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적 불의-하느님의 창조가 상처를 입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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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적 불의-하느님의 창조가 상처를 입었다
  • 한상봉 편집장
  • 승인 2023.10.22 13: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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엘리자베스 A. 존슨의 [신은 낙원에 머물지 않는다] 강독-13

엘리자베스 A. 존슨은 해방신학이 이론보다 ‘바른 행동’(正行)을 강조한다고 말하면서 “황혼을 날아오르는 부엉이처럼, 신학은 낮의 열기 가운데 습득한 것을 되돌아보며 행동으로 일어서게 된다”고 전했다. 정의로운 행동은 믿음의 구체적인 표현이다.

디트리히 본회퍼가 말한대로 고삐 풀린 마차가 달릴 때, “다친 사람을 붕대로 치료하는 일은 반드시 필요하며 고귀한 행동이지만, 더 이상의 피해를 막기 위해서는 누군가 고삐를 쥐거나 바퀴를 부수어 말을 멈춰야 한다.” 정의롭다는 것은 하느님께서 절대로 용납하지 못할만한 사회적 구조를 바꾸는 것이다.

엘살바도르의 혼 소브리노(Jon Sobrino, S.J)는 “가난은 세계에서 가장 심각한 상처로 남아 있다”면서 “이것은 오늘의 근본적인 상처다. 이것을 그리스도교의 용어로 말하자면, 바로 하느님의 창조가 상처를 입은 것이다”라고 말했다.

그러므로 이런 사회적 상처를 치유하는 행위는 하느님의 연민에 참여하는 것이고, 이 행동 속에서 그분의 신비에 대한 깊은 체험을 하게 된다. 초기교회의 사도들이 음식을 나누며 그리스도를 깨달았듯이, 우리는 가난한 이들과 연대하면서 하느님을 더 잘 알게 된다. 사랑은 다만 사랑하면서만 사랑하게 된다. 이런 점에서 하느님 사랑은 이웃사랑과 밀접한 관계가 있다. 그리고 이러한 연민과 연대성은 교회의 핵심 사명이다.

가톨릭신자 가운데 아직도 해방신학이 로마로부터 이단시 되었다는 인상 때문에 문제 삼는 사람들이 있다. 1984년 교황청 신앙교리성에서 발효한 <해방신학의 일부 측면에 대한 훈령>에서는 교회가 마땅히 가난과 억압으로 인한 충격적인 파괴에서 벗어나려는 시도를 이 시대의 징표로 보고 주목해야 한다고 말하고 있다. 다만 맑스주의를 지나치게 남용하는 일이나 신앙을 정치적 현실적 차원으로 축소하는 경향을 경계해야 한다고 주의를 주었다.

하지만 2년 뒤에 요한 바오로 2세 교종은 라틴아메리카 주교들과 많은 토론을 거친 뒤에 브라질 주교에게 해방신학이 신학적 숙고과정에서 ‘새로운 무대’를 열었으며, 시의적절하고 유용한 신학이라고 전했다. 이어 1986년 교리성에서 발표된 <그리스도인의 자유와 해방에 관한 훈령>에서는 “가난한 이들을 위한 우선적 선택” 등 해방신학의 주장에 대해 훨씬 긍정적으로 평가했다. 그리고 이러한 내용은 현재 통용되는 <간추린 사회교리>라는 교황청 문헌에 편입되었다.

“가난한 이들, 소외받는 이들, 어느 모로든 자신의 올바른 성장을 방해하는 생활조건에서 살아가는 이들에게 특별한 관심을 쏟아야 한다. 이러한 목적을 위하여, 가난한 이들을 위한 우선적 선택을 다시 한 번 강력히 확언하여야 한다. 이것은 그리스도교 사랑의 실천에서 우선하는 특별한 형태의 선택을 말하는 것으로, 교회의 전통 전체가 이를 증언한다.”(교황청 정의평화평의회, 간추린 사회교리, 182항)


한상봉 이시도로
<도로시데이 영성센터> 코디네이터
<가톨릭일꾼> 편집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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