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구마 캐며 생각하는 하느님 경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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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구마 캐며 생각하는 하느님 경제
  • 최태선
  • 승인 2023.10.09 14: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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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태선 칼럼

어제는 홍천에 가서 고구마를 캤다. 손자 녀석이 그런 일을 아주 좋아한다. 그래서 녀석도 불렀다. 역시였다. 녀석은 제 머리만한 고구마를 들고 행복하게 웃었다. 녀석이 웃으면 온 세상이 웃는다. 짬을 내서 녀석을 데리고 밤나무 밑으로 가서 밤도 주웠다. 정말 행복한 날이었다.

하지만 너무 힘이 들었다. 팔백 개를 심어놓은 고구마 밭의 절반 정도를 캤다. 일의 양이 많았다. 내가 노동력이 빈약해서 그랬는지도 모른다. 어쨌든 나는 사백 개 정도의 고구마를 해결했다. 나의 일은 줄기를 잘라 모아 놓고, 비닐을 거두는 일이었다. 예전에 백여 개 정도를 심었을 때는 그리 힘들다는 생각을 한 적이 없었다. 하지만 그동안 내가 늙어서 그런지 그 일이 생각보다 힘들었다. 일을 마칠 때 쯤에는 허리가 아파서 작은 힘도 쓰기가 어려웠다. 그래도 힘을 내서 캔 고구마에 고구마 줄기를 덮어놓고, 우리가 가져올 고구마 세 박스를 외발수레에 담아 위태하게 끌어 차에 가져다 실었다.

 

사진출처=인물화저장hobbyfarms.com
사진출처=hobbyfarms.com

그것이 다가 아니다. 상추와 같은 쌈 채소도 따고, 무도 몇 개 뽑고, 파도 뽑아 그것을 봉지에 담아 차에 실었다. 야콘과 토란도 캐고 토란대도 잘라가라고 했지만 힘이 없어 포기했다. 쓰던 도구들까지 정리하고 나니 호미 하나 드는 것조차 무겁게 느껴졌다. 그래도 두 시간 반을 운전해서 집에 잘 도착했고, 너무 무거운 고구마는 차에 그대로 두고 나머지들을 가지고 4층 집까지 올라왔다. 집에 와서도 무청을 잘라 그늘이 드는 곳에 널고, 파도 옥상 텃밭에 심었다. 정말 힘든 하루였다.

김가은이 아슬아슬하게 지는 것과 안세영이 이기는 배드민턴 녹화 경기를 보다가 깜박 잠이 들었다. 아내가 방으로 들어가 자라는 말에 정신이 나서 경기를 마저 보았다. 그리고 잠에 골아 떨어져 오늘 아침 일곱 시나 되어서야 잠이 깼다.

이런 일들은 그냥 일상적인 일이다. 하지만 우리의 일상에는 하느느님의 경제가 숨을 쉬고 있다. 고구마를 캐면서 상처가 나거나 부러진 녀석들을 따로 모아두었다. 그런 것들을 담았고, 상품 가치가 없는 너무 작거나 너무 큰 녀석들만으로 우리가 가져올 박스를 채웠다. 그렇게 세 박스를 채웠다. 그리고 봉투 하나를 식탁 위에 놓고 왔다. 그 액수면 가장 좋은 고구마 세 박스를 사고도 남았다. 이제 그렇게 가져온 고구마를 그늘에 말려야 한다.

고구마를 선별하면서 나는 하느님을 생각했다. 사람들은 잘 생기고 크기가 너무 크지 않은 고구마를 선호한다. 사실 그러면 다루기도 편하고 먹기도 좋은 것이 사실이다. 하지만 우리는 상처가 나서 쉽게 썩어버릴 고구마들을 골랐다. 나는 그런 녀석들이 불쌍하다. 너무 크거나 작은 것들도 마찬가지다. 상품가치가 현저하게 떨어지거나 아주 없는 것을 모르지 않는다. 하지만 나는 그런 녀석들을 상품가치가 있는 녀석들과 똑같이 여겨준다. 어떤가. 하느님의 마음을 닮지 않았는가.

하루 종일 노동력을 제공하고 그런 녀석들을 품삯으로 받는 것은 당연하다. 그러나 우리는 그런 녀석들을 최고급 상품의 값을 치르고 가져왔다, 우리가 제공한 노동력은 아예 값을 계산하지 않았다. 나는 우리가 돈으로 고구마를 산 것이 아니라 관계를 샀다고 생각한다. 밭주인인 지인은 연신 고맙다는 말을 했다. 그러나 우리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그분이 우리에게 준 마음은 돈으로 살 수 없다. 우리도 마찬가지다. 그분의 마음을 돈으로 살 수 없다. 그러나 돈의 사용은 중요하다. 그런 우리 마음을 서로에게 표현할 수 있기 때문이다. 나는 그것을 돈의 순기능이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그렇게 돈의 순기능을 이용하면서 돈을 버리는 것이야말로 거저 받았으니 거저 주라시는 하느님의 경제 원칙을 실천하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그런 실천이 일상이 되는 것이 신앙이라고 생각한다.

고구마만 생각하면 우리가 한 일은 어리석거나 조금 우쭐댈 수 있는 일이 될 수도 있다. 하지만 우리가 얻은 것들을 생각해보라. 우선 손자 녀석이 그렇게 행복해 했다는 사실, 제 머리만한 고구마를 들고 환한 웃음을 짓고 있는 녀석의 사진 한 장만으로도 그것은 돈으로 계산할 수 없는 추억의 한 장면을 연출했다. 손자 녀석이 고추를 따고 밤을 줍고 고구마를 캐겠다고 호미를 들고 땅을 파는 그 일을 체험농장에서 한다고 생각해보라. 그것 역시 우리가 지불한 돈만큼의 가치가 있다.

손자 녀석만이 아니다. 숯불을 피워 고기를 구워주고, 양말이며 일할 때 입는 옷을 아낌없이 내어주고, 밭에 심어 힘들게 가꾼 여러 작물들을 마음껏 뽑아가라는 주인의 마음을 우리는 돈으로 환산할 수 없다. 주겠다는 말을 하고 잊어버리고 싸주지 않은 묵은지와 장아찌도 우리는 받은 것과 마찬가지다.

거저 주고받는 행위는 단순히 돈으로 환산할 수 있는 일이 아니다. 이런 일을 행할 때 우리는 삼위일체의 존재방식인 공동체적인 존재방식을 배우게 된다. 그리고 그러한 관계는 우리가 그토록 찾고 가지기를 원하는 행복의 본질이기도 하다. 결국 인간의 존재 의미와 행복의 취득은 돈이 아니라 거저 주고받는 하느님의 경제 속에서 얻을 수 있는 것이라는 사실을 우리는 발견하게 된다.

그러나 이러한 하느님의 경제를 실천하는 삶은 여간해서는 배우기가 어렵다. 우리가 경쟁과 능률에 익숙해져 있기 때문이다. 우리는 무의식적으로 끊임없기 비교하고 계산한다. 그리고 이러한 삶의 방식이 우리를 불행하게 만들 뿐만 아니라 우리를 공멸의 위기로 몰아간다. 작금의 이상기후와 환경오염은 그러한 우리의 삶의 방식이 축적해 놓은 당연한 결과물이다. 이런 일들을 통해 복음의 복음 됨을 볼 수 있지 않은가.

"좁은 문으로 들어가거라. 멸망으로 이끄는 문은 넓고, 그 길이 널찍하여서, 그리로 들어가는 사람이 많다. 생명으로 이끄는 문은 너무나도 좁고, 그 길이 비좁아서, 그것을 찾는 사람이 적다."

오늘날 그리스도인들은 자신이 좁은 문으로 들어갔다고 생각한다. 예수를 믿는 것이 곧 그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생각해보라. “예수 믿으시겠습니까?”, “아멘”. 이것이 예수님을 주님으로 영접하는 것이고 그것이 곧 다인가? 이 얼마나 어처구니없는 복음 이해인가? 교회에 나가 예배를 드리고 약간의 헌금을 하는 것으로(혹은 성체성사를 하는 것으로) 스스로를 그리스도인으로 아는 것이야말로 허황된 자기기만에 지나지 않는다.

좁은 문으로 들어간다는 것을 진리와 연관 지어 생각하거나 믿음의 문제로 생각한다면 이 같은 올무에 빠져 온 세상을 구원하시려는 하느님의 경륜을 망각하게 된다. 그래서 나는 좁은 문으로 들어간다는 것을 하느님의 경제를 실천하는 것이라고 말하는 사람이 되었다. 경쟁과 효율이 더 이상 문제가 되지 않는 곳, 세상에서 진 사람들도 이긴 사람들과 똑같이 존귀한 존재로 살아갈 수 있는 하느님 나라는 이처럼 하느님의 경제를 실천하는 곳에서 이루어지는 구원이다.

상처 난 고구마, 부러진 고구마, 너무 크거나 작아서 상품가치가 없는 고구마, 우리는 그런 것들만을 골라 사왔다. 이런 일을 하면서 나는 포도원 주인의 비유를 생각한다. 하루 종일 일한 사람과 한 시간 일한 사람이 똑같은 품값을 받는 곳, 그것은 하느님의 경제가 실천되는 곳이며 인간의 존엄이 살아나는 곳이다.

그래서 나는 어제 기뻤다. 상처 나고, 부러지고, 상품 가치가 없는 너무 크거나 작은 고구마 녀석들이 나를 보고 웃는 것 같다. 손자 녀석은 이미 그것을 보았는지도 모른다. 큰 고구마를 들고 활짝 웃고 있는 손자의 모습이 바로 그것을 의미하지 않을까.

그리고 나는 어제 행복했다. 식탁 위에 놓인 돈 봉투를 보고 행복해하는 밭주인과 그 주인이 우리에게 베푼 사랑을 감사하게 받은 우리도 모두가 행복했다. 그 관계 속에서 빛을 발하고 있는 하나님의 경제가 있다.

“'하늘 나라가 가까이 왔다'고 선포하여라. 앓는 사람을 고쳐 주며, 죽은 사람을 살리며, 나병 환자를 깨끗하게 하며, 귀신을 쫓아내어라. 거저 받았으니, 거저 주어라.”

우리는 어제 이 말씀을 보았다. 하느님 나라를 보았다.

 

최태선
하느님 나라의 시선으로 살아가는 
55년생 개신교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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