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회보다 나은 세상, 그럼 교회는 무얼 하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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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회보다 나은 세상, 그럼 교회는 무얼 하지?
  • 김광남
  • 승인 2023.12.04 12: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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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출처=photoplay.livejournal.com
사진출처=photoplay.livejournal.com

나는 오늘의 교회가 더는 세상이 알지 못하는 신령한 무언가를 세상에 가르칠 수 있다고 보지 않는다. 두 가지 이유에서다.

첫째, 이제 더는 중세나 근대 심지어 현대 초기처럼 교회가 세상보다 지혜롭지 않기 때문이다. 역사 속에서 오랫동안 설교자들은 그들의 청중보다 우수했다. 그러나 지금은 그렇지 않다. 오히려 상황이 역전되었다. 당장 내년도 신학교 입시생들의 학업 수준만 보아도 알 수 있다. 우리 때도 그랬지만 (나는 80학번이다) 지금도 신학교 지원자들의 학업 수준은 일반 대학 지원자들의 그것보다 높지 않다. 그렇다고 지금 신학교들이 일반 대학보다 월등하게 우수한 교수들로 학생들에게 남다른 차원의 특별 교육을 시키고 있는 것도 아니다.

신학교를 졸업한 이들 중 상당수는 설교자가 된다. 그러나 이 땅의 설교자들이 매주 강단을 통해 엄청난 분량의 말을 쏟아내는 것은 그들의 지적 혹은 영적 수준이 다른 직업을 가진 이들의 그것보다 높아서가 아니다. 오히려 그것은 단지 강단의 수효가 많아서일 수 있다. 즉 그들에게 다른 직종의 사람들보다 '마이크 잡을 기회'가 많이 주어지기 때문일 수 있다. 나도 대학 나와서 20년 넘게 직장생활을 했고 나름 높은 자리에까지 올라갔지만 사람들 앞에서 마이크를 잡은 기억이 손꼽을 정도다. 너도 알고 나도 아는 이 명백한 사실을 부정하는 것은 낯뜨거운 일이다. 인정해야 한다. 지금 교회가 설교자들을 통해 쏟아내는 말은 세상의 말보다 낫지 않다.

둘째, (나는 이게 훨씬 더 중요한 요소라고 여긴다) 그리스도교가 지난 2천 년 동안 가르쳐왔던 소중한 가치들이 이미 세상 곳곳에 스며들어 정착되었기 때문이다. 해서 지금 세상이 추구하는 것은 교회가 추구하는 것과 크게 차이가 나지 않는다. 교회의 오랜 희생과 노력 덕분에 이제는 세상도 교회 만큼이나 선을 추구하는 곳이 되어 있다. 물론 세상은 자주 실패한다. 그러나 그런 실패가 교회에는 없는가?

교회의 '선한 모습'과 세상의 '악한 모습'을 대조하면서 그러니 교회는 옳고 세상은 그르다고 말한다면, 세상은 아마 그 반대되는 것들을 대조하면서 동일한 주장을 할 것이다. 오늘날 세상의 추구가 교회의 그것과 비슷해졌다는 것은 교회로서는 감사할 일이지 유감스러워할 일이 결코 아니다. 오히려 그것은 교회의 영광일 수 있다. 그럴 가능성은 거의 없지만, 그 영광스러운 일의 완성이 곧 하느님의 나라가 될 것이다. 문제가 없었던 것은 아니지만, 그동안 교회는 주님의 가르침을 충분히 선포해 왔다.

그렇다면 교회는, 더는 교회의 가르침이 세상의 그것보다 낫지 않은 상황에서, 무엇을 할 것인가? 어려운 질문처럼 보이지만, 의외로 답은 간단할 수 있다. 교회의 삶의 중심을 '가르침'이 아니라 '실천'에 두는 것이다. 사회와 국가가 그 큰 덩치와 구성원의 다양성 때문에 답이 분명함에도 하지 못하는 일을 소규모 단위로 실천하는 것이다.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에 대해서는 이미 충분히, 아니 넘치도록, 가르쳐 왔고, 덕분에 이제는 교인들은 물론이고 교회 밖 사람들까지도 그 길에 대해 대충 알고 있지 않는가. 그렇다면 이제는 교회가 직접 그 가르침을 남들보다 앞서 실천해 보이는 게 옳지 않겠는가. 까놓고 말해, 자기들도 온갖 핑계를 대며 실천하지 못하는 것을 밤낮으로 선포만 해서 무엇하겠는가. 그런 선포에 누가 귀를 기울이겠는가.

설교자들을 낙담시키기 위해 하는 말이 아니다. 그보다는 오히려 그들을 위해서 하는 말이다. 교회에서 설교는 앞으로도 계속될 것이고 마땅히 계속되어야 한다. 그러나 설교의 지위와 위상은 점점 약화될 것이다. 그건 설교자의 성실함이나 능력의 문제가 아니라 청중과 세상의 변화 때문이다. 싫든 좋든 변화는 다가온다. 그리고 모든 변화는 고통스럽다. 하지만 그 변화를 무시하고 옛 길을 고집하는 것은 답이 아니다.

목회자/사목자들이 설교에 기울이는 노력의 1/10만이라도 실천에 기울인다면 교회가 그리고 목회가 지금보다는 나아지지 않을까 싶다. 물론 그러려면 교인들부터 설교에 대한 과도한 기대를 접어야 할 것이다. 지금 우리는 목회자도 청중도 지나치게 설교에 몰입하고 있다. 교회 공동체의 현재와 미래를 목사 한 사람의 설교 능력에 맡기는 것, 위험하고 어리석은 일일 수 있다.

 

김광남
종교서적 편집자로 일했으며 현재는 작가이자 번역자로 활발하게 활동 중이다.
지은 책으로는 <교회 민주주의: 예인교회 이야기>, 옮긴 책으로는 <십자가에서 세상을 향하여: 본회퍼가 말하는 그리스도인의 삶>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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