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총은 상품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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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총은 상품이 아니다
  • 토마스 머튼
  • 승인 2023.10.31 10: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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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머스 머튼의 삶과 거룩함

영적인 삶은 이상과 현실 사이의 변증법 같은 것이라고 할 수 있다. 변증법이지 타협은 아니다. “모든 사람을 위한” 가장 보편적인 금욕주의적 규범에 기초한 이상들-아니면 적어도 “완전함”을 추구하는 사람들을 위한 이상들-은 각각의 사람들 안에서 동일한 방법으로 실현될 수 없다. 각각의 사람은 하나의 보편적인 완전함에 대한 통일된 기준을 자기 삶 안에서 실현함으로써 완전함에 이르는 것이 아니라, 자신에게 부여된 특유의 소명이 자신이 처한 한계와 상황들 속에서 하느님의 사랑과 부름에 응답함으로써 완전해진다.

사실, 하느님을 추구하는 것은 고행주의적 기술로가 아니다. 그것은 오히려 우리의 삶 전체를 자기 부정, 기도, 선행으로 고요하게 정돈함으로써 우리가 그분을 찾는 것 보다 우리를 더 간절히 찾아 헤매시는 하느님께서 “우리를 결국 찾아내고” 더 나아가 “우리를 소유하시도록” 하는 것이다.

우리가 생각하는 은총에 대한 개념 역시 흐릿하고 비현실적이라는 점을 상기하자. 실상, 우리가 은총을 반(半)물질적인 것으로, 객관적인 어떤 것으로 취급하면 할수록, 그것은 더 비현실적인 것이 될 것이다. 실제로, 우리는 은총이 어떤 신비로운 물질, 어떤 “물건”, 하느님께서 우리에게 마련해 주시는 어떤 상품 - 어떤 초자연적인 엔진을 위한 연료쯤으로 생각하는 성향이 있다. 우리는 은총을 마치 하느님께로 가는 우리의 여정에 필요한 어떤 영적 휘발유처럼 여긴다.

두말할 나위 없이 은총은 매우 신비스럽고, 유추와 은유로서만 설명될 수 있는데 그것이 자칫 우리를 오류로 이끌 수 있다. 확실히 은유적인 표현은 우리를 현혹시켜 잘못된 개념을 갖도록 만든다. 은총은 우리가 선행을 하거나 하느님께 다다르기 위해 “사용하는 그 어떤 것”이 아니다. 그것은 하느님과 완전히 분리된 “물건”이나 “실체”가 아니다. 그것은 우리 안에 계신 하느님의 현존이자 활동 그 자체다. 그러므로, 확실히 그것은 그분에게 가기 위해 그분으로부터 “받아야 하는” 물건이 아닌 것이다.

모든 현실적인 목적들과 연결하여 말하자면 우리는 은총이 우리의 삶 속에서 역동적으로 활동하시는 하느님의 거룩한 힘의 결과로 생겨나는 우리 존재의 질(質)이라고도 말할 수 있을 것이다. 초기 그리스도교 문학에서, 특히 신약성서에서 하느님 자신이신 성령을 받는 것에 비해 은총을 받는다는 이야기가 적은 이유가 거기에 있다.

 

[원문출처] <Life and Holiness>, 토머스 머튼 
[번역문 출처] <참사람되어> 2000년 9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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