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판하지 말라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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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판하지 말라고요?
  • 김선주
  • 승인 2024.01.15 10: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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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선주 칼럼

교회 사람들이 보수화되고 순종적으로 잘 길들여질 수 있는 몇 개의 성경 구절들이 있는데 그 중 하나가 마태오복음 7장1절의 “비판을 받지 않으려거든 비판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자기 생각과 판단을 포기하고 거짓된 사람이나 그릇된 사태에 대해 침묵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이것이 예수님의 가르침이라고 믿는 것입니다. 하지만 예수님은 폭력적인 인간이나 부조리한 상황에 대해 침묵하라고 말씀하지 않았습니다.

’비판(criticism)이란 어떤 행동이나 사태에 대해 분별하고 평가하는 것입니다. 철학에서는 ‘인간의 지식과 사상, 행위 따위에 대한 기원, 타당성, 한계 등을 명백히 하여 평가’한다는 뜻으로 쓰입니다. 영어에서는 비판이란 말과 비평이란 말은 criticism으로 동일하게 사용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예술계에선 비평(비판)이란 말을 당연하고 자연스럽게 사용합니다. 감상비평, 문학비평, 분석비평, 문명비평 등과 같이 비평이란 말을 통해 대상의 예술적 가치나 심미성을 해석하고 평가하는 일을 합니다. 비판은 부정이 아닌 합리적인 해석과 평가입니다.

마태오복음 7,1의 ‘비판’이란 말이 헬라어성경 원문에는 ‘크리노(κρίνω)‘라고 되어 있습니다. 이는 히브리어 ’샤파트‘를 헬라어로 번역한 것인데, 심판하다, 처벌하다 등과 같은 법정 용어입니다. 재판관의 자리에서 내리는 사법적 판결(judgment)을 의미합니다. 거의 모든 영어 성경은 이 부분을 judge(재판)라고 번역했습니다.

유무죄의 판결은 법률에 근거하여 합리적으로 재판해야 한다는 뜻입니다. 그러므로 공적 재판으로써의 크리노(κρίνω)는 법과 정의가 실현될 수 있는 사법체계를 바탕으로 합니다. 상식과 법률에 의해 재판받을 권리가 모든 시민에게 평등하게 주어져야 한다는 뜻입니다. 검찰이나 재판관이 자기의 이해관계나 개인 감정에 따라 기소를 하거나 재판을 하지 말라는 뜻입니다.

부당한 재판을 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법률과 상식에 근거하여 합리적으로 재판하라는 뜻입니다. 혐의가 없는 사람에게 혐의를 두거나 거짓 증인을 세우는 행위, 증거를 인멸하거나 조작하는 행위, 언론에 피의 사실을 유포하여 여론 재판을 유도하는 행위 같이 더러운 재판을 하지 말라는 뜻입니다. 증거도 혐의 사실도 없는 사람을 기소하고 300번이 넘는 압수수색을 강행하는 짓을 하지 말라는 뜻입니다.

“비판을 받지 아니하려거든 비판하지 말라”는 말씀은 더러운 재판을 하는 권력자들이 같은 방법으로 재판에 회부되어 몰락할 것이라는 뜻입니다. 그것이 권력의 속성이기 때문입니다. 필요할 때는 서로 이용하다가도 이해관계가 갈릴 때는 서로 배신하여 짓밟는 게 권력입니다. 이 과정에서 악독한 권력자는 사법권을 이용합니다. 이 정부가 검찰을 동원하여 캐비닛 정치를 하는 것처럼 말입니다.

예수님이 비판하지 말라는 말씀을 한 배경에는 당대의 공적 법률기관이 사적인 감정을 개입시켜 무고한 시민에게 혐의를 뒤집어씌우거나 유죄 판결하는 식민지 상황이 있습니다. 로마 제국이 식민지 유대에서 행하는 사법적 판결에서 그러한 일이 많았던 것입니다. 일제 강점기 때 검경과 재판관들이 보여준 행태를 우리는 어렵지 않게 추론할 수 있습니다. 권력자의 부조리한 행태는 국가라는 거대한 체제 안에 숨겨지는 반면, 개인적으로 일으키는 민형사상의 작은 범죄는 날것으로 드러나게 됩니다.

비판(심판)하지 말라는 말씀 뒤에 이어지는 ‘형제의 눈 속에 있는 티끌과 네 눈의 들보’의 대조는 바로 이러한 구조 하에서 일어나는 사법 폭력에 대한 메타포입니다. 부조리하고 악독한 권력자는 자기 권력을 이용해 법을 사적으로 이용합니다. 국가 권력을 자기 이익을 위한 도구로 사용하는 것입니다.

종교가 국가 권력과 야합하게 되면 이러한 맥락을 무시하고 사적인 영역에서만 성경을 해석합니다. ‘비판하지 말라’를 담임목사를 비판하지 말라, 정부를 비판하지 말라, 는 뜻으로 가르칩니다. 그러면서도 자기와 이해를 달리하는 정치세력에 대해서는 하느님의 이름을 들어 비판합니다. 비판이란 말이 조지 오웰의 소설 <1984>에 나오는 것처럼 자기검열의 수단이 되어버립니다. 그것을 좋은 믿음의 증거라고 배웁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그런 믿음을 가르치지 않았습니다. 도대체 누구에게 배운 겁니까?

 

김선주 목사
<한국교회의 일곱 가지 죄악>, <우리들의 작은 천국>, <목사 사용설명서>를 짓고, 시집 <할딱고개 산적뎐>, 단편소설 <코가 길어지는 여자>를 썼다. 전에 물한계곡교회에서 일하고, 지금은 대전에서 길위의교회에서 목회를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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