밀란 쿤데라의 농담, 불행한 교조/교리주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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밀란 쿤데라의 농담, 불행한 교조/교리주의
  • 김광남
  • 승인 2023.11.05 22: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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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광남 칼럼

밀란 쿤데라의 <농담>을 처음 읽은 게 지난 8월이었으니 같은 책을 3개월만에 다시 읽은 셈이다. 두번째 읽는 동안 첫번째 읽기에서는 놓쳤던 주장 하나에 눈길이 갔다.

1. 대학생 공산주의자 루드비크는 여자 친구에게 농담 한 마디("낙관주의는 인류의 아편이다!") 했다가 공산당원직을 박탈당하고 학교에서 쫓겨난다. 그때 그를 쫓아내는 일을 주도했던 이는 학생회 간부 제마네크였다. 학교에서 쫓겨난 루드비크는 그후로 온갖 고생을 한다.

2. 여러 해가 흐른 후 루드비크가 겨우 일상을 회복했을 때, 그는 우연한 기회에 제마네크의 아내 헬레나를 만난다. 루드비크는 아무것도 모르는 헬레나를 유혹해 그녀와 간통한다. 헬레나가 탐나서가 아니라 오로지 제마네크에게 복수하기 위해서였다.

3. 그러나 제마네크는 옛 친구 루드비크가 자기의 아내 헬레나와 간통하고 있음을 알면서도 신경 쓰지 않는다. 오히려 잘 되었다고 여긴다. 그 사이에 잘나가는 대학 교수가 되어 있던 그의 곁에는 젊고 아름다운 여대생 애인 브로조바가 있었기 때문이다.

4. 브로조바는 제마네크에게 푹 빠져 있다. 그녀는 루드비크에게 그의 옛 친구 제마네크가 학생들 사이에게 가장 인기 있는 교수라고 자랑한다. 제마네크가 인기가 있는 이유는, 놀랍게도, 그의 유연성 때문이다. 그는 다른 교수들과 달리 학생들의 반항적 정신을 옹호하고 지지한다. 뿐만 아니라 케케묵은 교과과정을 고집하기보다 학생들에게 현대의 온갖 다양한 사상과 주장들을 알려줌으로써 학생들의 사고의 폭을 넓혀주고 있다. 한 마디로, 제마네크는 예전에 루드비크가 알았던 앞뒤가 꽉 막힌 교조주의자가 아니었다. 지난 세월 동안 그는 회심에 가까운 변화를 했던 것이다. 혹은 적어도 이 세상의 변화에 기막히게 적응했던 것이다.

5. 루드비크는 제마네크의 이런 회심을 받아들이지 못한다. 자신이 제마네크 때문에 겪은 고통을 생각한다면, 그리고 그에 대한 자신의 원한을 정당한 것으로 만들기 위해서는, 제마네크는 그때보다 더한 교조주의자로 남아 있어야 했다. 그래야 그에 대한 자신의 복수가 의미를 가질 수 있었다. 한데, 유감스럽게도 상황은 그렇게 전개되지 않았다. 루드비크는 자신이 겪은 고통 때문에 복수심에 불타는 일그러진 사내가 되어 있던 반면, 그를 고통에 빠뜨렸던 제마네크는 젊은 제자들에게 존경을 받는 유연하고 너그러운, 심지어 아내의 불륜까지도 대수롭지 않게 여길 정도로 자유로운 지성인이 되어 있다.

6. 루드비크는 제마네크 곁에 붙어 있는 여대생 브로조바가 히치 하이킹에 대해 조잘거리는 것이 마땅치 않다. 불과 십수년 전에 대학가를 휩쓸었던 처절한 사상 투쟁에 대해 무관심한 채 고작 히치 하이킹 얘기나 하는, 그러면서 뻔뻔스럽게 유부남 교수와 바람이나 피는 이기적인 그녀가 한심하게 또는 가증스럽게 여겨진다. 그래서 오랜만에 만난 옛친구이자 원수에게 그의 아름다운 애인(과 그녀가 대표하는 젊은이들)을 깍아내리며 험담을 늘어놓는다.

7. 그러나 제마네크는 루드비크에게 이렇게 말한다. "그렇지 않아. 나는 그들(요즘 청년들)이 우리와 다르기 때문에 바로 그래서 그들을 높이 사. 그들은 자신의 육체를 사랑하지. 우리는 무시했잖아. 그들은 여행을 좋아해. 우리는 한곳에 처박혀 있었는데, 그들은 모험을 좋아하지. 우리는 회의하느라 시간을 다 보내고 말았는데 말이야. 그들은 재즈를 좋아해. 우리는 부질없이 민속 음악이나 흉내 냈고. 그들은 자신들의 문제에 골몰하지. 우리는 세상을 구원하고자 했고. 우리는 우리의 메시아주의로 세상을 망가뜨릴 뻔했어. 이제 그들이 그들의 이기주의로 이 세상을 구원할지도 몰라."

8. 루드비크는 자신의 오랜 원한이, 그리고 그로 인한 복수(제마네크의 부인 헬레나와의 간통)가 갑자기 너무 사소해지고 방향까지 잃어버리게 된 상황 앞에서 당황한다. 그는 당황하며 이렇게 자문한다. "그렇다면 누가 잘못한 것이란 말인가? 역사 자체가? 그 신성한, 합리적인 역사가? 그런데 왜 그런 실수들이 역사 탓이라고 해야만 할 것인가? 인간으로서의 나의 이성에만 그렇게 보일 뿐, 만일 역사에 자기 고유의 이성이 있다면, 무엇 때문에 그 이성이 인간들의 이해를 신경쓸 것이며 여선생처럼 꼭 진지해야 하겠는가? 그리고 만일 역사가 장난을 한다면? 그 순간 나는, 나 자신이, 그리고 내 인생 전체가 훨씬 더 광대하고 전적으로 철회 불가능한 (나를 넘어서는) 농담 속에 포함되어 있는 이상, 나 자신의 농담을 아예 없었던 것으로 만들 수는 없다는 것을 깨달았다."

<농담>은 밀란 쿤데라가 1967년에 쓴 그의 첫 장편소설이다. 이 소설의 주제는 그의 대표작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1984)에서도 계속된다. <존재의 가벼움>에서 쿤데라는 인생과 역사의 일회성에 주목한다. 인생과 역사는 반복되지 않는다는 의미에서 가볍다. 그러나 결국 바로 그 가벼움 때문에 무겁기도 하다. 그것이 무엇이든, 어느 하나의 주장(이론 혹은 교리)에 얽매어 사는 것은 불행한, 혹은 적어도 안타까운 일이다.

다시 시간을 쓴 게 아깝지 않은 작품이다. 한두 번 더 읽게 될 것 같다. 어쨌거나...일단은 빨래 끝이다!

 

김광남
종교서적 편집자로 일했으며 현재는 작가이자 번역자로 활발하게 활동 중이다.
지은 책으로는 <교회 민주주의: 예인교회 이야기>, 옮긴 책으로는 <십자가에서 세상을 향하여: 본회퍼가 말하는 그리스도인의 삶>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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