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도 별이다, 울지 마라, 아들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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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도 별이다, 울지 마라, 아들아
  • 김선주
  • 승인 2023.12.17 13: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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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선주 칼럼
사진출처=pixabay.com
사진출처=pixabay.com

한 줌의 가루가 된 아버지를 자연으로 돌려보내고 오랫동안 붙박이처럼 서 있었습니다. 아무도 없는 공터에 혼자 버려진 아이처럼 황망했습니다. 아버지의 마지막 뒷모습이 그곳에 남아 있어 무릎 사이에 머리를 박고 한참을 울었습니다. 울다 보니 해가 져서 어둠이 내 옷깃을 적시고 있었습니다. 밝은 별 몇 개가 어둠의 물결을 타고 나에게 흘러왔습니다. 별에게서 아버지의 따뜻한 체온이 느껴졌습니다.

우리는 모두 별이었습니다. 아버지도 별이었고 할머니도 할아버지도 별이었습니다. 할아버지의 할아버지와 그 할아버지의 할머니들도 다 별이었습니다. 한 사람이 이 땅에 태어나는 것은 신혼부부의 신접살림 집에 가구가 들어오듯 별 하나가 들어오는 것입니다. 그 과정을 우리네 조상들은 인격적인 설화를 통해 구현하였습니다. 삼신할머니가 이 지구에 아기를 점지해 주었다고.

유아 사망률이 높았던 시절 우리 조상들은 출산과 양육에 대한 갈망을 외부의 대상에 투사하였는데, 그것이 별이었습니다. 밤하늘에 빛나는 별들을 인격화하여 어머니가 출산하는 안방의 가장 따뜻한 자리로 모셔왔던 것입니다. 환인, 환검, 환웅으로부터 출발한 삼성(三聖)은 플레이아데스성단의 큰곰자리 별이 인격화된 것입니다. 이 별을 인격적 서사의 주인공으로 초대한 것이 삼신할머니입니다. 그러니 우리는 모두 별에서 온 셈입니다.

사람이 죽었을 때 시신을 눕히는 나무판자를 칠성판이라 합니다. 북두칠성을 말하는 것입니다. 대지의 중력에서 벗어난 망자는 비로소 저 우주의 일곱 별 위에 초연히 눕게 됩니다. 우리는 모두 별에서 와서 별로 돌아가는 존재라는 것을 우리 조상들은 생각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천체의 운행이 지구의 기후와 농사에 영향을 미치기 때문에 별을 숭배한 것이 아니었습니다. 존재의 심연에서 춤추는 우주를 보았던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우리는 우주의 먼지 같은 행성에서 미생물처럼 꼬물거리며 의미 없이 살다 죽어가는 존재가 아닙니다. 존재의 심연에 끝을 알 수 없는 광대한 우주가 역동하는 ‘사람’입니다. 우주의 별들 또한 불타는 가스 덩어리가 아니라 존재의 심연에서 빛나는 신비한 생명입니다. 그래서 사람들은 가슴에 다 자기 별 하나씩을 간직하고 삽니다. 자기 별이 없는 사람은 그냥 단백질 덩어리에 불과합니다. 우리는 모두 별을 품고 생명과 존재가 얼마나 신비한지 느끼며 살았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모두 단백질 덩어리로 뭉쳐있는 육체가 아니라 밤하늘의 별처럼 펼쳐진 우주의 신비입니다.

그 신비가 중력의 압제를 벗고 우주의 심연으로 돌아가 별 위에 눕게 된 것을 사람들은 죽음이라 부릅니다. 죽음은 별에서 온 생명이 다시 별로 돌아가 그 신비한 빛을 지상의 생명들에게 비추게 된 우주적 전회(轉回)입니다. 지상에서 한 사람의 생명이 호흡을 멈추면 우주에서 별들의 자리가 바뀝니다. 별들은 물리법칙에 따라 중력에 의해 운동하는 물질이 아니라 지상의 생명이 태어나고 숨쉬고 숨이 멎는 과정에 대한 은유입니다.

그렇습니다. 우주는 지상의 생명과 존재에 대한 은유입니다. 삶은 우주며 인간은 별입니다. 저 별들 위에 누워 계신 아버지가 고개를 돌려 날 바라보는 것 같습니다. 아버지의 별이 내 눈가에 뜨겁게 흐르며 나를 다독입니다.

“너도 별이다. 울지 마라, 아들아.”

 

김선주 목사
<한국교회의 일곱 가지 죄악>, <우리들의 작은 천국>, <목사 사용설명서>를 짓고, 시집 <할딱고개 산적뎐>, 단편소설 <코가 길어지는 여자>를 썼다. 전에 물한계곡교회에서 일하고, 지금은 대전에서 길위의교회에서 목회를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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