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뮈의 이방인 "나를 위해 기도하지 말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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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뮈의 이방인 "나를 위해 기도하지 말라."
  • 김광남
  • 승인 2023.11.20 12: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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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광남 칼럼

카뮈의 <이방인>. 대학 때 친구들과 함께 읽은 책이다. 내용은 가물거리는데 담배 꼬나문 카뮈를 보니 담배연기로 자욱했던 학교 앞 술집 생각이 난다.

<이방인>의 주인공 뫼르소는 자기 엄마의 장례식에서 눈물 한방울 흘리지 않는다. 장례식 다음날 해수욕을 즐기고 옛 직장동료 여성과 영화 관람을 하고 섹스를 한다. 며칠 후 같은 아파트에 사는 친구 레몽의 애정 문제에 어쩔 수 없이 개입했다가, 레몽의 애인의 오빠 친구들과 싸움을 벌인다. 싸움 끝에 뫼르소는 친구 레몽에게 상처를 입힌 아랍인을 권총으로 살해한다.

구속되어 심문을 받는 과정에서 뫼르소는 반성의 기미를 내보이지 않는다. 재판정의 심리 과정에서도 마찬가지다. 검사는 뫼르소가 홀어머니의 장례식에서 최소한의 슬픔도 내보이지 않았고, 장례식 다음날 여자와 섹스를 했고, 총을 맞고 쓰러진 사람에게 다시 네 발의 총알을 박아넣는 등 인간으로서 할 수 없는 짓을 했다고 비난한다. 뫼르소는 그런 비난 앞에서 변명하지 않는다. 그의 변호사가 온갖 이유를 들이대며 그를 옹호하지만, 뫼르소 자신은 검사의 말만큼이나 변호사의 장황한 말에서도 피곤함을 느낄 뿐이다. 재판정은 아무런 반성도 하지 않는 그에게 단두대 형벌을 선고한다.

처형을 기다리던 어느날 사제가 감옥으로 찾아와 뫼르소와 면담한다. 사제는 뫼르소에게 죄를 시인하고 하느님의 자비를 구하도록 조언한다. 뫼르소는 그런 조언을 따르기를 거부한다. 안타까운 마음에 신부가 묻는다. "당신은 그런 아무 희망도 갖지 않나요? 죽으면 완전히 죽어 없어진다고 생각하며 살고 있는 건가요?" 뫼르쇠가 답한다. "네." 신부가 여전히 포기하지 않고 자기가 그의 편이며 그를 위해 기도하겠다고 말하자, 뫼르소는 신부에게 욕을 퍼붓고 자기를 위해 기도하지 말라고 말한다. 당황한 신부가 물러가자 뫼르소는 별이 쏟아져 내리는 평화로운 감옥에 누워 자신의 마지막에 대해 생각한다. 그의 소원은 "내가 처형되는 날 많은 구경꾼들이 모여들어 증오의 함성으로 나를 맞아 주었으면 하는 것뿐이었다."

<이방인>은 1942년에 불어로 출간되었다. 1954년에 독일의 어느 극작가가 그 작품을 각색해 연극으로 만들어 보겠다고 제안한다. 카뮈는 그 제안을 수락하는 편지에서 자신의 주인공 뫼르소에 대해 이렇게 말한다.

"뫼르소로 말하자면, 그에게는 긍정적인 그 무엇이 있습니다. 그것은 죽는 한이 있더라도 거짓말을 하지 않겠다는 결연한 거부의 자세입니다. 거짓말을 한다는 것은 단순히 있지도 않은 것을 있다고 말하는 것만이 아니라, 대부분의 경우 사회에 적응하기 위해서, 자기가 아는 것보다 더 말하는 것에 동의하는 것도 의미합니다. 뫼르소는 판사들이나 사회의 법칙이나 판에 박힌 감정들의 편이 아닙니다. 그는 햇볕이 내리쬐는 곳의 돌이나 바람이나 바다처럼(이런 것들은 거짓말을 하지 않아요) 존재합니다. 만약 당신이 이 책을 이러한 측면에서 해석해 본다면 거기서 어떤 정직성의 모럴을, 그리고 이 세상을 사는 기쁨에 대한 해학적이면서도 비극적인 찬양을 발견할 것입니다. 따라서 여기에서는 어둠이라든가 표현주의적 회화라든가 절망의 빛 같은 것은 관심의 대상이 아닙니다."

뫼르소는 그 누구에게도 동정을 얻지 못한다. 그럼에도 그는 참으로 자기 자신으로 존재하는 사람이다. 그에 대한 찬성이나 반대는 독자들의 몫이다. 그런데, 자기 자신으로 존재하는 정직한 인간 뫼르소가 '이방인'이라면, 그를 이방인으로 만드는 우리의 세상은 어떤 곳일까?

 

김광남
종교서적 편집자로 일했으며 현재는 작가이자 번역자로 활발하게 활동 중이다.
지은 책으로는 <교회 민주주의: 예인교회 이야기>, 옮긴 책으로는 <십자가에서 세상을 향하여: 본회퍼가 말하는 그리스도인의 삶>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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