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회가 '조직'이 될 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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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회가 '조직'이 될 때
  • 최태선
  • 승인 2024.02.19 12: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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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태선 칼럼
사진출처=pixabay.com
사진출처=pixabay.com

나는 오늘도 성채가 되어 하늘을 찌르고 있는 교회 건물들을 본다. 대성당만 그런 것이 아니다. 작은 교회들도 건물 위에 종탑을 세워 위용을 과시하기는 마찬가지다. 오래 전 아는 목사 한 사람이 교회를 세우며 가장 돈이 많이 들어간 곳이 교회 종탑이라는 말을 했다. 벌써 수십 년 전인데 일천오백만 원이 들었다고 했다. 또 내가 다니던 직장 근처의 한 교회의 지붕에 구리판을 씌우는 공사가 있었다. 오래 되어 정확한 금액은 생각나지 않는다. 하지만 그 공사에 수억 원이 들어갔다. 구리판에 산화구리가 형성되면 거의 반영구적이 되기 때문이라는 이유도 들었다.

왜 이렇게 그리스도인들이 교회 건물에 치중하게 되는가. 그것은 교회가 '예수의 제자들의 모임'이라는 본질을 상실했기 때문이다. 예수의 제자들의 모임, 혹은 사회로서의 교회는 결코 조직으로 환원되지 않는다. 조직이 되는 순간 교회의 생명은 사라진다. 교회가 유기체라는 것은 곧 생명이 있음을 의미한다.

오늘날 그리스도인들은 교회가 조직이 아니라 유기체여야 한다는 사실을 수긍한다. 하지만 결코 유기체를 향한 발걸음을 내딛지는 못한다. 그 근본적인 이유는 그리스도인들이 예수의 제자들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렇게 오래 전에 교회는 예수의 제자 아닌 그리스도인들이 모이는 조직이 되었다. 생명이 사라졌음을 아랑곳하지 않는다. 그러면서도 유기체라는 착각을 유지한 채 건재하고 있다. 사람들은 내가 생명이 사라졌다고 말하는 것을 대수롭지 않게 여긴다. 내가 대수롭지 않은 사람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하느님은 때로는 어린아이의 입을 빌려 당신의 말씀을 하신다.

교회가 그렇게 되고 만 이유를 생각해보자.

“가장 결정적인 것은 감독들이 지배하는 교회가 된 것이다. 교회의 성직제도가 자리를 잡고 그로 인해 인간이 만든 조직과 종교형식이 마침내 성령의 인도하심과 성서의 가르침을 완전히 대신하게 되었다.”(<이단의 탄생과 그 과정>에서 인용)

이 사실이 의미하는 것이 무엇인가. 교회의 머리가 그리스도가 아니라 감독이 된 것이다. 이 사실은 너무도 분명하다. 그러나 오늘날 그리스도인들은 교회의 머리가 그리스도시라고 말하면서도 실제로 감독들이나 성직자들을 교회의 머리로 인식한다.

“너는 베드로다. 나는 이 반석 위에다가 내 교회를 세우겠다. 죽음의 문들이 그것을 이기지 못할 것이다.”

인간은 결코 교회의 머리가 될 수 없다. 그리스도인 지도자들은 교회의 반석이 된다. 여기서 반석은 밑바닥을 의미한다. 그러면 생각해보라. 오늘날 교회의 지도자들이 교회의 밑바닥인가. 교회의 지도자들을 보면서 그들이 반석이라고 생각할 수 있는가. 다시 한 번 분명히 말하지만 오늘날 그리스도인 지도자들은 교회의 가장 밑바닥이 아니다. 그들은 가장 높은 곳에서 머리 역할을 하고 있다. 그리고 이 사실이 얼마나 참람한 일인지를 인식조차 못하고 있다. 그것은 곧 그리스도를 참칭하는 것이다.

그러나 주님께서는 내게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내 은혜가 네게 족하다. 내 능력은 약한 데서 완전하게 된다." 그러므로 그리스도의 능력이 내게 머무르게 하기 위하여 나는 더욱더 기쁜 마음으로 내 약점들을 자랑하려고 합니다.

바오로 사도의 이 말을 잘 음미해보라. 그리스도인 지도자가 왜 밑바닥(가장 낮은 곳)에 위치해야 하는 지를 분명하게 알 수 있다. 그리스도인 지도자가 가장 약해질 때, 다시 말해 가장 낮은 자가 될 때 그리스도의 능력이 그 사람에게 머문다. 교회를 지키는 것은 사람의 능력이나 돈의 힘이 아니라 그리스도의 능력이라는 사실을 우리는 여기서도 확인할 수 있다. 그리고 그렇게 드러나는 그리스도의 능력이 바로 성령의 역사이며 그것이 바로 교회의 생명으로 드러나는 것이다.

돈에는 유사전능성이 있다. 오늘날 그리스도인들은 교회를 조직으로 만들어놓고 돈의 유사전능성에 의지하고 있다. 이것은 너무도 분명한 사실이다. 그럼에도 그들은 돈의 유사전능성을 그리스도의 능력으로 오인하고 있다. 그런 사람들은 여전히 교회에 생명이 있다고 느낄 수밖에 없다. 그래서 성직자들은 강해지고, 자아가 부풀어 다른 사람들을 지배하고 다스린다.

약점을 자랑하는 약한 그리스도인 지도자에게 머무는 그리스도의 능력과 부족함이 없음을 자랑하는 강력한 오늘날 그리스도인 지도자에게 머무는 돈의 유사전능성을 구분할 수 없다면 조직이 된 교회 안에 안주할 수 있다. 물론 그런 교회는 맘몬의 신전이며 그 교회에 안주하는 사람은 그리스도인이 아니라 맘몬의 하수인이다. 이 끔찍한 현실을 본인만 모를 뿐이다. 더구나 수많은 사람들이 모여 자신들이야말로 참된 그리스도인이라 믿으며, 손에 손을 잡고 멸망의 대로를 달려간다.

뿐만이 아니다. 그런 그리스도교 지도자들은 조직이 된 교회에서 벗어나면 구원이 없다고 가르치기까지 한다.

“200년경에 태어난 카르타고의 감독 키프리안은 교회 최초로 가톨릭교회(Catholic Church)란 말을 사용하면서 교회 밖에는 구원이 없다고 가르쳤다. 그는 교회가 조직이 되는 것에 반대하는 노바티안에 대해 언급하면서 그리스도 교회 안에 있지 않은 사람은 그리스도 교인이 아니며 오직 하나의 교회와 하나의 감독만이 있다고 주장했다.”(같은 글에서 인용)

다시 한 번 참람하다는 말 이외에는 작금의 상황을 설명할 길이 없다. 여기서 우리는 조직이 된 교회와 유기체인 교회의 차이를 분명하게 구분할 수 있다.

예수께서 그들에게 대답하셨다. "가서, 너희가 듣고 본 것을 요한에게 알려라. 눈 먼 사람이 보고, 다리 저는 사람이 걸으며, 나병 환자가 깨끗하게 되며, 듣지 못하는 사람이 들으며, 죽은 사람이 살아나며, 가난한 사람이 복음을 듣는다. 나에게 걸려 넘어지지 않는 사람은 복이 있다."

오실 그이가 당신이 맞느냐는 세례 요한의 제자들에게 예수님께서 하신 대답이다. 예수님께서 하신 대답을 통해 우리는 이미 이곳에 임한 하느님 나라와 희년의 구현을 볼 수 있다. 우리는 여기서 그리스도의 능력이 머무는 교회와 맘몬의 유사전능성이 작동하는 교회의 차이를 보다 분명하게 볼 수 있다.

그리스도의 능력이 발휘되는 교회에서 일어나는 일은 예수님께서 예로 드신 것처럼 생명으로 풍성해지는 것이다. 하지만 조직이 되어 생명이 없어진 교회에서 일어나는 일은 각종 예술품으로 장식된 화려하고 웅장한 교회 건물을 짓는 것과, 돈으로 공공선을 추구하는 일과, 엄숙한 종교의식이 치러지는 것이다.

그러므로 나는 오직 하나의 교회와 하나의 감독만이 있다고 주장하는 교회와 (그) 교회 밖에는 구원이 없다고 가르치는 교회야말로 이단이라고 말할 수밖에 없다.(실제로 모든 이단들이 이것을 주장한다) 조직이야말로 이단의 상징이다.

 

최태선
하느님 나라의 시선으로 살아가는 
55년생 개신교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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