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익동맹과 가치동맹 "가족이 원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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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익동맹과 가치동맹 "가족이 원수다"
  • 김선주
  • 승인 2023.11.20 11: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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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남에서 돌아온 삼촌은 정신착란 증세를 보였다. 고엽제후유증이라는 사실을 나중에 알게 됐다. 빨갱이라고 욕 먹던 김대중 정부에서 고엽제 후유증으로 인정받고 치료와 보상이 시작됐다. 삼촌은 정신이 멀쩡할 때는 새끼줄을 꼬고 밭일도 했다. 트랜지스터라디오에서 이미자와 패티킴, 김추자의 노래가 잔치국수처럼 흘러나올 때 삼촌은 월남전에서의 영웅 서사를 어린 조카에게 장황하게 들려주는 것으로 상처를 치유 받고 싶어 했다. 장가를 가고 신접살림을 차리기 전까지 나는 삼촌의 유일한 벗이었다.

전쟁의 상흔으로 환각과 망상, 환청에 시달리며 고통받던 삼촌이 성령 체험을 하면서 건강한 삶을 되찾은 것은 그의 나이 마흔이 넘어서였다. 그는 열심히 기도했고 교회에 충성 봉사했다. 전도의 열심이 있어 변두리 작은 교회를 부흥시킨 공로로 장로가 되었다. 84세인 숙부는 요즘 전화할 때마다 “우리 장조카 목사님을 위해 날마다 기도한다”고 말한다. 하지만 그것은 다른 목적을 위한 긴 사설에 불과하다. 이재명이 대통령이 안 된 게 하나님의 은혜이고 윤석열 대통령은 하나님이 내신 인물이니 대통령을 위해 기도하라는 것이 전화의 목적이다. 나는 숙부의 반복되는 그 말이 싫어서 전화 받기를 주저한다. 핏줄로 묶여 있는 끈끈하고 견고한 연대가 깨어지고 있는 중이다.

 

사진출처=pixabay.com
사진출처=pixabay.com

가족과 친족은 고대사회로부터 생존을 위한 혈연동맹이었다. 생존이라는 절박한 자기 이익을 위해 서로를 위해 희생할 수 있는 동맹이 혈연이다. 그런 면에서 혈연동맹은 이익동맹이며 이기적일 수밖에 없다. 이익동맹은 어떤 사회적 가치, 인류애, 도덕적 규범 같은 것을 뛰어넘는다. 정치도 마찬가지다. 자기 이익을 전제로 정치판에 발을 들인 사람들은 공공의 이익과 가치보다 자기 이익을 우선한다. 우리나라 보수정당이 그렇다. 보수적인 정치인들은 자기 이익만 충족되면 도덕적 가치나 공공성을 무시하고 비상식적인 말과 행동을 서슴지 않는다. 힘 있는 사람에게 굴종하는 것을 수치스럽게 생각하지 않는다. 이들은 돈과 권력에 개처럼 길들여지기 쉽다.

하지만 진보정치는 이익동맹이 아니라 가치동맹이다. 국가와 사회, 그리고 인간을 위해 무엇을 할 것인지 고민하는 데서 진보정치는 시작된다. 시작은 창대하였으나 나중은 이익집단의 일원처럼 수박이 되는 경우도 있지만, 두 집단의 출발점은 분명 다르다. 이익을 중요하게 생각하는가, 가치를 중요하게 생각하는가에 따라 보수와 진보로 나뉜다.

유대인은 피압박 소수민족으로 야훼 신앙을 통해 자유와 해방을 이루기 위한 가치 동맹으로 출발했다. 하지만 유대 종교권력과 로마 제국의 정치권력이 결탁하며 이익동맹으로 변질됐다. 이 시기에 그리스도교가 탄생했다. 그리스도교는 자기 이익을 위해 율법도 야훼 신앙도 민족의 운명도 배신한 종교지도자들을 탄핵하고 사람과 나라의 가치를 복원하고 재창조하기 위한 가치동맹이었다.

마태복음 10장 34-37절은 초대교회가 이익이 아닌 가치동맹체라는 것을 분명히 보여준다.

“내가 세상에 평화를 주러 왔다고 생각하지 마라.
평화가 아니라 칼을 주러 왔다. 
나는 아들이 아버지와 딸이 어머니와 며느리가
시어머니와 갈라서게 하려고 왔다. 
집안 식구가 바로 원수가 된다."

우리가 함께 이루고 누려야 할 공공의 가치가 소수의 이익집단에 의해 파괴되는 것을 막기 위해 가장 작은 단위의 이익집단인 가족의 이기적 본성을 깨뜨려야 한다는 것이다. 예수가 우리에게 준 칼은 군사적 충돌이 아니라 가장 가까운 가족의 이기적 연대를 끊을 수 있는 날카로운 관계 분리를 말한다. 올바른 가치가 아니면 그것이 가족일지라도 과감하게 단절해야 참된 가치를 실현할 수 있다는 것이다. “집안 식구가 바로 원수”라는 말은 그런 뜻이다.

가족과 혈연집단이 생존을 위해 이기적으로 이익을 추구하던 시대는 지났다. 이제 우리는 선거를 통해 민주적 가치와 대의를 이루어 자기 생존을 보장받는 시대를 살고 있다. 가족이라는 이기적 관습 안에 동맹을 지속시키기보다 나와 우리 가족, 그리고 공공의 가치를 실현하기 위해 뜻을 같이하는 타자와 연대하고 동맹을 맺어야 한다. 그러므로 이젠 가족도 이익동맹이 아니라 가치동맹이라는 차원에서 재설정되어야 한다.

“누가 내 어머니이며 내 동생들이냐 ...... 누구든지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의 뜻대로 하는 자가 내 형제요 자매요 어머니이니라.”(마태 12:48-50)하신 예수의 말씀은 가족과 친족, 혈연, 학연, 지연으로 묶인 이기적인 동맹체에서 벗어나라는 뜻이다. 진실을 아는 자가 공공의 가치와 하느님의 정의를 훼손하는 집단에 함께할 순 없지 않은가.

십자가를 걸어놓고 밤새워 큰소리로 기도하며 찬송하고 성경을 읽어도, 수만 명의 교인을 둔 교회로 성장했어도 예수의 가르침과 본질에서 벗어난 행위라면 그것은 이익동맹체에 불과하다. 그 이익동맹의 수익성은 견고한 교리에서 나온다. 교리의 힘이 강하면 강할수록 자기와 다른 것을 부정하고 혐오한다.

이런 집단에 예수님은 불화(set against)를 주러 왔다고 말한다. 이익을 위해 공공의 가치와 본질을 훼손시키는 자들에 저항하고 맞서 싸우라는 것이다. 우리 안에 참되고 올바른 가치에 눈뜨고 부조리에 맞서라는 것이다. 골방에서 기도하며 24시간 예수님만 생각하는 것으로 구원받는다고 착각하지 말라는 뜻이다. 내 안의 이기적 속성과 맞서 싸우고 우리 사회의 이익동맹 세력에 저항하여 예수가 전해준 하느님 나라를 실현하라는 것이다. 그것이 구원의 시작이라고 예수는 말한다.

내가 태극기부대인, 숙부의 전화 받기를 주저하는 이유다. 그리고 기성 교단인 감리교를 탈퇴한 이유다.

 

김선주 목사
<한국교회의 일곱 가지 죄악>, <우리들의 작은 천국>, <목사 사용설명서>를 짓고, 시집 <할딱고개 산적뎐>, 단편소설 <코가 길어지는 여자>를 썼다. 전에 물한계곡교회에서 일하고, 지금은 대전에서 길위의교회에서 목회를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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