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통적인 성인, 아주 완벽하고 비현실적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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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통적인 성인, 아주 완벽하고 비현실적인
  • 토머스 머튼
  • 승인 2023.10.02 10:58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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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머스 머튼의 삶과 거룩함
사진출처=metropoles.com
사진출처=metropoles.com

성 베네딕트가 쓴 수도자 회칙에 보면 우리에게 아주 유익한 구절이 나온다. 거기서 그는 수도자는 거룩해지기도 전에 성인으로 불리우길 바래서는 안되며, 거룩하다는 명성이 사실에 근거한 것이 되게 하기 위해 우선 성인이 되어야 한다고 말하고 있다. 이 말을 통해 우리는 진정한 영적 완전함과 사람들이 생각하는 완전함의 커다란 차이를 깨달을 수 있다. 이것은 더 정확하게 거룩함과 나르시시즘의 차이라고 할 수 있다.

“성인”에 대한 가장 일반적인 생각은, 당연히, 교회가 우리에게 보낸 존경 받아 마땅한 영웅적인 남녀의 거룩함을 바탕으로 형성되고 있다. 성인들은 일반적인 그리스도교 신자들의 생각 속에서 금새 정형화되는데, 조금만 생각해보면, 그들은 그 고정관념이 비현실적이라는 것을 깨닫게 된다. 성인전들은 대체로 그러한 비현실성을 두드러지게 했고 성화들 역시 그 점에 있어 톡톡히 한 몫을 했다.

그래서, 거룩함을 추구하는 그리스도인들은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자신 안에 정형화된 이미지를 심어놓게 된다. 아니면, 목표 달성의 어려움 때문에 그는 일정한 양식을 따라야 한다는 강박관념을 가지게 되는데, 마치 교회가 그것을 그리스도를 따르는 정도(正道)로 제시했다고 생각할 뿐, 다만 그것이 성인들의 그리스도성이라는 신비로운 실체를 이용해 만든 전통적이고 대중적인 모방에 불과하다고는 생각지 못한다.

그런 이미지를 여기서 그려보기란 어렵지 않다: 그는 실오라기 만큼의 도덕적인 결함도 없다. 성인은 죄를 지었다 하더라도, 완전한 회심에 의해 결국 완벽해진다. 완전함도 모자라, 그는 가장 사소한 유혹도 느끼지 않은 채 성장한다. 물론 유혹을 받기도 하겠지만, 유혹이 그를 힘들게 하지는 못한다. 그는 모든 것에 대한 확실하고 영웅적인 해답을 알고 있다. 그는 죄를 짓기 보다는 차라리 불 속이나 얼음 물, 가시덤불로 뛰어든다.

성인의 의도는 언제나 가장 거룩하다. 그의 말은 언제나 교훈적인 격언으로 가득하며, 모든 상황에 놀랄 만큼 적절하여 다른 이들의 생각까지 잠재울 수 있다. 이처럼 두렵기까지 한 “완전한 사람”은 다른 사람들과 인간적인 대화를 할 필요도 능력도 없을 것이다. 그들은 놀라움을 느끼지 못하듯 유머도 할 줄 모르고, 감정도 없고 인류 공통의 관심사에 아무런 관심도 가지지 않는다. 그러나 물론 각각의 상황에 맞는 덕을 발휘하기 위해 달려가기도 한다. 그들은 왕과 그를 수행하는 고관대작들이 모퉁이를 도는 순간 문둥병자의 상처에 입을 맞춰 모든 사람들이 존경심으로 입을 다물지 못하게 만든다...

이같은 이미지를 품고 아무 의심 없이 새 삶을 시작하려는 순진한 신참을 보고 웃지 않을 사람은 아마 한 명도 없을 것이다. 사람들은 그에게 현실을 직시하라고 말할 것이다; 그러나 그가 고통스러운 현실을 깨달아 갈 때, 우리는 속으로, 그가 결국은 옳았다, 라고 생각하고 있지는 않은가? 거룩함은 확실히 절대적인 것에 대한 예찬이다. 양보란 없으며 타협도 고려의 대상이 될 수 없다. 우리는 진심으로, 가슴 속 깊은 곳에서, 거룩함의 기적이 초자연적인 것일 뿐만 아니라 비인간적이라는 생각을 해보지는 않았나? 우리는 초자연성을 인간적인 것을 완전히 거부하는 것이라고 생각하지는 않았나? 본성과 은총은 완전히 대립되는 것은 아닌가? 거룩함은 본성과 관련되는 모든 것을 완전히 배격하고 거부하는 것을 의미하는 것은 아닌가?

우리가 그렇게 생각하고 있다면, 우리는 고정관념이 되어버린 이미지를 실제로 가지고 있는 것이고, 그것을 완전한 그리스도인이라면 실현해야 할 모델로 여기고 있다고 볼 수 있다. 사실이 그렇다면, 우리가 무슨 권리로 사람들이 그 모델을 좇으려는 것을 막을 수 있겠는가?

 

[원문출처] <Life and Holiness>, 토머스 머튼 
[번역문 출처] <참사람되어> 2000년 9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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