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실상 인간적인 성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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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상 인간적인 성인
  • 토머스 머튼
  • 승인 2023.10.09 16: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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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머스 머튼의 삶과 거룩함

우리가 알고 있는 거룩함의 개념이 애매모호하고 불분명한 이유는 아마 은총과 초자연적인 것에 대한 우리의 개념이 혼란스럽기 때문일 것이다. 은총은 “본성 위에 쌓인다”는 금언은 영성 생활에 있어 미봉책을 허용한다는 의미가 아니다. 그것은 엄연한 진리로서, 성인이 되기 이전에 먼저 사람이 실제로 당면한 인간적이고 약한 조건들 속에서 인간이 되지 않는다면, 우리는 “성인”의 참된 의미를 알 수 없을 것이다.

성인들은 모두 지극히 인간적이었는데, 그 인간성은 거룩함으로 인해 더욱 풍부하고 깊어졌으며, 누구보다 성인 중에서도 가장 거룩하신 분, 육화된 말씀이신 예수 그리스도는 지상에서 살았던 사람들 중 가장 인간적인 분이셨다. 우리는 인간의 본성이 그분 안에서 완전히 구현되었으며, 죄를 제외하고는 우리가 가지고 있는 약함과 고통을 느끼셨다는 것을 기억해야만 한다. 육화된 말씀 안에서 또 그 말씀을 통해서 이루어지는 구원보다 더 “초자연적인 것”이 있을 수 있겠는가?

그리스도께서 완전하신 것과 같이 완전해지려면, 우리는 그분께서 그러하셨듯 철저히 인간적이어야 하며, 그럼으로써 그의 거룩한 현존과 일치하고 천상 아버지로부터 받은 자녀로서의 특권을 나눌 수 있게 된다. 이처럼 거룩함은 인간적이지 않게 되는 것이 아니라, 다른 사람들보다 더욱 인간적이 되는 것이다. 이것은 더 많이 걱정하고, 고통 받고, 이해하고, 동정하고, 한편 유머를 즐기고, 세상의 좋은 것과 아름다운 것을 즐기는 것을 의미한다. 그러므로 다만 인간적이라는 이유로 인간적인 가치를 파괴하고 좌절시키며, 자신을 남들과 다른 경이의 대상으로 분리시키는 가식적인 “완전함의 길”은 서투른 모방에 지나지 않는다. 그런 모방은 육화 신앙에 대한 명백한 죄라고 할 수 있다. 그것은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 죽기까지 지키고자 하신 인간성을 경멸하는 것이다.

그렇지만 우리는 인간적인 가치를 무질서한 사회에서나 통하는 오히려 덜 인간적인 가치와 구별할 수 있어야 한다. 현실적으로 우리를 고통스럽게 하는 것은 과대한 동물적 본능이라기 보다 우리 안에 깊이 내재되어 있는 인간적인 경향들을 왜곡하고 개발하지 못하는데 그 원인이 있다. 그렇기 때문에 격정을 다스리기 위해 고안된 가혹한 고행은 감정이 제대로 성숙하지 않고 천성이 허약하고 무질서한 상태에 있는 사람에게는 도움이 되기는커녕 해가 될 수 있다.

우리는 현대의 기술 지향적인 삶이 사람의 감성과 본능을 계발하는데 끼치는 영향에 대해 보다 더 깊게 성찰해야 한다. 기계를 다루고 텔레비전을 보는 것 사이에서 생활이 양분된 사람은 조만간 그의 본성과 인간성이 심하게 훼손되어 고통받게 된다.

 

[원문출처] <Life and Holiness>, 토머스 머튼 
[번역문 출처] <참사람되어> 2000년 9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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