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영웅은 로맨티스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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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영웅은 로맨티스트다
  • 김선주
  • 승인 2023.10.02 10: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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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선주 칼럼

영웅은 태어나는 게 아니라 만들어진다. 스스로가 영웅성을 가지고 영웅적 행위를 해서 영웅이 되는 게 아니다. 영웅은 시대가 요청하고 그에 응답하는 사람 가운데 있다. 특히 부조리한 권력의 횡포와 압제에 저항하는 피압제자 중 하나가 그에 굴하지 않고 인내와 진실로 끝까지 견디며 저항의지를 꺾지 않을 때, 그는 영웅이 된다. 영웅은 그를 지지하는 세력에 의해 만들어지는 게 아니라 압제자에 의해 만들어진다.

그런데 시대와 지역을 넘어 모든 영웅들의 공통점은 그들이 낭만주의자였다는 것이다. 지금은 ‘주의’라는 접사를 바꾸어 ‘낭만적’이란 말을 많이 사용한다. 그렇다, 모든 영웅은 낭만적이고 그들은 다 로맨티스트들이다. 낭만(浪漫)이란 말의 한자어를 있는 대로 보면 물결이 질펀할 정도로 어떤 정감에 충만한, 정서적 상태를 뜻하는 것이다. 그런데 이 말은 나쓰메 소세키가 로맨티시즘(Romanticism)을 일본어 한자 발음으로 가차한 것을 일제 강점기에서부터 우리가 그대로 가져다 쓰고 있는 것이다. 좀 더 오늘에 맞게 말하면 ‘현실적 이해관계를 넘어 자신의 꿈과 감정을 중요시하는 태도’라고 정의해도 될 것이다.

이렇게 볼 때 로맨티스트는 이상주의자다. 그 이상을 좇다 날개가 부러지거나 추락할 위험에 대한 두려움보다 비상하는 것에 높은 가치를 두고 그것을 자기 행복의 수단으로 삼는 사람들이다. 그들은 자기희생까지도 감내하며 그것을 즐기는 사람들이다. 그래서 남자는 누군가를 사랑할 때 로맨티스트가 된다. 자기를 희생시켜서라도 지켜내야 할 어떤 대상이 나타날 때, 그것이 남자의 이상이 되는 것이다. 세상의 모든 남자는 자기 여인의 영웅이 되고 싶어한다. 그런데 이성(異性)에 대한 이런 애정의 이상이 세계와 인간으로 확장될 때 정치적 로맨티스트가 된다. 김대중, 노무현은 바로 그런 의미에서 로맨티스트들이었다. 민주주의와 인간이라는 가치를 실현하기 위해 현실적으로 잘 먹고 잘 살 수 있는 길을 포기하고, 비현실적인 이상 세계로 비상한 사람들이다.

하지만 그들은 작은 참새로 비상하다가 지상에서 쏟아지는 수많은 화살을 맞으면서 점점 더 높이 비상하고 급기야 대붕의 지경에 오르게 된다. 이재명 대표의 영장과 기각 과정은 그를 영웅으로 만드는 역사의 패턴이다. 그동안 그에게 가해졌던 수많은 압수수색은 오히려 그를 영웅으로 만들어주었다. 이재명은 성실하고 올바른 관료적 인물이었다. 하지만 모자란 권력자와 그 하수인들이 그에게 영웅 서사를 만들어 주고 말았다. 그가 영웅이 되지 않게 하려면 적당히 했어야 했다. 이제 이재명은 그들이 감당할 수 없는 영웅이 되었다. 칼이나 휘두를 줄 아는 백정 나부랭이들이 끝내 죽일 수 없는 게 있다. 영웅의 로맨티시즘이다.

정치에서 인간에 대한 공감과 낭만이 사라지면 기계적인 질서가 지배하고 무지성의 폭력이 득세하게 된다. 지금이 그런 시대다. 하지만 그 시대가 영웅을 만든다. 역사는 직선적인 세계가 아니라 역동하는 역설의 우주이기 때문이다. 역사는 낭만적 인간이 만들어가는데, 낭만은 인간에 대한 공감으로부터 시작된다. 인간의 인간됨에 대한 자각으로부터 낭만의 물결이 시작되는 것이다. 그래서 맹자는 인간됨의 조건을 타자에 대한 공감(無惻隱之心 非人也)이라 했다. 타인의 아픔에 대해 공감(측은지심)하지 못하는 자들은 인간이 아니라는 뜻이다. 영웅은 이런 자들이 지배하는 세계에서 참된 인간의 모습으로 등장한다.

영웅은 비인간화된 인간들에게 저항하여 참된 인간의 승리를 위해 자신을 십자가에 내어줄 줄 아는 메시아다. 메시아는 시대마다 다른 모습으로 부활한다. 그래서 영웅은 영원히 죽지 아니한다.

 

김선주 목사
<한국교회의 일곱 가지 죄악>, <우리들의 작은 천국>, <목사 사용설명서>를 짓고, 시집 <할딱고개 산적뎐>, 단편소설 <코가 길어지는 여자>를 썼다. 전에 물한계곡교회에서 일하고, 지금은 대전에서 길위의교회에서 목회를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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