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배하는 남성'이라는 하느님 이미지는 우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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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배하는 남성'이라는 하느님 이미지는 우상이다
  • 한상봉 편집장
  • 승인 2023.11.26 21: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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엘리자베스 A. 존슨의 [신은 낙원에 머물지 않는다] 강독-17

하느님을 권력을 지닌 남성의 언어로 말해온 오랜 습관은 하느님을 여성으로 보는 것을 방해했다. 하느님에 대해 말할 권리도 남성에게 독점되었고, 시각미술 역시 남성과 하느님을 연결시키는데 익숙했다. 대표적인 경우가 로마 시스티나 성당의 천정화 ‘천지창조’이다.

미켈란젤로가 그린 이 그림에서 하느님은 영양상태가 좋은 백인 남성이다. 그는 자신의 이미지를 닮은 젊은 백인 남성을 창조하기 위해 손가락을 내밀었다. 여기에는 인종, 계급, 성이 반영되어 있다. 왜 젊은 하느님, 여성 하느님은 안 되는가? 결국 당대의 권력자의 모습으로 하느님이 형상화된 것이다.

여기에는 신학적으로 치명적인 약점이 있다. 먼저 불가해한 하느님을 망각하고, 하느님 이미지를 ‘지배하는 남성’이라는 판타지로 왜곡시킨다. 그래서 모든 공적 사적 기도에는 ‘아버지’ 하느님이 각인되어 일상적으로 ‘하느님은 남성’이라고 선전한다.

둘째, ‘한 분의 하느님, 한 분의 교황, 한 분의 황제’라는 콘스탄티누스 시대 이후 구호처럼, 지배 남성 이미지가 사회와 교회의 가부장제를 정당화해왔다. 하늘에서 그런 것처럼 땅에서 마찬가지로 남성은 권력을 향유한다. 그래서 메리 데일리(Mary Daly, 1928-2010)가 “만약 하느님이 남성이라면 남성이 곧 하느님이다”라고 한 말이 설득력을 가진다.

셋째, 하느님 남성 이미지는 여성이 하느님을 덜 닮았다는 점을 암시한다. 결국 여성은 영적 힘에서 소외되고, 하느님과의 관계에서 중재자 역할을 하는 남성(사제)에게 더 의존하게 된다.

그러나 예언자들은 살아계신 하느님을 우상화 하려는 모든 시도에 도전하고 있다. 하느님은 문자적으로 아버지, 왕, 주인이 아니라 훨씬 더 큰 존재이다. 남성 메타포가 하느님을 나타내는 데 쓰일 수 없는 것은 아니지만, 남성 역시 하느님의 은총으로 성화되고 구원받아야 할 존재라는 점을 잠시 잊게 만든다.

 

사진출처=amusingplanet.com
사진출처=amusingplanet.com

그래서 여성 메타포로 하느님을 부르는 행위는 우상파괴적 효과가 있다. 하느님은 무한한 삶의 근원이며, 거룩한 지혜이고, 내적 초월이며, 절대적 미래다. 어머니이며 연인이며, 친구이고 무한한 사랑이다. 세계를 감사는 거룩한 신비이며 오늘의 상황에서 새롭고도 풍부한 정의를 이루는 존재이다. 오래된 미래 그 자체이다.

그래서 하느님을 여성적 방식으로 표현하는 것은 예언자적 힘과 함께 작동한다.

 

한상봉 이시도로
<도로시데이 영성센터> 코디네이터
<가톨릭일꾼> 편집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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