, 말았다. 이 시대가 불행하고 고통스러운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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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선주 목사
<한국교회의 일곱 가지 죄악>, <우리들의 작은 천국>, <목사 사용설명서>를 짓고, 시집 <할딱고개 산적뎐>, 단편소설 <코가 길어지는 여자>를 썼다. 전에 물한계곡교회에서 일하고, 지금은 대전에서 길위의교회에서 목회를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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