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방하시는 하느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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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방하시는 하느님
  • 한상봉 편집장
  • 승인 2023.10.09 16: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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엘리자베스 A. 존슨의 [신은 낙원에 머물지 않는다] 강독-11

해방하시는 하느님 : 구약

해방신학의 결정적인 성서적 단서는 ‘출애굽’ 사건이다. 하느님은 이집트 노예들의 하느님이고, 그들의 고통에 응답하시고, 그들의 해방을 이끄시는 분이다. 고대세계에서 신은 전형적으로 지배자의 지위를 정당화하며, 심지어 왕과 자신을 동일시한다. 그러나 히브리의 하느님은 이집트 파라오의 편을 드는 대신에 자신의 권력을 비참한 노예들을 위해 행사했으며, 그들의 해방을 주장했다. 거룩한 하느님은 사막의 불타는 덤불에서 그 해방투쟁을 이끌라고 모세에게 명령하신다.

“나는 이집트에 있는 나의 백성이 고통받는 것을 똑똑히 보았고, 또 억압 때문에 괴로워서 부르짖는 소리를 들었다. 그러므로 나는 그들의 고난을 분명히 안다. 이제 내가 내려가서 그들을 데려가려고 한다.”(탈출 3,7-8)

여기서 하느님이 고백한 ‘안다’라는 말은 지적인 것이 아니라 남녀가 육체적인 관계를 맺을 쓰이던 경험적인 언어다. 이스라엘의 하느님은 덤불에서 불타는 노예들의 고통을 보고 듣고 느꼈다고 전한다. 예언서와 시편과 잠언에서도 사회적 불의를 준엄하게 비판하고, 구원에 대한 하느님의 따뜻한 확신을 심어준다. 또한 해방신학은 가난한 자들 편에 선 하느님께 합류하라고 신자들을 호출한다. 성전에서 바치는 번제물에 싫증이 났으며, “다만 공정을 물처럼 흐르게 하고, 정의를 강물처럼 흐르게 하여라”(아모스 5,24) 하고 명령한다. 가난과 압제는 하느님의 의도를 좌절시키는 것이기에, 예언자들은 공적 숭배뿐 아니라 단식 같은 개인적 희생마저 거부하였다.

“내가 좋아하는 단식은 이런 것이 아니겠느냐?
불의한 결박을 풀어 주고 멍에 줄을 끌러 주는 것,
억압받는 이들을 자유롭게 내보내고 모든 멍에를 부수어 버리는 것이다.
네 양식을 굶주린 이와 함께 나누고 가련하게 떠도는 이들을 네 집에 맞아들이는 것,
헐벗은 사람을 보면 덮어 주고 네 혈육을 피하여 숨지 않는 것이 아니겠느냐?
그리하면 너의 빛이 새벽빛처럼 터져 나오고 너의 상처가 곧바로 아물리라.
너의 의로움이 네 앞에 서서 가고 주님의 영광이 네 뒤를 지켜 주리라.”
(이사야, 58,6-8)

 

그림=JOSE IGNACIO FLETES CRUZ
그림=JOSE IGNACIO FLETES CRUZ

해방자 예수 안의 하느님: 신약

구약의 불타는 덤불 속 하느님은 보잘 것 없는 사람들에게 충실했음을 보여준다. 그런데 복음서에서 하느님은 ‘예수’라는 가난한 인격 안에 당신을 드러내신다. 그분은 태어날 때부터 말구유 위에 누워계셨으며, 곧 이어 지배자의 살인적 폭력을 피하기 위해 도망쳐 난민이 되었다. 구스타보 구티에레스의 기념비적 말에 의하면, 예수 그리스도 안의 하느님 출현은 “마구간 냄새의 출현”이다.

“주님께서 나에게 기름을 부어 주시니
주님의 영이 내 위에 내리셨다.
주님께서 나를 보내시어
가난한 이들에게 기쁜 소식을 전하고
잡혀간 이들에게 해방을 선포하며
눈먼 이들을 다시 보게 하고
억압받는 이들을 해방시켜 내보내며
주님의 은혜로운 해를 선포하게 하셨다.”
(루카 4,18-19)

그런 예수님 자신의 생애와 쓰디쓴 고통과 격렬한 죽음은 이스라엘의 하느님이 버림받은 자들을 선택한다는 사실을 극적으로 보여준다. 하느님은 십자가에 달린 희생자들, 국가권력에 의해 부당하게 처형된 사람들 편에 선다. 거룩함이 머물지 않으리라고 명백히 예상되는 고문과 질병, 가난과 고통, 죽음의 자리에서 복음은 연민에 찬 하느님의 현존을 보여주었다.

또한 예수님의 부활은 죽음에 대한 하느님의 승리이자, 부당함을 이긴 사랑의 승리이다. 가난하고 십자가에 달린 사람들 속에 수척해져서 눈물로 얼룩지고 겁먹은, 상한 예수님의 얼굴을 보라. 하느님은 십자가에 달린 바로 이 예수님을 살렸기 때문에 역사에서 십자가에 달린 사람들은 희망을 가질 수 있다. 부활은 모든 상처받고 버림받은 사람들에게 축복된 미래가 있음을 최종적으로 약속한 사건이다.

 

한상봉 이시도로
<도로시데이 영성센터> 코디네이터
<가톨릭일꾼> 편집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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