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인됨으로 가는 간단한 공식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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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인됨으로 가는 간단한 공식은 없다
  • 토머스 머튼
  • 승인 2023.10.22 15:08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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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스도교적 완전함의 정수를 몇 줄짜리 공식으로 정리한다는 것은 사실 어리석은 짓이다. 가끔씩 그럴 필요가 있을 때도 있다. 하지만 그럴 때마다 우리가 자신에게 상기시켜야 할 것은 우리가 그 공식의 의미를 금방 깨닫는다는 것은 어려운 일이며, 거룩함이 단순히 공식 몇 개를 따라해서 얻을 수 있다는 생각은 피해야 한다. “성인이 된다는 것”은 입맛에 맞는 요리를 골라 그리스도인의 삶 안의 여러 가지 재료를 내 입맛에 맞는 방법대로 요리하는 것이 아니다. 가끔 몇몇 영성서적들이 그렇게 하는 것처럼 보이기도 한다. 모든 것을 종합하는 새로운 기법을 발견하는 “거룩한 영혼”이 항상 등장하여 사람들을 위해 모든 것을 단순하게 처리해 준다.

사람들이 모든 영적인 문제를 해결할 단순한 방법을 찾는 것은 물론 자연스러운 일이다. 전통적으로, 인간이 제기한 가장 근본적인 물음은 “우리는 무엇을 해야 하는가?”였다(사도 2,37). “죄를 용서받으려면 회개하라, 그리고 세례를 받아라... 그러면 너희는 성령을 받을 것이다”(사도행전 2,38)라고 하는 그리스도교적 대답은 “기법”이나 기술을 설명해 놓은 것이 아니다. 그와는 반대로, 베드로 사도가 첫 성령 강림절에 청중에게 한 설교는 구원이 어떤 기법을 따르는 것으로 얻을 수 있는 것이 아니라 하느님의 백성의 한 일원이 되고, 그리스도의 몸이 되며, 그 몸의 구성원으로서의 삶, 사랑의 삶을 사는데 있다고 가르친 것이다.

여기서 말하는 사랑이란 감정의 상태나 친절한 내적성향의 문제가 아니다. 그리스도인의 삶에서 말하는 진정한 사랑의 본질은 교회의 고통, 문제들과 열망에 동참하는 것을 포함한다. 사랑이란 교회의 구원사업과 인류와 사회를 하느님을 향해 쇄신시키고 봉헌하는데 전적으로 헌신하는 것을 의미한다. 그리스도인은 어느 누구도 이 사업에서 제외될 수 없다. 현대에 와서, 이 과제의 영역은 세상만큼이나 넓어졌다.

그러나 그 과제는 그리스도인들의 개별적인 영혼으로부터 시작된다. 우리 자신이 그리스도의 빛과 성령으로 충만하지 않는 이상 다른 이들에게 희망과 구원을 줄 수는 없다. 교회의 짐을 효과적으로 나눠지기 위해서 우리는 먼저 힘과 지혜를 얻어야 한다. 우리는 사랑으로 교육되어야 한다. 우리는 거룩해지기 시작해야 한다.

 

비현실적인 완전함의 요구

단순하며 효험 있는 공식은 복음에서만 찾을 수 있으며, 그 이유는 복음이 사람의 말이 아니라 하느님의 말씀이기 때문이다. 그 투명한 단순성에도 불구하고, 그리스도의 말씀, 구원의 말씀은 하느님께로부터 비롯된 다른 모든 것과 마찬가지로 아주 신비롭다. 우리가 “완전함”에 불리움을 받았다는 것이 분명하고 그 완전함이 “그리스도의 계명” 중에서도 “그분이 우리를 사랑하듯 우리도 이웃을 사랑하라는 새 계명”을 지킴으로써 이룰 수 있다는 것을 안다. 허나 우리 각자는 무엇보다도 자신의 구원에 두려움을 갖고 신비로움에 떨며, 자주 각자의 삶 안에서 당혹스런 혼란을 겪으면서 이룩해 나가야 한다. 이것을 실천해 나가면서, 우리는 각자 새로운 “길”, 자신만의 “거룩함”을 찾게 되는데, 그것은 우리가 그리스도의 모습을 구현하는데 있어 다른 사람의 것과는 구별되는 각각의 개별적인 소명을 부여받았기 때문이며 그러한 구별은 우리가 서로 전혀 다르기 때문이다.

영적인 삶에 대한 공식화된 법칙과 권고만 생각한다면 숨어 계시고 보이지 않는 하느님을 “추구하는” 일은 매우 간단해 보일 수도 있다. 우리는 선한 일을 찾아 하고 악한 일을 회피하는 자신의 모습을 어렵지 않게 상상할 수 있다: 선한 일은 물론 “하느님 은총의 도움으로” 관대하게 하여 “거룩한 일치”를 이룬다. 어느 정도 뚜렷한 이상을 가진 채, 우리는 현실의 생활을 우리의 이상에 억지로 맞춤으로써 거룩함을 정복하려고 든다. 단지 필요한 것은 우리 생각에, 그 이상에 관대하고 충실하는 것뿐이다.

그러나 불행하게도 우리의 이상 자체가 불완전하고 우리를 그릇되게 이끌 수 있다는 사실은 인지하지 못한다. 우리의 이상은 객관적인 규범을 바탕으로 설정되었지만, 우리는 그 규범들을 매우 한정적이고 주관적인 방법으로 해석할 수 있다: 우리의 터무니없는 욕구와 기대를 충족시키기 위해 그것을 무의식 중에 곡해할 수 있다. 우리가 갖고 있는 욕구와 기대들, 우리 자신과 우리의 삶에 -하느님에- 대한 요구들은 우리가 깨닫지 못할 만큼 터무니없고 환상적인 것일 수 있다. 그러므로, 완전함에 대한 우리의 생각들은 비록 신학적으로는 반박의 여지가 없을지라도, 실제로 적용하기에는 극도로 비현실적이어서 결국 우리 자신을 무기력하게 만들고 좌절시카곤 한다. 우리는 “우리의 소명”까지 잃을 수 있으며, 그것은 우리가 이상을 갖고 있지 못해서가 아니라 우리의 이상이 현실과 연관성을 갖고 있지 못하기 때문이다.

 

[원문출처] <Life and Holiness>, 토머스 머튼 
[번역문 출처] <참사람되어> 2000년 9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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