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만난 팔레스타인, 그들은 지금 살아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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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만난 팔레스타인, 그들은 지금 살아있을까?
  • 김선주
  • 승인 2023.10.31 09: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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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선주 칼럼
사진=김선주
사진=김선주

잠시 화장실을 다녀온 사이에 문제가 일어났다. 그는 매우 흥분해 있었다. 무엇이 그를 그렇게 만들었을까. 점심을 먹고 현지 가이드가 있는 자리에서 커피를 마시며 한담을 나누던 중이었다. 일행 중 한 사람이 현지 가이드에게 친밀감을 전하기 위해 국적을 물어 봤다고 한다. “What is your nationality?” 그런데 그는 팔레스타인 사람이었다. 우리는 아무렇지 않은 국적 문제가 팔레스타인 사람에게는 민감한 문제라는 사실을 몰랐던 거다. 팔레스타인 사람의 발작버튼을 눌러버린 것이다.

그는 슬프고 비장한 어조로 무언가 강조하기 위해 웅변했다. 그의 영어는 나만큼이나 어눌했지만 의사는 분명하게 전달하고 있었다. 팔레스타인의 현재 상황이 얼마나 참혹한지, 그것의 원인과 역사적 맥락에 대해 힘주어 말했다. 유대인들이 팔레스타인 땅을 점령하고 사람들을 내쫓은 뒤로 주변 국가들을 난민으로 떠돌아야 하는 자신들의 상황을 슬픈 어조로 얘기했다. 가자 지구와 서안 지구에 높은 분리장벽으로 가두어 놓고 그들의 자치정부도 인정하지 않아 제대로 된 국적과 시민권도 없이 고통받으며 살아가는 팔레스타인 사람에게 국적을 묻는 것은 식민지 조선 백성에게 국적을 묻는 것과 같은 것이었다.

나는 그의 말을 일행에게 전해주었다. 나의 표정을 본 그는 어떤 진심을 발견했는지 우호적으로 태도가 바뀌기 시작했다. 그에게 내 카메라의 사진들을 보여주었다. 카메라에는 팔레스타인 사람들의 일상이 많이 담겨있었다. 난 이렇게 말했다. “나는 팔레스타인의 상황을 잘 알고 있다. 우리나라도 과거 일제의 식민지였기 때문에 피압박 민족의 아픔과 설움을 잘 안다. 내가 한국에 돌아가면 팔레스타인의 현실에 대해 많이 알릴 것이다.” 그는 내게 땡큐를 연발하며 악수를 거듭 청했다.

돌아와서 나는 설교에서 팔레스타인 문제를 다루기 시작했다. 하느님이 성경을 통해 나에게 하시는 말씀에만 귀를 기울이는, 편협한 신앙에서 깨어나 성경이 시대와 인류에게 전하는 메시지를 들어야 한다고 말했다. 그래서 지난 주엔 사무엘하 21장 1-6절을 본문으로 설교했다.

다윗 왕 때에 3년 동안 기근이 들어 나라에 재앙이 닥쳤을 때, 하느님은 그 원인을 사울 왕 때의 기브온 주민 학살(genocide) 때문이라고 말한다. 여호수아가 가나안에 입주할 때 야훼의 이름으로 불가침 동맹을 맺은 뒤로 기브온에 살고 있는 히위 족속과는 몇 백 년 동안 공생관계를 유지하며 살았다. 그런데 사울 왕이 정치적 입지가 좁아지고 위기에 처하자 누군가를 희생양으로 삼아 백성을 결집시켜 권력을 강화하려 했던 것이다. 그 대상이 자기 부족 안에 살고 있는 이방 민족인 기브온 사람들이었다.

이런 정치적 희생양 만들기는 고금(古今)을 떠나 부패한 권력의 공통적인 속성이다. 권력을 유지하거나 강화하기 위해 누군가를, 아니면 특정 지역이나 집단을 죄악시하고 희생시키는 것이다. 박정희의 호남 차별이 그랬고 전두환의 광주 학살도 그랬다. 윤석열의 이재명에 대한 콤플렉스도 이런 맥락에 있다. 나치의 유대인 차별과 학살도 같은 맥락이다. 해방 후 친일파의 반공 이데올로기와 이승만의 반공 노선도 같은 선상에 있다.

이스라엘이 비록 선민이라 할지라도 이방인에 대한 부당한 차별과 학살에 대해 야훼는 진노했다. 타자에 대한 혐오와 배타적 태도가 폭력과 학살로 이어지는 정치적 맥락에 대해 진노했던 것이다. 가나안 족속을 진멸하라는 명령이 과연 그들의 생명에 대한 집단 학살이었던가? 야훼 하느님이 과연 집단 학살을 명령한 것인가에 대해 우리는 다시 생각해 봐야 한다(이 부분은 곽건용의 <정말 야훼가 다 죽이라고명령했을까?>를 참조). 성경을 문자로만 신봉하면 야훼는 잔혹한 학살자의 신이 된다. 우리는 그렇게 배웠고 믿어왔다. 그래서 팔레스타인을 이스라엘과 서구의 시각으로만 바라보고 무장 테러단체로 보고 있다.

나는 설교에서 CNN과 알 자지라(Al Jazeera)의 가자(Gaza) 뉴스를 비교해서 보여주었다. 이들이 뉴스를 전하는 방식을 비교하며 우리가 성경을 보는 방식에 대입하였다. CNN은 카메라 앵글부터가 클로즈업 화면이다. 작은 것을 확대해서 보여주며 객관적 사실보다 정치적 해석에 무게를 둔다. 어떤 경우는 뉴스에 앵커의 정서가 개입되기도 한다. 하지만 알 자지라는 화면을 와이드 앵글로 잡는다. 사건 현장을 전체적으로 조망하여 뉴스를 보는 사람이 사실적으로 보게 한다. 앵커나 기자의 멘트도 건조하다 싶을 정도로 감정을 절제하고 사실을 전하는 데 무게를 둔다.

우리가 성경을 볼 때도 나의 감정을 이입하여 맥락을 제거하고 특정 부분을 클로즈업해서 보도록 길들여졌다. 주입된 교리와 이념적 성향에 따라 자기가 보고 싶은 것만 보도록 길들여진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전쟁을 바라보는 시각도 하느님의 백성 이스라엘이 이방 족속인 팔레스타인을 쓸어버려야 한다는 무식한 주장을 하기도 한다. 나는 우리 교인들이 단순하고 무식한 믿음을 갖지 않기를 원한다. 합리적이고 상식적인 인간의 도리 안에서 성경을 읽고 하느님을 알도록 하고 싶다. 하느님은 인간과 세계를 초월해 계시지만 인간의 상식과 합리성 안에서 역사하는 분이라는 사실도 말이다.

지난 주일부터 주보에 팔레스타인 사람들의 사진을 실었다. 팔레스타인을 위해 기도하자고 요청했다. 그런데, 이들의 사진을 보면서 마음이 몇번씩 울컥거린다. 그들은 지금 살아있을까?

 

 

김선주 목사
<한국교회의 일곱 가지 죄악>, <우리들의 작은 천국>, <목사 사용설명서>를 짓고, 시집 <할딱고개 산적뎐>, 단편소설 <코가 길어지는 여자>를 썼다. 전에 물한계곡교회에서 일하고, 지금은 대전에서 길위의교회에서 목회를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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