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방신학, 하느님 앞에서 인민의 가난은 스캔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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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방신학, 하느님 앞에서 인민의 가난은 스캔들이다
  • 한상봉 편집장
  • 승인 2023.10.02 11: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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엘리자베스 A. 존슨의 [신은 낙원에 머물지 않는다] 강독-10

정치신학의 세례를 받은 라틴아메리카의 신학자들이 지배자들의 신학을 버리고 대륙의 가난한 이들 속에서 하느님을 발견하기 시작했다. 1968년 콜롬비아의 메데인주교회의 이후에 주교들은 가난과 그 원인, 가난한 이들의 문제를 강론의 핵심에 두기 시작했다. 주교들의 예언적 선언은 “집단적으로 발생한 이 참상은 그 자체로 하늘에 울부짖는 불의를 증언한다”고 말했다. 그리고 교회에 부여된 사명은 고통당하는 형제자매를 향한 사랑으로 이 심각한 가난을 바로잡는데 전념하는 것이었다.

1979년 멕시코 푸에블라에서 개최된 주교회의는 단도직입적으로 선언했다. “우리는 수백만 라틴아메리카인들이 겪는 비인간적인 가난이 가장 파괴적이고 수치스러운 재앙임을 선포한다.” 그들은 가난은 자비의 하느님 앞에서 스캔들이며, 그리스도교 신앙과 모순된다고 선포했다. 가난은 죽음의 도구이기 때문이다.

음식과 먹을 물의 부족, 집과 교육, 의료시설의 부족, 임금착취, 고용기회의 부족 등은 결국 수명을 단축시키고 인간의 존엄성을 거짓으로 만든다. 또한 사회적 무력감, 표현의 자유를 제한하는 것은 가난을 유지시키는데 공모한다. 죽음을 초래하는 정치경제적 구조에 깊이 침윤된 가난은 인간의 가치에 가해지는 일종의 ‘제도화된 폭력’이다.

엘리자베스 A. 존슨은 경제적 양극화와 다수에게 집중된 가난이라는 배는 “소수의 부를 위해 다수를 약탈하고 근본적인 인권을 부인하면서 항해를 지속하며 끊임없는 비극과 잔인한 죽음이라는 짐을 가득 싣고 있다”면서, “가난한 사람들은 역사의 ‘밑창’에 있다”고 비판했다.

하느님은 고통 속에...
고통을 넘어서는 해방하는 행동 가운데 존재하신다

전통신학은 전능한 왕이 권위로 자신의 영역을 지배하는 것처럼, 하느님을 모든 것을 만들고 세계를 지배하는 우월한 존재라고 강변해 왔다. 이 안에서 발생하는 가난과 고통의 상황은 하느님의 뜻으로 허락된 것으로 가정한다. 부자들은 가난한 사람들에게 자선을 베풀도록 고무되고, 가난한 사람들은 십자가 위에서 희생당한 예수님처럼 고통을 감내하며 기다리면 사후에 영원한 보상을 받는다고 배웠다. 죽은 예수와 슬픔에 빠진 성모상을 들고 열 지어 운반하는 축제 행렬은 이런 신학을 형상화한 것이다. 삶은 어차피 눈물의 골짜기이며, 고통은 천국으로 가는 길이라 믿었다. 이런 사회에서 사회변혁을 위한 저항을 기대하기 어렵다.

[말씀이 우리와 함께], 에르네스토 카르데날, 분도출판사
[말씀이 우리와 함께], 에르네스토 카르데날, 분도출판사

그러나 라틴아메리카에서 일부 사제들이 교회기초공동체(BCC)를 건설하면서 사정이 달라졌다. 그들은 농부들과 모여서 성경을 읽고 의미를 숙고하면서 변화를 위한 행동에 나서기 시작했다. 그들은 가난의 고통이 하느님의 뜻과 상충된다는 것을 발견하고, 특별히 가난한 이들 속에서 복음이 의미를 지난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니카라과의 에르네스토 카르데날 신부가 솔렌티나메 공동체에서 농부들과 나눈 복음대화가 <말씀이 우리와 함께>(분도출판사)에 상세히 실려 있다. 복음서에서 구세주인 예수 그리스도가 보잘 것 없는 시골처녀를 통하여 세상에 오셨다는 전갈은 복음이 가난한 이들을 통해 전해졌다는 상상력을 발동시켰다.

그들은 비참한 상황에서 하느님께서 중립적인 분이 아님을 알았다. 그분은 억압받는 이들의 편에 서 있다. 하느님은 가난한 이들이 더 거룩하거나 죄를 덜 지어서가 아니라 ‘상황 때문에’ 그들 편에 서신다. 이런 하느님의 당파적 사랑은 가난한 이들을 구원하며 해방시켜서 비인간적인 고통을 멈추게 하실 것이다. 이들이 발견한 ‘해방’이라는 말은 귀하고 놀라운 통찰을 가능케 하는 언어이다. 성경은 이를 강력히 뒷받침하는 근거를 제공한다.

 

한상봉 이시도로
<도로시데이 영성센터> 코디네이터
<가톨릭일꾼> 편집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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